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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지주의 창립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이희건 명예회장이 향년 95세의 나이로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동우 신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23일 주주총회에서 회장직에 정식 취임한 소감을 밝힌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소식을 알려드릴께 있다"며 이 명예회장의 부고를 알렸다.
그동안 노환으로 투병생활을 해오던 이 명예회장은 21일 오사카에서 숨을 거뒀고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가족들만 참석한채 영결식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회장은 "신한금융그룹의 주총이 끝날때까지 절대 알리지 말라는 고인의 당부 말씀이 있었다"며 "고인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고 이희건 명예회장은 지난 1982년 7월, 재일동포 340여명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국내최초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립하고 1990년에는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킨 ''신한금융그룹 역사의 산 증인''이다.
일제식민지 시대였던 1917년 경상북도 경산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불과 열다섯 살의 나이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단순노무직에 뛰어들었다.
일본 패망뒤 일본의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하던 이 회장은 1946년 일본경찰이 시장을 폐쇄하자 재일한국인을 대표해 시장을 다시 열어줄 것을 호소한 것을 계기로 1947년에는 상점가동맹의 초대회장에 뽑히는등 재일한국인을 권익을 대변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재일동포 상공인들이 금융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깨닫고 1955년 대판흥은(大阪興銀)이라는 신용조합을 설립하였는데 이 대판흥은은 1993년 관서지방 5개 신용조합과 합병해 일본내 최대 신용조합인 관서흥은(關西興銀)으로 급성장했다. 이 회장은 특히 민족 금융기관의 육성에 온힘을 쏟았는데 1956년 한국계 신용조합의 육성발전을 위해 설립된 재일한국인 신용조합 협회의 2대 회장을 역임하는가 하면 1974년에는 재일동포들의 모국진출을 돕기 위한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본국투자협회는 1977년 일본 각 지역의 민단, 신용조합, 상공인연합회 대표등이 참여한 제일투자금융으로 발전해 나갔고 이 제일투자금융의 설립경험은 나중에 신한은행의 창립에 큰 도움이 됐다.
이 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 재일한국인 후원회 회장을 역임하고 1992년에는 모국상품 구매운동을 전개하는등 한국 사회발전에도 힘을 쏟았으며 한일교류와 재일교포사회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유족들과 협의해서 별도로 고별식을 준비할 예정이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개별분향은 받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