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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다리로 로우킥''…종합격투기 배우실래요?

[나도 할 수 있다-종합격투기] 윤동식 토탈 스포츠클럽서 ''일일 체험''

 

''매혹은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가는 고통에서, 혹시 가능하다면 그 죽을 뻔한 경험에서 벗어나 결정적인 육체적 우위를 되찾는 과정에서 나온다'' (책 ''매혹과 열광-어느 인문학자의 스포츠 예찬'' 中)

"종합격투기 체험 한 번 하시죠?" 처음 제안을 받은 건 7월 초였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이 나이에 뼈라도 부러지면 어쩌나'', ''못말리는 몸치인데 동작을 제대로 따라할 수 있으려나'', 게다가 나는 알아주는 저질체력 아니던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두 달을 질질 끌다가 결심했다. ''그래, 더 늦기 전에 링 위에 한 번 올라가보자.'' 지난 6일, 마침내 나는 링 위에 섰다.

강남 차병원 사거리에 위치한 윤동식 토탈 스포츠클럽 내 격투기장. 나는 격투기 정규수업에 앞서 김종원 관장으로부터 타격(펀치+킥)과 서브미션(조르기나 관절기술 통칭) 특훈을 받았다. 90년대 한국 유도 경량급 간판스타인 김 관장은 일본 종합격투기 ''드림'' 페더급 토너먼트에 출전했던 파이터다. 오픈 핑거 글러브를 끼자 나도 모르게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헤드기어까지 착용하니 마치 파이터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글러브 낀 두 손을 맞부딪히며 속으로 "화이팅"을 외쳤다.

 

먼저 잽과 스트레이트 등 기본적인 펀치 동작을 배웠다. ''사람의 펀치는 코브라보다 4배 빠르게 공격할 수 있고, 사람의 킥은 최고 680kg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내셔널지오그래픽 ''최강 무술열전'')고 하지 않나.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먹을 찌르듯 내뻗었다. 수 차례 반복하자 제법 자세가 나온다. 툭툭 끊어쳐본다. 탕탕탕~ 글러브가 미트에 닿을 때 소리도 한층 경쾌하다. "좋아요. 소리가 다르죠? 그 느낌 기억하세요." 김 관장의 말에 씨익~ 미소가 번진다. 짐짓 조그만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노려본다.

다음은 로우킥. 생각만큼 쉽지 않다. 발로 찰 때 포인트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맘먹고 내지른 킥이 미트를 대주던 김 관장의 손에 맞고 말았다. ''아야~'' 이어진 비명소리. 무안했다. 그래도 계속 하다보니 조금씩 감이 잡혔다. 비록 짧은 다리지만 신바람이 나서 로우킥을 날렸다. "잘 하시네요." 격려성 멘트에 또다시 의욕과잉. 열심히 킥을 해댔다. 킥에 체중을 실으려 노력했다. 어릴적부터 스포츠 관람을 즐겨서 어떤 스포츠를 해도 ''자세는 프로''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던가.

동작을 멈추자 갑자기 허벅지 안쪽 근육에 통증이 느껴졌다. "몸을 지탱하던 쪽 허벅지가 당기는데요?" 그러자 김 관장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운동을 했으니까 당기는 게 당연하죠." 괜히 말 꺼냈다가 본전도 못찾았다. 금세 의기소침해진다.

타격을 직접 해보면서 느낀 건 ''반복''의 중요성이다.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도 ''333 규칙''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어떤 기술을 3백번 연습하면 어느 정도 흉내낼 수 있고, 3천번 연습하면 실전에 쓸 수 있는데 그것은 상대가 하수이거나 스스로 그 기술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다. 3만번 훈련하면 그 기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나와 상대를 제압한다.''

 

드디어 서브미션을 배우는 시간. 그중 UFC 중계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기술 중 하나인 기무라 락을 체험했다. 기무라 락은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유래가 있다. 그레이시 가문의 엘리오 그레이시는 젊은 시절, 단 한 번의 패배를 당했다. 그때 팔이 부러지며 패했는데 당시 상대 선수가 일본의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였다.

나보다 덩치가 훨씬 큰 남자 수련생이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그라운드 포지션에서 그립을 잡고 온힘을 다해 상대의 팔을 꺾었다. 내 얼굴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상대방의 입에서 ''으으윽~''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진짜 꺾였어요?"라고 묻자 얼굴이 벌개진 남자 수련생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 순간 뭔지 모를 통쾌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나보다 큰 상대를 기술로 제압할 때의 느낌, 이 맛에 하는구나'' 짜릿했다.

