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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큰 일은 쥐는 게 아니라 놓는데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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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큰 일은 쥐는 게 아니라 놓는데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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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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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왜 크리스마스 전날엔 양말을 걸어두고 선물을 기다리는 걸까?''''

    4세기경 터키의 니콜라스 주교가 어느 가난한 집의 세 딸이 남자의 구혼을 받고도 지참금이 없어 결혼식을 못 올리는 딱한 사연을 듣고 몰래 그 집 굴뚝으로 금 주머니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그것이 벽난로에 말리려고 걸어 놓은 양말 속으로 들어가면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양말에 넣어두는 풍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엔 종종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유독 다리가 길고 많다. 크리스마스 때면 종종 게이트에서 통행료로 1달러 낼 것을 2달러를 내며 ''''내 뒷사람 겁니다''''라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래 요금징수원이 다음 운전자에게 ''''앞 사람이 내셨습니다''''라고 일러주면 그 사람도 자기가 준비했던 1달러를 내면서 ''''그러면 이건 다시 제 뒷사람 겁니다''''라고 응해 통행료 릴레이가 길게 이어진다고 한다.

    ◈ 메리 크리스마스!

    가장 크리스마스다운 이야기는 전쟁터의 휴전. 미하엘 유르크스가 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가 가장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미담이다.

    <..... 처음에는 독일군 진지에서 누군가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을 뿐이다. 노래는 나지막이 울리더니 죽음처럼 고요한 플랑드르 풍경 속을 떠돌다 사라졌다. 그러나 노래는 곧 파도처럼 전장 곳곳으로 퍼져나가 어둡고 긴 전선의 모든 참호에 길게 울려 퍼졌다. 마지막 소절이 끝나자 1분쯤 후에 영국군 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잘했다, 제군들'''' ''''앙코르, 앙코르!'''' 갈채를 받은 독일군 병사들은 이렇게 답했다. ''''Merry Christmas, Englishmen!'''', ''''We not shoot, you not shoot.'''' 이 말은 진심이었다.>

    소설은 1차 대전 중인 1914년 벨기에 이프르 지역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40킬로미터에 이르는 서부전선 곳곳에서 상부의 휴전중지명령을 무시하고 실제로 담배, 초콜릿 등 선물을 나누며 휴전에 들어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아예 1월까지 푹 쉰 전투지역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뒤 다시 전투가 재개돼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던 병사들은 거의 다 목숨을 잃었다. 1천만 명이 숨진 전쟁이었다. 그 뒤 크리스마스 휴전은 군사재판까지 열리며 논란이 일어 다음 해부터는 크리스마스면 아예 경계강화지시가 내려지는 것이 관례가 되기도 했다.

    1944년 12월 이른바 발지 전투 ''Battle of Bulge''로 알려진 서부전선 대회전에서도 벨기에 국경 부근의 독일 휘르트겐 숲속 작은 오두막집에서 독일군과 미군이 마주쳐 서로 다친 곳을 치료해주고 우애를 나누다 헤어진 사건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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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의 고다이버이즘

    이렇게 관행, 습관, 상식, 타성 등을 깨는 저돌적이고 파격적인 행동이 크리스마스에는 종종 벌어진다. 이것도 일종의 <고다이버이즘 Godivaism>이다. 특히 정치에서 ''''관행이나 상식, 힘의 역학에 불응하고 대담한 역발상으로 뚫고 나가는 정치행위''''를 <고다이버이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디바 또는 고다이버>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을 다스리던 영주 아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영주가 주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자 그의 어린 아내가 가난한 이들을 대신해 세금감면을 울며 간청했다. 아내의 청을 거절할 핑계를 찾다가 ''''그렇게 간절하다면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라, 그러면 들어 주마''''라며 조건부로 승낙했다. 이에 아내 고디바는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돌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들어가 창에 커튼을 드리우고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는 역사 속 실화에서 부인 고디바의 이름을 따 관행과 타성을 뒤집는 역발상의 정치를 고다이버이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고디바 부인의 자기희생을 통한 저항에 담긴 뜻은 결코 단순치 않다. 힘없는 이들을 향해 내려가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쪼개 내놓는 나눔과 그의 뜻과 처지를 헤아려 문을 닫고 내다보지 않음으로써 함께 한 다수 대중의 연대, 이 나눔과 연대는 오늘 우리의 정치사회 현실에 많은 생각할 것들을 던져 준다.

    손 안에 들어 온 권력을 내놓는 안철수 교수의 비정치스런 정치행동과 그의 양보를 받아들여 새로운 지지후보를 밀어준 서울 시장 보궐선거의 모습도 올해 우리가 지켜 본 고다이버이즘이자 나눔과 연대의 한 장면이다.

    세상에서 큰일은 무엇을 움켜잡아서 이루는 게 아니라 쥐었던 걸 놓을 때 이뤄진다. 가진 걸 나누고 나누는 사람의 사정을 살펴 배려하는 것, 아마 세상을 구하는 해법의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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