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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멈추면 잘린다"…작업중지권 확대에도 건설현장은 '막막' (계속) |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위험을 감지했을 때 스스로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확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고 있다. '급박한 위험'에 한정됐던 발동 요건을 '산업재해가 발생할 우려'까지 넓혀 노동자의 생존권을 두텁게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작 산재 사망사고의 절반 가까이가 발생하는 건설현장의 현실은 정반대다. 제도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고, 설령 알더라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노동자가 다수였다.
28일 CBS노컷뉴스가 건설노조와 함께 건설현장 노동자 302명을 대상으로 23일부터 26일까지 실시한 '건설현장 작업중지권 실태 설문조사' 결과, 확대되는 법적 권리와 현장 사이의 괴리는 수치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건설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은 '법'에는 있지만, '현장'에는 없었다.
10명 중 7명 "제대로 배운 적 없다"… '서명부'에 갇힌 권리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인 안전교육부터 현장에서는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었다. '작업중지권의 기준과 행사 방법에 대해 형식적인 서명이 아닌 충분하고 실질적인 교육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7%(288명 중 193명)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실질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응답은 33%(95명)에 그쳤다.
교육이 부실하다 보니, 눈앞의 위험을 보고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위험 상황 발생 시 누구에게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절차를 아는가'라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63.9%(288명 중 184명)가 "모른다"고 답했다. 권리는 존재하지만, 행사 방법은 배우지 못한 셈이다.
2022년 발표된 '건설현장 내 작업중지권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역시 "작업중지권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부족하고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아 대다수 근로자가 본인들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며 "교육 내용에 작업중지권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논문이 나온 이후 4년이 지났지만 현장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60% "위험해도 참았다"…멈춤을 가로막는 생계의 벽
문제는 단순한 인식 부족을 넘어선다. 제도의 존재 여부를 떠나, 현장에 만연한 구조적 압박이 더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추락·붕괴 등의 위험을 느껴 실제로 작업중지권을 요청하거나 작업을 거부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7.7%(282명 중 191명)가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멈춰본 노동자는 32.3%에 그쳤다.
노동자들이 멈춤을 주저한 가장 큰 이유는 고용 불안과 경제적 타격이었다. 설문 주관식 응답에는 "내일부터 일하러 나오지 못하게 할까 봐", "다음 현장 배속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클레임을 걸면 찍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반복됐다.
민주노동연구원의 2024년 '워킹페이퍼'에서는 이를 '사업주와의 수직적 권력 관계'에 의한 압박으로 분석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하청 노동자에게 '작업 중지'를 외치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밥줄을 거는 행위라는 것이다.
실제로 위험을 호소해도 원청의 무리한 '공기 단축 압박'과 하도급 업체의 '최저가 낙찰제' 구조 속에서 "이 정도는 괜찮으니 그냥 하라"며 묵살당하고 작업을 강행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44.1%(286명 중 126명)나 나왔다.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위험 상황에서도 공사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이를 두고 "고용 불안이 안전을 침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고용 불안이 침묵을 강요하고, 결국 위험 묵인과 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며 "찍힐까 봐 침묵하는 구조 자체가 산업재해의 온상"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특히 "빠른 공정 완료에 대한 압박은 작업중지를 눈치 보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위험 신호를 묵인하게 한다"고 짚었다.
설문에서 '원청이나 관리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즉각적으로 멈출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느냐'는 물음에 67.7%(285명 중 193명)은 "아니오"라고 답했다. 결국 건설현장에서 '멈춤'은 권리가 아니라, 생계를 걸어야 하는 선택에 가까웠다.
"급박한 위험"에서 "우려"로 확대되지만…60%는 "몰랐다"
현재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작업중지권의 발동 요건인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을 넘어 '산업재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까지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을 핵심으로 한다. 엄격한 '급박성' 잣대 탓에 노동자가 제때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설문에 따르면 산안법 개정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응답자가 57.7%(279명 중 161명)에 달했고, 법 개정 이후 현장이 변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43.8%(281명 중 123명)에 이르렀다.
응답자들은 주관식 답변을 통해 "현장에서 법제도는 시행하는 척만 할 뿐 실제로 반영되고 정착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법 개정 이후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법이 바뀌면 현장이 실제로 변할 것'이라는 응답은 56.2%로 절반을 넘었다. 기대와 불신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필요하지만 못 쓴다"…'멈출 권리'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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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에서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해 작업중지권이 반드시 필요한 생존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 282명 중 97.5%가 "그렇다"고 답했다. 작업중지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견이 없지만, 실제로는 행사되지 못하는 '괴리'가 확인된 셈이다.
작업중지권의 확대는 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법 개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권리가 실질적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현장에 안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제도가 겉돌지 않으려면 강력한 방어 장치가 수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응답자의 67.8%(276명 중 187명)가 '익명 신고 시스템 부재'를 호소한 만큼, 최 교수는 △익명 신고 시스템 활성화 및 불이익 철저 방지 △공기 단축 관행 개선 △법 개정에 따른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노동계 역시 궤를 같이한다. 법 문구를 다듬는 수준을 넘어, 작업 중지 기간 하청 노동자의 '임금 보전'을 법으로 강제하고, 개인이 아닌 집단적 대리인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해 '해고와 삭감'이라는 경제적 보복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비로소 '진짜 멈출 권리'가 완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핵심은 분명하다. 멈추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노동자는 멈출 수 없다. 건설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은 여전히 '권리'가 아니라 '위험'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