특훈을 마친 후 오후 8시부터 박홍 트레이너가 가르치는 격투기 수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수업 전 20여분간 앞,뒤구르기 등 기본동작을 응용해 ''몸풀기''를 하는데 결코 만만찮다. 10분 정도 지나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몸풀기가 끝나면 나도 모르게 후~ 한숨이 나온다. 몸풀기 프로그램을 직접 구성한 박 트레이너는 "다양한 기술과 동작을 배울 수 있는 순환운동이다. 상하체를 골고루 쓰기 때문에 땀도 나고 몸도 풀린다"며 웃었다.

 

이날 수업에서는 태클과 타격을 배웠다. 종합격투기에서 타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리기는 쉽지 않다. 일격필살? 환상이다. 상대를 테이크다운 시키려면 레슬링의 태클을 습득하는 게 기본. 먼저 ''원레그 백태클''이다. 상대방의 한쪽 다리를 잡고 등 뒤로 돌아서 재빨리 상대 허리를 감싸안는 동작이다. 쉬운 것 같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은 370km(하늘을 나는 매가 사냥감을 발견한 후 낙하할 때의 속도)이건만 실제로는 신속함, 민첩성과는 거리가 멀다. 동작이 이어지는 과정이 마치 슬로모션을 보는 듯하다. 허벅지를 움켜쥔 손에 어찌나 힘을 줬던지 오른손이 수전증 환자처럼 덜덜덜 떨렸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만회할 시간은 충분하다. 다음은 한쪽 다리 잡고 방향전환한 후 테이크다운 시키기. 그라운드 공방은 지루하고 재미없어 보인다. 하지만 종합격투기에서 진짜 싸움은 그라운드 상황이 전개된 후부터다. 테이크다운은 그라운드 싸움의 시작.

입술을 앙 물었지만 역시 어렵다. 상대 다리를 쭉 잡아당겨서 중심을 무너뜨리는 게 핵심인데, 자꾸 다리를 높이 들어올리는 통에 힘만 들고 상대는 넘어질 생각을 안한다. 반면 나는 상대방의 공격에 금방 밸런스가 무너져 벌러덩 나자빠지길 수 차례. 쿵~ 그때마다 몸 전체에 가해지는 충격이 크다. 헉헉~ 차오른 숨을 몰아쉬었다.

이어 원투+더킹과 투원+더킹, 그리고 타격 시뮬레이션. 소싯적 일본 권투만화 ''더 파이팅''에서 배운 ''더킹''을 직접 해보다니…. 흐뭇했다. 방금 전 타격특훈 때 펀치에 대한 칭찬도 받지 않았던가. 매의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다 편치를 날린 후 더킹 반복. 그러나 상대가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훗~ 실소를 날렸다. 몸을 기울여 상대 주먹을 피하는 동작이 영 부자연스러웠던 탓이다.

드디어 타격 시뮬레이션 시간. "닌텐도 게임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맘껏 펀치를 날려보세요." 박 트레이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펀치가 오간다. 누군가 ''쉭쉭~'' 소리도 낸다. 순간 그 소리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오른손으로 상대 턱을 가격하고 왼쪽 훅을 날렸다. 좌우주먹을 섞어가며 자유자재로 공격했다. 물론 상대의 무자비한 펀치도 다 받아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리 때리고 맞아도 데미지가 없는 탓에 편안했다. 그런데 펀치 시뮬레이션에 몰입한 나머지 나는 파트너의 복부에 진짜 펀치를 먹이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어이구~ 죄송합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상대는 애써 웃음지었지만 창피한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끝으로 MMA식 스파링을 한 후 1시간 동안의 수업이 마무리됐다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수련생들은 온통 땀범벅이다. 하지만 방금 전 운동을 끝낸 사람들 같지 않게 모두 표정이 밝다. "오늘 어떠셨어요?" 김 관장의 물음에 나는 "운동할 땐 힘들었는데 지금은 몸이 개운해요. 계속 배워서 동작이 몸에 익으면 더 재미있을 거 같아요"라고 답변했다. 양 어깨에 생긴 멍은 훈장인 셈이다.

 

짧은 체험이지만 종합격투기는 매력적인 스포츠다. 기술을 습득하기 때문에 배우는 재미가 있다. 땀을 흘리고 나면 건강해진 느낌이 들어서 심리적인 만족감도 크다. 또 여럿이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겁다.

짧은 다리를 가진 나이지만 멋지게 로우킥을 해냈다. 여러분, 종합격투기 배우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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