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시원히 짚어 준다. [편집자 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11명이 기소되는 것으로 4개월 넘게 끌어온 검찰수사가 사실상 마무리 됐다. 그러나 한화 김승연 회장은 이번 검찰수사를 포함해 5차례나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아 두 차례 구속을 포함해 네 차례나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다른 재벌기업과 비교하면 한화가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과 ''질긴 악연''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화그룹이 내년이면 창업 60년 환갑을 맞이하게 되며 김승연 회장은 올 8월이면 회장 취임 30년이 된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한화그룹은 왜 검찰과 질긴 악연을 맺었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벌써 다섯 차례나 수사를 받았다는 건가 = 그렇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수사기관과 악연을 맺기 시작한 건 회장으로 취임한지 12년 만인 지난 1993년이다. 당시 김승연 회장은 동생 김호연 씨와 상속권 분쟁을 벌이던 중 외화 밀반출 혐의가 드러나 2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김 회장이 외화를 밀반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살던 호화 주택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2003년 시작된 대선자금 수사 때 서청원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10억 원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지만 출국금지 하루 전날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연수명목으로 출국해 7개월 만에 귀국해 불구속 기소됐고 2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됐다.
2005년에는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지만 김연배 부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구속되면서 사법처리를 피했다. 2007년에는 차남을 때린 술집 종업원을 보복 폭행한 혐의로 두 번째 구속됐다. 김 회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 받았다. 특히 한화그룹에서 경찰 관계자를 통해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이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다섯 번째 검찰수사를 받았고 네 번째 법정에 서게 됐다.
▶ ·김승연 회장이 올해 취임 30주년이냐?= 그렇다. 1981년 선대 김종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29살의 나이에 회장에 취임했으니까 올 8월이 정확히 취임 30년이 되는 해다.
▶ 30년 동안 다섯 차례 수사를 받았으니까 악연이라고 할 만하겠다?= 다른 대기업이나 재벌 총수들과 비교하면 횟수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때 12명의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기소됐고 지난 2008년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관련해 특검에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전례가 있다. 김승연 회장이 네 차례 기소된 것과 비교하면 두 차례 기소니까 횟수가 적은 것이다. 물론 이건희 회장도 삼성-X파일 사건으로 수사를 받았지만 서면조사만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2003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매각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수사를 받지 않다가 2008년 검찰의 수사와 특검수사를 받았으니까 수사는 네 차례 받은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도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혐의로 75일간 구속된 것을 비롯해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는 김동진 부회장이 책임짐으로써 사법처리는 피했다. 그러나 2006년 비자금 사건으로 두 번 구속됐다. 이건희 회장은 한 번도 구속된 적이 없고 두 차례 기소됐고 정몽구 회장은 두 차례 구속기소 됐는데 김승연 회장은 두 차례 구속을 포함해 네 차례나 법정에 서게 됐으니까 수사기관과 악연을 맺고 있다는 표현이 틀린 표현은 아닌 것 같다.[BestNocut_R]
▶ ·대기업들의 기업경영 형태가 특별히 다르거나 그렇지는 않을 텐데 왜 한화만 질긴 악연을 맺은 것처럼 보이는 거냐?= 기업의 경영형태는 기업의 문화나 특성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나겠지만 그렇다고 경영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한화의 기업문화가 삼성이나 현대차 그룹과 비교하면 조금 독특한 면이있는 것은 사실이다. 혹시 한화의 사시가 뭔지 아느냐? ''신용과 의리''라고 한다. 한화의 사가(회사노래) 첫 대목을 보면 ''신용과 의리로 가꾸어온 우리 한화…'' 이렇게 되어 있다.
