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지단공원 출입문. 정영철 기자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의 춘절(春节)은 화창하고 맑았다. 중국의 설날인 춘절에 '봄춘'자가 들어간 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날 오후 베이징의 대표적인 묘회(庙会)가 열리는 지단공원은 가까운 전철역부터 부산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좇아 걷다보니 10분도 채 안돼 홍등이 빼곡히 매달린 출입문이 보였다. 청색과 녹색 계통으로 칠해진 문과 빨간색 등은 대조를 이루며 더욱 각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 발길이 막혔다. '묘회'라는 이름이 주는 무거운 느낌과 달리 활기찬 유원지처럼 시끌벅적했다. 묘는 조상이나 신을 모신 사당·신전을 일컫는 말이다.
30위안을 내고 입장권을 사고 인파를 따라 걸어들어 갔다. 새해를 상징하는 말 조형물 앞에서 또다시 속도가 느려졌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담소를 나눴다.
베이징 지단공원 안에 설치된 말 조형물. 정영철 기자 주변 노점상에서는 각종 음식 냄새를 흘리며 사람들의 식욕을 돋웠다. 조금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더 많은 노점상들이 즐비해 있었다. 어떤 곳은 사람이 몰려 줄이 적지 않게 늘어지면서 통행을 지체시켰다. 길 가장자리에서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고 있었다.
회오리 감자, 오징어, 피자, 만두 외에 이름 모를 다양한 중국 음식이 쉴새 없이 이어졌다. 총으로 풍선을 터뜨리기, 링을 던져서 물건에 걸기 등 여러 게임판이 곳곳에서 열렸고, 음식뿐 아니라 장난감, 액세서리, 기념품을 파는 노점도 많았다. 온통 먹고 즐기는 모습 뿐이었다. 차와 오토바이가 사라진 텅빈 시내 거리와도 확연히 대비됐다.
마이크 소리가 울리는 모퉁이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퀴즈 게임이 한창이었다. 중국 역사 문제를 풀면 선물을 나눠주는 식이다. 조금 있으니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와 태극권을 시연했고, 아이들은 동작을 따라했다. 사회자는 "가장 정확하게 따라 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베이징 지단공원의 즐비한 노점과 인파. 정영철 기자묘회의 전통적 의미만 알고 온 기자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조상과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라고 해서 조금이나마 엄숙한 분위기나 예스러움을 예상했는데 전혀 달랐다. 더군다나 이곳은 명·청 시대에 황제들이 지신(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이 아닌가.
주변에 있던 경비요원에서 확인차 묘회의 의미를 물어봤다. 그는 "원래 이곳은 황실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모여서 여가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춘절에는 오락과 놀이를 즐기고 음식을 먹는 장소"라고 했다. 가족과 함께 온 젊은 여성은 "베이징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이곳에서 다양한 중국의 오락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이라고 소개했다.
뒤늦게 중국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묘회를 찾아보고 나서야 의미가 크게 바뀐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조상이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집회 활동이었지만, 점차 상업과 오락이 융합된 종합 민속활동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명청시대 황제가 제사를 지냈다는 지단. 정영철 기자 피자로 허기를 달랜 후 출구를 찾아 걸었다. 그제야 '지단'(地坛)이라는 꽤 규모가 있는 황제의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색 천막에 황금색 천으로 덮인 탁자위로 제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옛것을 그대로 재현해서 인지 소박해 보이기도 했다. 제사를 준비하는 것인지, 끝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공원 관계자는 "내일 아침 9시에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오후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묘회의 반쪽을 담당하는 제사는 보지 못했다.
한때는 엄숙했을 '묘'가 사람들을 의무감에 모이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절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축제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끌어모으고 있는 게 지금의 묘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