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저가형 전기차가 시장을 견인하는 가운데 테슬라와 중국차의 파상공세가 이어지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 새로 등록된 전기차가 20만대를 넘어서면서 시장 상황은 좋아졌지만 업계에서는 "실질적 승자는 '테슬라'"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더욱이 올해에는 저가형 전기차가 국적 불문 국내·외 시장에서 경쟁적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출혈 경쟁을 하다시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모델들이 대거 출시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더 똑똑해진 차를 비슷한 가격에 내놓는 전략' 외에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테슬라, 현대차 안방서 턱밑 추격…3천만원대 모델까지 등장
22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2025년 국내 전기차 시장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새로 등록된 전기차는 22만177대로 전년 대비 50.1% 증가했다.
내연기관차를 포함한 자동차 판매는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전기차 수요가 더더욱 폭발적이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수치다.
다만 제조사별 판매 실적을 들여다보면 현대차 입장에서는 웃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아가 6만609대(27.5%)로 선두를 지켰지만 테슬라가 5만9893대(27.2%)로 사실상 동률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5만5461대(25.2%)로 3위를 지켰지만 테슬라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흐름이다.
모델별 성적을 보면 현대차의 위기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테슬라 모델Y가 5만397대로 전년 대비 169.2% 급증하며 압도적인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기아 EV3 역시 전년 대비 판매량이 많이 늘었지만 모델Y에 한참 못 미친다.
전체 흐름을 보더라도 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57.2%로 전년 대비 6.8%포인트 하락한 반면, 수입 전기차 점유율은 42.8%로 확대됐다.
브랜드 경쟁력은 테슬라가, 가격 경쟁력은 중국 차가 견인하는 흐름이 형성되는 가운데 테슬라코리아가 실구매가 3천만원대 모델들을 내놓은 것 역시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테슬라는 올해 모델3 스탠다드 후륜구동(RWD)는 4199만원, 모델 3 롱레인지 RWD는 5299만원으로 책정했다. 올해 정부 보조금까지 적용하면 3천만원대 후반으로 떨어져 경쟁 모델인 아이오닉6와 최종 가격은 별반 차이 나지 않는다.
유럽서는 안방마님들 줄줄이 귀환
현대차의 또다른 대형 시장인 유럽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현대차 전체 판매량 중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 시장과 더불어 20% 가까이 된다. 미국이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한 상황에서 유럽은 현대차 입장에서는 전기차를 대규모로 판매할 수 있는 유일한 시장으로 꼽힌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소형·저가 전기차 판매가 급증했다. 보조금은 축소됐지만 환경 규제를 강화됐고 충전 인프라도 지속적으로 확충한 덕분이다. 업계에서는 BEV 점유율이 올해 20%를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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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국 브랜드들은 지난해 소형·저가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해 점유율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다. 올해에도 보급형 전기차를 경쟁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르노 트윙고와 폭스바겐 ID.Polo(구 ID.2)의 예상 가격은 2만유로 초반 선이다. 중국산 전기차의 가격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는 전략이다.
현대차도 지난해부터 간판 모델 격이었던 투싼과 스포티지 대신 캐스퍼 일렉트릭의 생산 물량을 늘렸다. 캐스퍼의 최근 2년 사이 판매량은 5배(8657대→4만3247대) 늘었다. 덕분에 유럽 시장 내 전기차 점유율을 어느 정도 지켰지만 아이오닉6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이를 대체할 모델이 아직 없다.
현대차는 준중형 전기차인 아이오닉3를 서둘러 출시해 유럽 시장 점유율 방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캐스퍼와 아이오닉3의 경쟁력이 유럽 브랜드에 비해 우위에 있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출시될 르노 트윙고는 2만 유로대 미만으로 살 수 있어 캐스퍼보다 싸다. ID.Polo는 아이오닉3보다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와 A/S 서비스 측면에서 유럽 시장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믿을 건 보조금? 현대·기아-테슬라 별반 차이 없어
중국차와 테슬라의 이중 공세에 이어 유럽 브랜드들이 '홈 어드밴티지'를 되찾으면서 일각에서는 "보조금밖에 기댈 곳이 없다"는 자조 섞인 한탄도 나온다.
CBS노컷뉴스가 2026년 국내 전기차 국고보조금을 조사한 결과, 기아 PV5가 648만원으로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오닉6 등 현대·기아차 대부분 500만원 이상 보조금을 받지만, 올해부터는 폭스바겐과 테슬라도 400만원 이상 받게 된다.
업계 전문가는 "보조금 혜택을 현대차가 누려왔는데 테슬라가 그만큼 가격을 낮추고 중국차도 본격적으로 들어와서 올해는 정말 힘들어질 것"이라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테리어, 승차감, 공간 설계 측면에서 테슬라가 현대차보다 낫다고들 한다"고 평가했다.
보조금 특혜도 예년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생존 전략은 '더 똑똑한 차를 파는 것'이라는 제언이 나온다. 테슬라의 폭발적인 인기 역시 초창기 오토파일럿과 FSD(자율주행기술) 기능을 통해 기술적 차별화를 한 결과였다는 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아이오닉3 또한 폭스바겐 ID.Polo보다 크게 비싸지 않으면서 주행거리와 충전 성능, 인포테인먼트 완성도에서 분명한 차별화를 제시해야만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산대 미래자동차학부 문학훈 교수는 "유럽에서든 국내에서든 현대차가 가격으로 중국 차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로봇을 활용하는 등 생산 단가를 낮추고 고급 사양을 중·저가형 모델에도 탑재하는 등 고급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