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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참정권 쟁취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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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의 기자수첩]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특히 남성은?

    변상욱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여야 정당에서 여성이 잇달아 대표로 선출되었다. 물론 소수의 엘리트 여성들이 진출한 것이지 일반 여성유권자의 정치의식과 정치 참여는 아직 미흡하다. 아직도 정치를 남성의 영역으로 여기는 문화와 의식이 많이 깔려 있다. 정당들도 여성 정치인을 공평하게 대하고 키워 내려고 투자를 해 왔는지 의심스럽다.

    선거철에 이르러서야 여성의 몫이 어쩌고저쩌고한다. 이런 미흡한 기반 때문에 국민 경선제를 하면 여성이 불리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의 여야 여성 대표도 일시적 현상이지 근본적인 남녀 양성 평등을 향한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여성의 정치 참여를 허용한 것은 1946년 12월 12일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에 여성을 참여시킨 것. 이어 1948년 5.10 선거 때 전체 입후보자 590명 중 18명이 여성 입후보자였다. 그 후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에 의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인정했다.

    ◇ 여성 참정권 쟁취 잔혹사

    세계 정치사에서 전국의 모든 여성에게 선거권을 인정한 최초 국가는 뉴질랜드로 1893년, 오스트레일리아 1906년, 노르웨이 1913년 순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가 대폭 늘어났고 권리도 커져가면서 유럽 국가들의 여성 참정권이 급속히 확대됐다.

    아시아로 보면 미얀마가 1922년, 태국 1932년, 필리핀 1937년, 중국 1946년 1949년 인도, 파키스탄 1956년.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을 살펴 보자. 1883년과 1892년에 온전한 여성 참정권을 위해 의회에 법안이 제출됐으나 남성 의원들에 의해 모두 부결됐다. 여성에게는 지방의회 투표권만 허용되고 있었다. 여성들은 ''''전국여성사회정치연맹''''을 만들어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을 펼쳤고, 정부는 주동자들을 감옥에 가뒀고, 갇힌 여성들은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단식투쟁을 중단시키려고 호스를 목에 넣어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방법이 이때 영국 경찰에 의해 동원됐고 사회 문제화되자 굶으면 풀어주되 경찰이 24시간 따라 붙어 감시하고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잡아넣는 ''''고양이 & 쥐 법''''이 이때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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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시위와 당국의 진압은 점점 폭력적으로 변했고 궁전에 숨어들어 난간에 몸을 묶은 채 시위하는 여성도 생겨났다. 급기야 1913년 런던 근처 엡섬다운스 경마장에서 열리던 유명한 더비 경마대회에서 그 유명한 ''''에밀리 데이비슨 사건''''이 발생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여성 참정권운동에 참가했던 에밀리 데이비슨이라는 여성이 경마 경주장에 뛰어들어 영국 국왕의 말에 부딪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왜 이렇게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는 데 인색했을까? 여성 참정권은 여성이 투표소에 가 한 표 찍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걸 시작으로 사회의 모든 남녀 차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될 것이 뻔하다. 그러면 남녀 차별을 도구로 이용해 사회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지배하던 남성의 권력 구조가 시쳇말로 전방위적으로 도전받는다. 취업, 임금, 가사 등… 남성이 꺼릴 것은 많고 많다. 이토록 참정권을 주지 않으려 버티던 남성 사회는 1차 세계대전이 벌어져 남성들이 전쟁터로 가고 여성들이 남성 대신 ''''전시 노동''''에 동원되자 그 보상으로 드디어 참정권을 내 놓았다. 1928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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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특히 남성은?

    200년 전 프랑스 혁명으로 건너가 보자. 프랑스 혁명이 내건 구호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여성이나 흑인은 그 ''''인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래서 정치적 처벌을 받는 국사범(國事犯)이 아니라 잡범으로 단두대에 올랐다. 그때 단두대에 오른 여성이 또 있는데 이름은 올랭프 드 구주, 그녀는 프랑스 혁명을 기뻐하며 옹호했으나 혁명이 내건 자유와 평등이 남성에게만 해당되자 ''''여성권선언문''''을 발표했다. 그 일로 그녀는 ''''자신의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단죄를 받았다. 단두대에 올라 처형된 그 녀가 남긴 유명한 대사,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설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여성의 월경이 정치적 판단을 흐릴 수 있다'''' 가 여성의 정치 참여를 배척해 온 명분이었다. 가톨릭도 하나님 앞에서 만인 평등은 아니다. 199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성을 가진 사람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보다 더 평등하다''''라고 선언해 여성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신부가 사제이듯 수녀도 사제라고 여기면 오해. 수녀는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없다.

    불교? 대한불교조계종 종헌·종법에서 성차별 조항으로 거론되는 것 몇 개만 보자. 비구니는 총무원장 불가, 비구니는 교구본사 주지 불가, 100세의 비구니라 할지라도 갓 출가한 비구에게 먼저 예를 갖춘다. 개신교도 여성에게 목사안수를 허용하는 교단과 허용하지 않는 교단이 있다. 그리고 예배당 강단에 여성은 올라갈 수 없는 규율도 있었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와 억압을 깨트리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하고 필요한 것이 여성의 삶 속으로 정치를 가져 오고 정치 속으로 여성이 들어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정치는 정치를 바꾸는 게 아니라 삶을 바꾸는 것이다. 엄연히 헌법에 보장돼 있는 권리이다. 그리고 그 권리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선배 여성들이 쟁취해 낸 것이다.

    정치학자 울린이 설파한 대로 ''''정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여야 여성 대표체제의 출범이 국민을 위하는 진정한 민주정치 발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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