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김성한이다. 80년대 야구스타로는 김일권, 김준환, 양기탁, 김봉연 등 군산상고 동문 선배들이 버티고 있지만 전북야구는 김성한이다.
지난 2004년 기아타이거즈의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모교인 군산상고 야구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성한 감독. 프로야구 원년멤버인 김 감독의 독특한 ''''오리궁둥이 타법''''은 온 국민의 뇌리에 지금도 깊이 각인돼 있다.
김 감독은 전북 군산 출신이면서도 호남야구를 대표하는 야구인 이다. 광주·전남을 기반으로 하는 기아타이거즈의 3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그의 진가는 공인된다. 2대 김응룡 감독의 배턴을 이어 받으면서 그는 호남의 대표 야구인으로 자리매김한다.
까까머리 군산상고 시절부터 동국대 야구부와 프로원년 해태타이거즈 입단, 그리고 프로구단 사령탑에 오르기까지 김 감독의 야구인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조실부모한 김 감독은 형님 밑에서 자랐고, 야구는 가슴아픈 가정사를 잊는 피난처였다.
수많은 좌절의 시기를 이겨낸 김 감독, 지금도 그의 뒤를 따르는 프로 현역시절의 무수한 기록들은 한국야구사에 빛나는 보석으로 박혀있고, 이는 그를 버티게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풍운아''''''''카리스마''''등 김성한이라는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지금도 유효하다. 김 감독의 야구인생은 그래서''''미완성''''이다. 그의 말대로 ''''미완의 대기''''를 즐기고 있는 것. 70년대 고교야구의 선풍적인 인기와 더불어 80년대 프로야구를 지켜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를 잊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김 감독의 인생역정, 그리고 앞으로 함께 써야 할 완성되지 않는 그의 야구인생을 들여다 본다.
△''''야구때문에 운동화 신어봤다'''' 나의 야구인생은 군산중앙초등학교 4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별다른 놀이기구가 없었다. 동네 야구가 고작이었고 기구도 여의치 않았다. 시멘트 포대로 만든 글러브와 고무공으로 초등학교 운동장을 누비던 시절이다.
그때 당시 군산중앙초교 이승철 감독이 운동장 한 쪽에서 놀던 나에게 대뜸 ''''진짜야구를 하고 싶지 않으냐''''고 제안했다. 단지 유니폼이 입고 싶어 야구를 갈망하던 시기였다. 이렇게 입문한 초등학교 야구. 첫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운동화 신고 다닌 사람이 없었다. 야구를 통해 운동화를 처음 신어봤다. 야구가 인생의 목표였다기보다는 단지 야구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대회를 나가면서 기량이 탄탄해졌다.
중학교는 의지와 상관없이 군산남중에 입학하게 됐고, 2학년 때 중학야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첫 트레이드가 이뤄진 때이기도 하다. 당시 소년체전의 인기는 대단했고, 전북도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였던 시대분위기이다. 소년체전 전북대표팀을 강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군산남중 2학년생과 군산중 3학년생들이 서로 맞트레이드 된다.
학년별로 편차를 보이는 실력을 보완하기 위한 조처였고 내 중학교 이력이 군산중으로 바뀌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야구인생에서 첫번째 좌절을 맛본 시기도 이때였다. 중학교 2학년 중간에 군산중으로 트레이드는 됐는데 상대적으로 체격조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각종 시합에서 벤치 신세를 져야 했고, 결국 소년체전 출전도 못 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이 때가 바로 첫 좌절의 시기였고 방황이 시작됐다.
△''''중학시절 축구할뻔 했는데'''' 방황을 시작한 중학교 3학년 시절. 체격적 열세로 야구를 그만둔 나는 축구를 기웃거렸고, 이를 발판으로 서울 중학교 전학도 고려됐었다. 축구실력도 여간 아니었던 나는 하마터면 방망이를 손에서 놓을 뻔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축구가 아닌 야구를 통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분이 바로 군산중학교 이준원 교감선생이다. 이 선생님은 친구들을 통해''''재능이 있으니 야구부로 복귀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했고, 이렇게해서 중학교를 4년(?)씩이나 다니는 계기가 됐다.
이 선생님의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러한 관심으로 작았던 키가 순식간에 11㎝가 커 172㎝가 돼버렸다. 그때부터 내적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투타 모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집안 형편이 어렵던 중학시절 마지막 6개월 동안을 이 선생님 사택에서 보낸 나는 75년 군산상고에 진학한다.
하지만 군산상고 야구부 입단은 또 다른 시련의 전주곡이었다. 중학교를 4년 동안이나 다닌 나였기에 친구들이 이미 선배로 자리잡았고, 엄격한 규율로 기숙사생활은 지옥과도 같았다.
12명의 3학년 선배들 유니폼을 꽁꽁 언 손을 불어가며 매일 혼자서 빨아야 했다. 밤이면 기숙사 뒷산에 올라 개인훈련을 할 때의 설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아픔이다. <다음에 계속>
김성한(金城漢)
생년월일 : 1958. 5.18
출신학교 : 전북 군산중학교 - 전북 군산상업고등학교 - 동국대학교(77)
선수경력 : 해태타이거즈(82)
코치경력 : 해태타이거즈 플레잉코치(95) - 해태타이거즈 코치(96) - 일본 주니치드레곤즈코연수
감독경력 : 기아타이거즈 초대감독(2000) - 기아타이거즈 총감독(04)- 군산상고 감독(현)
새전북신문 변관열기자 bky@sjbnews.com /노컷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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