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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윤발의 ''공자'', 실제 기록과 얼마나 같을까?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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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 아들 이름 잘못 표기 등 이모저모

    공자

     

    ''공자''는 예고편과는 달리 전반부에 노나라의 관리로 임명된 공자가 개혁 정치를 시도하다 축출되는 과정을 그리며, 후반부엔 방랑 끝에 고향에 돌아오기까지의 사연을 그린다. ''공자''의 이야기들과 실제 기록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까? 

    ◈ 공자는 꺾다리?
    =''사기''에서 공자는 키가 구척 육촌이라 ''꺽다리''로 불렸다 한다. 주윤발의 키가 크기 때문에 외모에선 합격.

    ◈ 사상가 공자와 활쏘기 =영화에는 공자가 활을 쏘는 장면이 있는데 ''좌전''과 ''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육예(六藝)라 하여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를 제자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여기서 사(射)는 활쏘기이므로, 가르칠 정도라 하면 당연히 활솜씨가 있었을 거라고 본다. 

    ◈ 사상가 공자와 전쟁 =공자는 노나라에서 대사구(오늘날의 검찰총장 겸 법원장)의 직위에 올랐다. 직책상 군사와는 거리가 있고 평소에 펼친 ''인애'' 사상에 비추어보면, 내란에 맞서 전투 일선에 나섰다고 보기엔 무리다. 영화 속 내란 장면에서 공자는 사실 북 치는 일밖에 하지 않았다.

    ◈공자와 남자의 만남=중국배우 주신이 연기한 위나라의 군부인 남자(南子). 공자가 영화에서처럼 남자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그녀는 당시 아주 유명한 미인이며,또 음탕한 여인으로 소문나 있었다. 제자들이 공자를 만류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공자가 그녀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 안회, 자로 두 제자의 죽음=제자 안회가 얼음에 빠져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일반적으론 병사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한 기록도 없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그 죽음이 상세히 기록된 것은 자로 뿐이다. 그러나 둘의 죽음은 모두 공자가 노나라에 돌아온 후, 70세가 넘어 생긴 일이다. ''공자세어''에 의하면 공자는 자로가 죽은 뒤 7일 후 죽었다. 영화의 설정은 완전 허구.

    ◈공자, 14년 동안 방랑? =공자가 관직에서 축출된 후 14년간 방랑했다고 하지만, 옆 나라인 위나라에 머무른 시기가 많았으며 노나라를 오가기도 했다. 영화에서 14년 만에 돌아왔다고 하는 건 허구다.[BestNocut_R]

    ◈호칭과 이름=공자가 자로에게 ''자로''라고 부르는데, 사실 ''자로'' ''자공'' 등은 존칭으로, 스승인 공자는 당연히 그들의 이름을 직접 불렀을 것으로 여겨진다. 가령 자로의 이름은 변중유(卞仲由)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관객들이 누가 누군지를 전혀 알 수 없게 되므로, 부득이 영화에선 후세인들이 알고 있는 존칭대로 대사를 처리했다.

    ◈치명적 오타=공자의 아들인 공리(孔鯉)는 중국 자막에서 공리로 나오는데 이는 엄연한 오자다. 때문에 중국 현지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 우리나라 자막에도 오자가 있다. 제자 한 명의 이름이 ''조점''으로 나오는데 진짜는 증점(曾點)이다. 증점은 증삼(曾參)의 아버지로, 증삼 역시 훗날 공자의 제자가 되었으며 보통 증자(曾子)로 불린다. 유학자들이 이 부분을 발견한다면 꽤나 흥분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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