다른 대기업들의 사시 또는 경영철학과 비교해 보면 좀 독특한 측면이 있다. 삼성그룹은 이병철 회장 때는 ''사업보국, 합리추구''이었다가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로 바뀌었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사훈이 ''근면, 검소, 친애''이다. 한화그룹의 사시가 달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검찰 관계자들은 "한화의 기업경영 형태가 정교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한다. 검찰의 한 중견간부는 "한화그룹의 문화가 체계적이거나 정교하지 못하고 회장의 뜻대로 움직이는 화사 같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지난 2007년 김승연 회장의 술집 종업원 보복 폭행사건도 다른 대기업에서는회장이 직접 개입하는 일은 상상을 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한화가 다른 대기업들과 문화가 다른 건 김승연 회장의 스타일 때문이냐?= 한화에서 근무한 전직 고위 임원의 말을 들어보면 이해가 가는 점이 있다. 한화의 전직 고위임원은 "김승연 회장이 젊은 나이에 회장을 하다 보니까 직접 자주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보니 직접 화살을 맞는 경우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한화가 수사기관과 맺은 악연들을 하나하나 따져 보면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면서 "특별히 한화가 잘못을 많이 했다거나 기업문 화가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직임원은 "김승연 회장의 스타일이 2인자를 키우지 않다 보니까 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삼성이나 현대차그룹은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 이학수 부회장과 김동진 부회장이 각각 책임을 졌다. 한화는 대선자금 제공 금액이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회장이 기소됐다. 회장이 총대를 메는 구조는 다른 재벌 기업과는 분명 다른 모습인데 김승연 회장의 스타일 때문인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한다. 김승연 회장은 개인적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독선적인 면도 있다는 것이 한화그룹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김승연 회장은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에 세 번이나 소환되는 진기록을 세웠는데 첫 번째 소환 때 "내 팔자가 센 거 아닙니까"라며 여유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두 번째 소환 때는 "조금 심한 것 아니예요?"라고 불만을 터트렸으며 세 번째는 굳은 표정으로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화가 다른 대기업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나?
= 한화그룹의 모태가 독점산업인 한국화약이다. 한화의 한 전직 고위임원은 이런 진단을 했다. "한화의 주력 기업이 독점산업이거나 장치산업이다 보니 영업현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보니 관료화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신상필벌이 약하고 회장에게 잘 보이려 하거나 학연 등으로 연결된 임직원들이 출세하다 보니 치열한 경쟁이나 이런 점이 부족하다." 이 관계자는 "이번 비자금 사건도 퇴직 임원이 제보를 한 것인데 퇴직임원들에 대한 관리에 소홀하다 보니 그런 곳에서의 불만이 적지 않다"라고말했다.
관료화된 조직은 생동감이 부족한 대신에 ''그룹 회장''과 일종의 거래를 통해 점수를 따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인데 한화그룹의 지금 실태가 그렇다고 한 전직 고위임원이 말했다. 한화 비자금 사건 수사를 지휘하다 중도에 사퇴한 남기춘 전 검사장은 "한화는 기업이 아니라 조폭 같다"면서 김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기춘 검사장이 왜 그런 입장을 보였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한화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인 것 같다.
▶검찰이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 보다는 한화를 가볍게 보는 건 아니냐?= 검찰이 특정 기업을 쉽게 생각한다거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 한화 관계자들도 "한화가 특별한 자주 수사를 받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고 검찰 내부에서도 한화라고 일부러 수사를 하거나 그런 일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사실 김승연 회장이 처음 구속됐던 외환관리법 위반은 동생이 제보한 사건이고 2007년의 보복 폭행사건은 어떻게 보면 김 회장의 실수로 볼 사건이라는 것이다.
결국 삼성이나 현대차 그룹이 당했던 비자금 수사와 2003년 대선자금 수사는 대기업들이 대부분 연루된 사건이므로 한화라고 해서 특별하게 당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재벌기업들의 잘못된 기업경영 형태를 닮은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 자녀들에 대한 불법 또는 편법 상속,횡령과 배임 혐의 등등 기업들이 공통으로 위반하는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다. 사실 한화그룹에 대한 수사가 과도하다거나 무리하다고 하지만 검찰 수사를 불러온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다면 검찰 수사는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