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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콜텍·쌍용차·용산…누가 우리의 하나됨을 가로막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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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트·콜텍·쌍용차·용산…누가 우리의 하나됨을 가로막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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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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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으로 분배받은 구로동 농민들의 땅을 5.16 군사정권이 강제로 빼앗았다 50년 만에 농민에게 돌려주게 되었다. 토지개혁은 토지개혁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6.25 전쟁, 공산침략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 먼저 토지개혁이 이뤄졌고 남한은 미군정과 친일파가 토지개혁에 미온적이어서 사회 불만이 높아졌다. 이승만 정부가 여론을 감지해 토지개혁을 강행 한 뒤 6.25 전쟁이 터졌다.

    남한을 점령한 북한 공산집단이 "이제 국가의 모든 땅을 거두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선전선동에 나섰을 때 남한의 농민들은 "그거 우리 정부가 벌써 다 해놓은 일"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민심이 북의 공산집단에 속아 넘어가는 걸 막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그 민심을 기반으로 국군의 반격이 이뤄지고 반공의 기초가 닦여나갔다. 또 1960년대 70년대 농사짓고 소 팔아서 자식들 대학 보내고 이 나라 교육수준을 끌어올려 산업화를 이룬 것도 농민들이 토지개혁으로 소작농에서 자영농으로 올라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개혁해야 할 때 소수의 기득권에 떠밀려 개혁을 놓치고 다수 서민들의 민심이 국가로부터 떠나버리면 국가는 자칫 수렁에 빠지고 만다. 그럴 때 나라 밖으로부터 위기가 닥쳐오고 국민통합의 기반이 없으면 뿌리 채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콜트-콜텍 투쟁 2000일, 그리고 쌍용차와 용산 철거민

    그런 점에서 몇 사건을 되돌아보기로 하자.

    23일이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2000일을 맞는 날이다. 주말이던 21일 저녁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콜드-콜텍 노동자를 격려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22일에는 부평 콜트 공장에서 미사, 문화예술인과 노동자 시민이 함께 하는 공연, 24일에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상영, 25일에는 마무리 콘서트가 부평 공장에서 열린다.

    기타를 만드는 제조업체 콜트악기와 자회사 콜텍은 지난 2007년 경영위기와 노사갈등을 이유로 부평의 콜트공장과 대전의 콜텍공장을 폐업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부평에 있던 콜트는 전자 기타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30%나 되고, 흑자를 이어가던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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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나 환경은 아주 나빴고 노조가 만들어지자 사장은 회사가 어렵다면 정리해고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 대신 대전에 콜텍이란 자회사를 만들었다. 콜텍에도 노조가 생기자 콜텍도 공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그러나 사장은 이미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공장을 마련해 놓고 관리직과 기술직, 생산설비를 옮겨 놓았다.

    아직도 그 사장이 만들어 파는 기타의 이름은 콜텍이다. 명백한 위장폐업이다. 지난 2월 대법원이 "콜트악기의 2007년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회사는 공장을 팔아치우고 꿈쩍도 않는다.

    지난 21일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 집회도 열렸다. 노동자 시민 1천2백여 명이 모였다. 21일은 3년 전 쌍용차 노조원들이 회사 측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공장에서 77일간 파업농성을 계속하고 있을 때 경찰과 회사 측이 물과 전기를 끊고 식수와 약품, 식료품 반입을 막은 날이다. 당시 쌍용노동자들의 구호는 ''함께 살자'', ''해고는 살인이다''였다.

    그 후 3년 간 무급휴직자가 되어 일용직과 날품팔이로 생계를 잇던 노동자와 그 가족 22명이 숨졌다. 회사 측은 대화도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지난 2009년 구조조정 당시 노사는 무급휴직자를 1년 후 복직시키자고 합의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와 시민들이 만든 구호는 "국가가 책임져라"이다. 사측은 ''협력업체에 취업을 알선하겠다''고 한다. 사내에 일감이 많아 인력이 모자란다고 하는데 외부 취업 알선이면 공장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터에도 사람들이 모여 다시 촛불을 밝혔다. 지난 20일 밤, 용산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500여 명의 시민들과 각지의 철거민들,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잊지 않은 우리는 다시 모인다, 그 곳으로''라는 이름의 문화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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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의 용산 CGV에서 용산참사를 기록한 영화 ''두개의 문''을 관람한 관객들이 현장을 찾아가 추모하고 싶다고 해 마련하게 된 추모집회이다. 이런 추모객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현장 남일당 터는 지금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차장 터가 그렇게 급해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을 국가보안법을 들먹이고 테러범이라 부르며 죽음으로 몰아갔는가? 철거민들은 아직 감옥에 있고 작전지휘자들은 높고 편한 벼슬자리에 앉아 잘 살고 있다. 무엇이 우리의 하나 됨을 가로막는가?

    국민의 존엄과 국가·국법의 권위를 무시한 반역사적 행태들이 걸림돌이다. 친일파의 득세, 3.15 부정선거, 5.16 군사반란, 유신독재, 12.12 군사반란, 5공 군사독재 등 잘못된 역사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힘이 있으면 그걸로 누르면 되고, 힘을 가진 자에게 빌붙으면 앞질러 갈 수 있는 사회의 부패와 불의가 우리들 사이에 불신을 키우고 폭력을 키웠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공정함과 정의로움을 동원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국민이 국민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역사가 길게 이어질 것이고 그건 정말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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