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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공홍, 무솽솽, 그리고 이번에는 멍수핑(이상 중국)이었다. 그러나 장미란(27, 고양시청)의 독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역도 최강임을 자부하는 중국은 큰 국제대회 마다 전 체급의 금메달을 목표로 한다. 그런 중국에 눈엣 가시가 바로 장미란이다. 2006년 세계선수권부터 4년 연속 여자 최중량급 금메달은 장미란의 것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아예 장미란이 출전하는 체급을 포기했다.
장미란과 중국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 것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탕공홍의 금메달을 의심치 않았다. 예상대로 금메달은 탕공홍의 것이었다. 그러나 탕공홍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이름도 생소한 한국 선수가 탕공홍을 무섭게 위협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 바로 장미란이 그 주인공이었다. 원주 상지여중을 졸업하던 1999년, 아버지의 권유로 바벨을 잡은 장미란이 선수 생활 3년만에 일궈낸 쾌거였다. 더욱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 아시안게임이었다. 존재감을 제대로 알린 장미란이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이뤄진 탕공홍과의 리턴매치. 결과는 또 탕공홍에 이은 2위였다. 그러나 석연찮았다. 당시 용상 세계기록 182kg에 도전한 탕공홍은 바벨을 든 직후 중심을 잡지 못해 잠시 흔들렸다. 판정에 따라서는 실격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사통과. 결국 장미란은 아쉬운 많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중국은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무서운 상승세의 장미란을 의식한 결과였다. 후속 주자는 무솽솽이었다. 그리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새 카드'' 무솽솽이 장미란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대교체에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05년 세계선수권에서 이미 무솽솽을 한 차례 꺾었던 장미란은 도하 대회의 아쉬움을 털어버리려는 듯 2006년과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 연거푸 우승하며 3회 연속 세계선수권 정상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중국은 국가별 출전 종목수가 정해져 있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장미란 체급에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았다.
올림픽 당시 장미란은 무솽솽의 인상 세계기록을, 탕공홍의 용상 세계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며 역도 최강임을 자부하던 중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BestNocut_R]결국 중국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또 다시 세대교체를 단행했고 세 번째 주자가 바로 멍수핑이었다. 지난해 중국 대표선발전에서 무솽솽이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무솽솽을 제쳐놓고 4위였던 멍수핑을 대표로 뽑았다. 새 카드였다. 그러나 멍수핑은 국제대회 데뷔 무대였던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장미란보다 27kg이나 가벼운 297kg을 드는데 그쳤다. 장미란의 4연패였다.
하지만 멍수핑은 젊은 피였다. 무서운 기록 상승을 보인 멍수핑은 지난 9월 2010 세계선수권에서 장미란보다 1kg을 더 들어올려 광저우 아시안게임 전망을 밝혔다. 그러나 2년을 준비한 본 무대 아시안게임에서는 장미란을 넘어서지 못했다. 중국의 완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