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광양제철소 드론 전경. 광양제철소 제공이른바 '진짜 사장법'으로 불리는 노란봉투법, 즉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시행된 가운데 광양 산업 현장에서도 하청 노동자들의 원청 교섭 요구가 이어지며 새로운 노사 관계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특히 다수의 협력업체와 하청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포스코는 10일 광양제철소 원청 사업장에, 하청 노동조합으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았다는 공고문을 게시했다. 제철소 식당 등에 게시문을 붙여 교섭 요구 사실을 알리고, 오는 17일까지 추가 교섭 요구를 받겠다고 밝혔다. 이는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에 따라 다른 하청 노조의 참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다.
포스코 측은 "노동조합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포스코 협력사·공급사 연대)으로부터 단체교섭 요구 공문이 접수됐다"며 "관련 법령에 따라 교섭 요구 사실을 즉시 공고했으며, 향후 고용노동부와 관련 법령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협력사 등과 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교섭 요구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소속 하청 노조들이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노조 측은 산업안전을 우선 교섭 의제로 제시했다.
현재 광양제철소 하청 노동조합은 한국노총 금속노련 계열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계열로 나눠 활동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광양지회 등은 10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원청 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 측이 하청 노동자들과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노조는 포스코 측에 △불법파견 인정과 사과 △하청 노동자와의 단체교섭 실시 △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 처우 해결 등을 요구했다.
노조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인 포스코가 거의 모든 공정에서 약 2만 명에 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해 왔다"며 "이는 위장 하도급에 불과한 '불법파견·불법고용'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는 또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와 별도로 각각 교섭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경북지방노동위원회 에 제출한 상태다.
임용섭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광양지회장은 "언론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속노조는 이번 법 시행에 맞춰 처음 교섭 요구를 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매년 같은 시기에 포스코를 상대로 교섭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요구를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현행 노동관계법은 동일 사업장에 여러 노조가 있을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통해 조합원이 가장 많은 노조가 교섭대표권을 갖도록 하고 있다.
임 지회장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치면 가장 조합원이 많은 노조와만 교섭하게 돼 다른 노조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며 "한국노총 계열 노조와 금속노조는 원청에 요구하는 내용이나 노조 성향이 다른 만큼 각각 교섭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쪽 노조가 모든 교섭을 결정하게 되면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며 "각 집단의 의견을 각각 듣는 방식의 교섭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속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제출한 상태로, 노동위원회가 분리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 실제 교섭 절차가 곧바로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임 지회장은 향후 교섭이 이뤄질 경우 논의해야 할 의제로 불법파견 문제 해결과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임금과 복지 문제, 산업안전 등을 꼽았다.
또한 "포스코는 그동안 제기돼 온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며 "임금과 복지, 성과 분배, 산업안전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가 10일 서울 포스코센터 앞에서 원청 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지역 노동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광양 산업 현장에서 원·하청 교섭이 어떻게 이뤄질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은 "노란봉투법의 취지는 협력업체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권을 인정하고 과도한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지역 산업 현장에서 원청 기업이 법 취지에 맞는 모범적인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은 이어 "제도가 막 시행된 만큼 지금 당장 현장의 변화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광양제철소와 같은 대규모 사업장의 대응을 다른 기업들도 지켜볼 것"이라며 "포스코가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노란봉투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고 노사 간 의제와 교섭이 어떻게 형성될지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광양제철소는 지역 경제의 핵심 산업시설로 다수의 협력업체 노동자가 함께 일하고 있는 만큼, 이번 교섭 요구가 실제 협상으로 이어질 경우 노란봉투법이 지역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