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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 남성은 용(龍)인가, 봉(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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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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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남성들 사이에서도 소위 명품 - 외제수입사치품 바람이 거세다. 시계와 지갑, 양복, 구두, 액세서리 등이 많이 팔리고 유통업체들은 남성만의 명품 매장을 서둘러 열고 있다. 볼펜이 40만원, 만년필은 100만원이 훌쩍 넘고, 서류가방이 250만원 이상, 시계도 200만원~수억 원까지 있다한다.

    외제 100% 핸드 메이드 - 수제 양복은 수백만 원을 넘어 1,000만 원의 고가도 있다한다. 요즘 정치 권력층에서 주목받는다는 ''A'', 최고 대기업 총수들이 입는다는 ''B'' 브랜드가 그런 것들이다. 사회 지도층이 국내에 없는 비싼 외제 양복 맞춰 입는다고 모 언론에서 잠깐 비난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오히려 소문이 퍼지면서 다들 구해 입겠다고 난리를 친 모양이다. 해당 브랜드를 급히 수입해 이게 바로 소문의 그 브랜드라며 팔고 있다니 가히 명품 병이라 할만하다.

    사치품이라 할 외제 수입 브랜드의 매출 신장세를 보니 S 백화점의 경우 남성제품이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시계의 경우는 최근에 바람이 불어 전 분기 대비 115% 증가했다. 고물가, 경기불안임에도 불구하고 빅 3 백화점들의 매출은 남녀 명품족에 힘입어 전년 대비 13%~20%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명품하면 여성들의 소비욕을 지칭하던 공식이 깨어지고 있다. 국제 경영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2010 명품 시장 분석 보고서''''는 ''''한국 남성이 새로운 명품 고객층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한 언론은 한국을 일본과 함께 ''''명품시장의 용''''이라고 찬사 아닌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적확한 표현은 ''''용''''이 아니고 ''''봉''''이다.

    ◇신사(紳士)가 런던이나 뉴욕에 산다고?

    언론에 등장하는 기사 제목들을 보면 <클래식한 유럽 신사의 기품>, <올 가을 남성복 트렌드는 ''''영국신사''''>, <지난해 가을은 마초풍의 정통클래식이 유행이었고 올해는 정통클래식에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감각을 덧입힌 ''''영국신사''''가 대세>, <세련되면서도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뉴욕풍 신사의 멋> 무슨 말인지는 알고 쓰는 것일까?

    한자로 적는 신사(紳士)는 중국의 사대부 - 귀족을 일컫는 단어였다. 훗날 영어 젠틀먼(gentleman)을 번역하는데 이 단어를 가져다 붙인 것. 사전적 의미로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를 가리킨다.

    영국에 젠틀먼 - 신사의 전통이 있는 건 사실이다. 영국 신사는 반드시 귀족은 아니었다. 지주출신, 상공인, 금융인 등 나름 경제적 여유가 있던 계층이 영국 신사의 주류이다. 스포츠와 레저, 파티를 즐기되 대체로 검박한 생활을 하며 졸부티를 내지 않았다 한다.

    영국 신사들은 사회적 의무에 솔선하고 명예와 관용을 중시하는 것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여겼다. 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자신들의 책무이자 덕목으로 삼았다. 프랑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상통하는 덕목들이다.

    대표적 신사로 꼽히는 웰링턴 공작이 신사에 대해 남긴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신사를 알아보는 방법은 많지만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아랫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아녀자들에게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 고용주는 직원을, 스승은 제자를, 장교는 부하를, 즉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잉글리시 젠틀먼(English Gentleman)이라는 책의 내용이 전해지는 데 살펴보면 이러하다.

    "영국 신사들의 주거지는 시내 요지에 있는 고급빌라나 저택이 아니고 교외로 빠져나가 한적한 곳에 적당히 낡은 전원주택이 대부분이었다. 승용차도 롤스로이스 세단 같은 고급승용차가 아니라 웨건을 애용했다. (스포츠나 레저용품 싣기도 편하고 애완견과 함께 타기 좋아서 그렇다. 겉멋이 아니라 실용을 중시했다는 이야기다). 권력이나 지위, 비즈니스 파티와 사교모임 등 향락에 빠지기 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았다. 신사들이 즐겨 입는 양복도 그래서 편안하고 튼튼한 스타일, 소매나 팔꿈치를 덧댄 콤비 스타일이 트렌드였다."

    하우 투 젠틀먼(How To Be Gentleman) 이라는 미국신사 가이드북도 살펴보자.

    "호텔이나 백화점의 무거운 문을 여닫을 때는 항상 뒷사람을 살피며 배려하고, 거리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비 맞고 가는 사람이 눈에 띄면 누구든 불러 함께 우산 쓰기를 청한다."

    한마디로 이웃을 배려하는 행동양식들이 몸에 배어 실천하면서 부귀보다는 소박하고 교양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사의 도리''''라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며 살자

    잡지나 신문방송에서 내놓는 신사의 요건(要件)은 상품마케팅에서 비롯된 허울일 뿐이다. 진정한 신사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실천하는 모범이자 표상이 되는 존재를 가리킨다. 그 시대의 존경받는 기준을 지켜나가는 것을 사회적 임무로 여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 당시 영국의 예절교육이란 남자 아이가 태어나 철이 들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신사들을 잘 보고 그들의 행동거지와 신조를 흠모하고 배우라 가르치는 것이다. 점잖고, 예의 바르고, 자존심을 지키고, 검소하며, 과묵하라고 배운다. 여자 아이들은 저런 남자가 멋진 남자라고 배운다. 자신들은 명예로 여겨 지키고, 남들은 존경하고 따르니까 <신사> 문화가 존재해 온 것이다. 요즘 영국이야 훌리건의 나라로 흉명이 더 높지만 그래도 밑바닥에 남아는 있으리라 여겨진다.

    우리는 어떨까? 신사도 좋고, 딸깍발이 선비도 좋다. 우리 사회의 귀감이나 사표가 되는 본보기가 있어야 한다. 꼭 상류층이나 권력 지도층일 필요는 없다. 지식인이면 지조를 지키고, 교사면 존경해 따를 만해야 하고, 노조 지도자면 가장 양심적인 리더로 솔선하면 된다. 굳이 남녀를 구분할 것은 아니나 옛 가르침에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며 살라''''는 구절이 있다. 비싼 구두와 시계 그것이 남자의 자존심, 남자의 영혼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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