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기고

    [기고]2025년을 버텨낸 우리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 0
    • 폰트사이즈
    연합뉴스연합뉴스
    2025년 마지막 칼럼의 주제를 고민하던 중, 한 친구로부터 기사 하나를 받았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65번째 생일을 맞아 청년들에게 보낸 옥중 메시지를 다룬 기사였다. "청년들에게 올바른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내용이었다. 친구는 "휴~"라는 한마디만 남겼다. 나 역시 짧게 답했다. "조금만 참자."
     
    '부모의 마음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그의 궤변을 듣자니,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군인 아들과 통화했던 한 아버지가 떠올랐다. SNS를 통해 전해진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다.
     
    막 잠에서 깨어 계엄 선포 사실조차 몰랐던 아들은 물었다. "(북한) 도발이에요?" 사태에 대한 아버지의 판단은 참으로 간명했다. "도발 아니야. 그냥 대통령이 미쳐서 내린 거야." 이어진 당부는 더욱 명료했다. "너 목숨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고, 두 번째는 민간인을 공격하거나 살상하는 행위를 절대 하면 안 돼! 알았어? 너 소대원들 잘 지키고! 알았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너 엄마한테 빨리 전화해. 지금 엄마 걱정 안 하게. 말 잘하고." 아들은 짧게 대답했다. "아, 네!"
     
    연합뉴스연합뉴스
    그날 밤, 이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었을 수많은 시민들은 국회로 모여 계엄군을 몸으로 막아섰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아들이었을 젊은 계엄군인들 역시 "민간인을 공격하거나 살상하는 행위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외면하지 않았다.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는 군 통수권자의 지시에, 군 지휘관들은 "아, 네"라고 답했지만 말이다.
     
    대통령이 "미쳐서" 내린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끝났지만, 그런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에는 122일이 걸렸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은 편히 잠들지 못했다. 특히 내란수괴 피의자가 법의 집행을 거부하자, 트랙터와 화물차를 몰고 상경한 농민·노동자들과 응원봉과 손난로를 든 2030 도시의 젊은이들은 '남태령'에서 만나 혹한과 싸우며 연말을 보내야 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새해 벽두에도 이들은 여의도와 종로, 광화문을 오가며 좀처럼 거리를 떠나지 못했다. 더욱이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좀처럼 내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법원이 내란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던 윤석열을 석방하자 시민들은 "설마?"라는 생각에 애를 태우기도 했다.
     
    4월 4일, 결국 내란의 주범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어 6월 4일,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모든 것이 끝났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내란 그 자체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세력과의 완전한 '결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25년은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들이민 '관세·안보 청구서'는 매서웠다. 그는 막무가내로 상호관세 25%를 부과하며, 이를 피하려면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미 투자를 감수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연합뉴스연합뉴스 
    '동맹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을 시사하며 한국의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고, 대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한국의 역할 확대를 주문했다. 특히 '대만 방어' 문제에서는 동참을 기정사실처럼 흘리며 선택을 재촉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며, 한국을 패싱하고 김정은과의 직거래 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트윗을 날리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한국 정부는 이런 '트럼프발 바람'을 비교적 잘 막아내며 선방했다. 트럼프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조선업 전용 1500억 달러 규모의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포함해 총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제시하며,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연 200억 달러' 투자 상한에 합의하며, 우리 외환시장에 가해질 수 있는 부담도 일정 부분 완화했다.
     
    북한 문제에선 '당신은 피스메이커, 나는 페이스메이커'라는 구도를 내세워 한국의 지분을 약속 받았다. 대만 문제에서는 미국 쪽으로 한 발 더 다가가는 대신,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이라는 실리를 챙겼다. 한국 협상팀을 두고 "터프했다"고 한 트럼프의 평가는 결코 빈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이렇게 돌아보면, 2025년의 대한민국은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았다. 안으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비상계엄과 그 후폭풍을, 밖으로는 트럼프가 들이민 냉혹한 청구서를 동시에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잘 버텼다. 혹한의 거리에서, 일상의 자리에서,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지치면서도, 결국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2026년도 만만치 않겠지만, 이 말만은 하고 새해를 맞자. "잘 버티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형주 칼럼니스트
    - 전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