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6일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과 관련해 "민주노총에서 대통령을 향해 '나와라'라고 외치는데 대통령이 노사 협상 테이블에 나가게 생겼다. 나가지 않으면 노란봉투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공공부문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 대상이 '대통령'까지 될 수 있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위법 행위가 된다는 주장이다.
과연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대통령이 직접 하청 노조와의 단체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하고, 불참 시 법 위반이 되는 것일까. 노동부의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지침'과 관련 법리, 그리고 노란봉투법의 본래 취지를 토대로 해당 발언을 팩트체크했다.
대통령이 공공부문 하청노동자의 '진짜 사장'인가?
윤창원 기자결론부터 말하면, 노란봉투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대통령이 공공부문 하청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상대방, 즉 법적 '사용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일 시행된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 후단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했다. 핵심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는 점이다. 즉, 하청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원청'이라도 임금, 노동시간, 작업 방식 등 구체적인 근로조건을 통제하는 구조적 권한이 있다면 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노동부 해석지침에 따르면 정부나 국가기관이 관여한다고 해서 무조건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침은 "법령이나 조례가 정한 근로조건 기준,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예산의 집행, 국가 또는 자치단체가 산하기관에 대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지도·감독 등은 본질적으로 개별 노사 간 교섭의 직접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른 공공정책 집행을 단순히 원·하청 관계로 치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설령 특정 공공사업에서 정부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더라도, 그 교섭의 주체는 해당 사업의 예산과 지침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권한'을 가진 개별 부처의 장이나 지자체장, 공공기관장이 된다.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이 개별 하청 노동자의 휴게시간이나 수당 지급 기준 등 노동 조건을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한다고 볼 법적 근거는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교섭에 나가지 않아 노조법을 위반하게 된다는 장 대표의 발언은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생산라인 변경도 노조 허락을 받아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연합뉴스장 대표는 "노란봉투법 때문에 생산라인 하나 옮기는 것도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할 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개정 노조법 제2조 제5호에서 노동쟁의 대상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으로 확대된 점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 지침은 영업의 자유와 노동3권의 조화를 강조하며 명확한 선을 긋고 있다. 지침은 "합병, 분할, 양도, 매각 등 기업 조직 변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 그 자체는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다만 이러한 경영상 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근로자의 지위나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동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교섭 대상이 된다.
즉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생산라인을 옮기거나 AI를 도입하는 '경영상 결정' 자체에 대해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결정으로 인해 대규모 인력 감축이나 근로조건의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때, 그 '영향'에 대해 교섭하라는 것이 법의 취지다. 따라서 "365일 노사 협상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낼 판"이라는 주장은 일부 과장된 측면이 있다.
대통령은 아니지만, '정부 부처'를 향한 교섭 요구는 현실화
연합뉴스종합하면 "대통령이 교섭 테이블에 나와야 하고, 나가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장 대표의 발언은 '사실 아님'으로 판단된다.
다만 장 대표 발언의 배경에 있는 '공공부문에서 정부를 향한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가 확대될 것'이라는 문제의식 자체는 현재 노동계 흐름과 맞닿아 있다. 대통령 개인은 아닐지라도,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공공부문 하청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로 지목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란봉투법 시행 직후인 지난 10일 요양보호사, 아이돌봄사, 보육대체교사 등 민주노총 산하 5개 돌봄 노동조합은 보건복지부, 성평등가족부, 교육부 등 3개 정부 부처와 37개 지자체 등 총 54개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공식 요구했다.
이들은 대다수 돌봄 현장이 민간에 위탁돼 있지만 요양수가와 인건비 가이드라인, 인력 배치 기준 등 핵심 근로조건을 구조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결국 예산과 지침을 쥔 정부라고 주장한다.
노동부 해석지침 역시 "정부·공공기관 등이 예산 등에서 포괄적인 재량권을 가지고 외부기관을 통해 정책을 집행하는 경우, 사업 운영 주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의 유무 등을 살펴 개별 사안별로 실질적 지배·결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히며 정부 부처의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노동부 "공공부문 선도적 노사 모델 구축" 일단 협조 모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결국 노란봉투법이 대통령에게 직접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 예산을 집행하며 민간 위탁을 활용해 온 정부 부처들이 '모범적 원청 사용자'로서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교섭 요구에 어떻게 응답할지 법적·사회적 시험대에 오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는 모범 사용자로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지원한다는 국정 기조에 따라 관계부처와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노동계의 요구를 수렴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부처나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관련 위원회에 자문을 의뢰한 것도 단체교섭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틀 안에서 노동계와의 대화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앞으로도 개정 노조법 취지를 현장에 구현하기 위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선도적 노사관계 모델을 구축해 현장의 신뢰를 쌓고, 민간부문으로 확산하는 데 주춧돌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