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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시계획사업에 의해 철거 대상이 된 한 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차디찬 겨울날씨만큼이나 매몰차게 진행된 철거가 한 서민가장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영세 세입자를 위해 동절기에는 강제 철거를 금지한다''고 행정지침을 발표했었다.
''비극의 주인공'' 김 모(66)씨가 자살한 것은 지난 2일. 자신이 살던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시민아파트에서다. 평소에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웃들은 평범한 가장이던 그가 목숨을 끊은 것은 "순전히 분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살던 시민아파트는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사업에 의해 철거 대상에 들었다. 갈 곳 없는 10여 가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칼바람이 매섭게 불던 11월 말, 돌연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철거작업은 시작됐다. 바닥을 깨고 배관을 뜯어내는 철거 과정에서 엄청난 소음과 분진이 발생했다.
김씨는 매번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데 바로 옆집을 부수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항거했다. 철거반원은 막무가내였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날''도 김 씨는 철거반원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곤 몇시간 뒤 넥타이로 목을 맨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부인과 두 아들은 엄동설한에 가장을 잃었다.
김 씨의 장례가 치러진 이후 아파트 앞에 세입자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이웃들은 "동절기의 무리한 철거가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분노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같은 아파트에서 1살, 3살 배기를 키우고 있는 한 주부는 "철거하는 소리에 아이들을 꼭 껴안고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사람이 중요하지 철거가 그렇게 급한가"라며 흐르는 눈물을 억눌렀다.
자살한 김씨가 살던 용강동 시민아파트는 더구나 서울시와 세입자들간에 법적 소송이 수개월째 진행중인 곳이다.
서울시의 보상 체계에 문제점을 발견한 세입자들이 소송에서 이겨 주거이전비를 돌려받게 됐지만, 시에서는 이전비를 주는 대신 임대주택 입주권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사태가 악화됐다.
이에 세입자들이 다시 소송을 제기해 7일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유족에 따르면 숨진 김 씨도 임대주택 입주권이 취소되면서 당장 갈 곳이 없는 처지에 놓여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서울시는 앞서 지난해 말 영세 세입자를 위해 동절기에는 강제철거를 금지한다는 행정지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침을 비웃듯 올 겨울 서울시내 곳곳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 주택공급과와 마포구청에서는 "거주하는 집은 빼고 주변을 철거했기 때문에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철거 세입자들은 사람이 사는 와중에도 앞집, 뒷집에 강행되는 철거에 신변의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7일 현재 철거작업이 한창인 종로구 옥인동 시민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길가에 유리가 떨어지고 견딜 수 없는 소음이 발생하는 등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현실을 전했다.
정경섭 진보신당 마포구 위원장은 "아직 법적 소송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무리한 철거를 자행했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진행한다는 명목으로 제대로 보상하지 않아 한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