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전남콘텐츠코리아랩에서 열린 기후정책 공론회에서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 ▶ 글 싣는 순서 |
① "올 여름 전기세 5만 원…지구를 위한 응답이에요" ② "기후위기, 혼자 아닌 함께"…순천생태학교 '첫 발' ③ "이렇게 하면 바뀌겠죠" 효천고 기후환경 동아리 '센트럴' ④ 뚜벅이 환경공학자의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 ⑤ "지구를 향한 작은 발걸음, 순천에서도 울리다" ⑥ 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⑦ 기후위기 대응, 급식에서 시작하다 ⑧ 버려질 뻔한 병뚜껑, '플라스틱 대장간'에서 변신하다 ⑨ "노플라스틱 육아, 가능해?" 환경 덕후 엄마의 실천법 ⑩ "손은 아프지만, 지구는 웃는다" 종이팩을 살리는 카페들 ⑪ '지금 바로 여기'…작은 극장에서 시작된 기후 연대 ⑫ 텀블러 500개, 쓰레기는 바나나 껍질뿐 ⑬ 기후위기 시대의 여행법…"멈출 수 없다면, 느리게 천천히" ⑭ "꽃을 보니까, 지켜주고 싶어졌어요"…기후위기 시대,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다 ⑮ "가져와요 플라스틱 지켜가요 우리바다"…바다를 살리는 시민들 ⑯ 차 없이도 괜찮은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⑰ 김밥을 말며 아이들이 배운 건? '생태감수성' ⑱ "기후위기, 동물도 아픕니다"… 동물권 다룬 기후영화제 열린다 ⑲ 영화 <플로우> 본 아이들…"기후위기, 혼자선 못 이겨요" ⑳ "골칫덩어리 전선 뭉치들, 버리지 말고 가져오세요" ㉑ 차 대신 버스, 민혜씨의 선택 ㉒ 케이크도 락앤락에… "예쁜 포장, 사실은 더 불편해요" ㉓ 지방선거 앞두고 시민이 묻다…"기후정책은 정치의 문제" ㉔ 기후위기 논의에서 배제된 여성들 (계속) |
기후위기는 지역의 일상과 산업, 재난 대응 전반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기후정책이 과연 누구의 삶을 기준으로 설계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충분히 제기되지 않았다. 같은 재난이라도 피해는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고, 그 부담은 특정 집단에 더 집중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4일 전남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전남콘텐츠코리아랩에서 열린 기후정책 공론회에서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짚으며, 기후위기가 기존의 성별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반영할 뿐 아니라 이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기후재난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닥치지 않는다"며 "탄소를 얼마나 배출했는지와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감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불평등한 사회 구조 위에서 작동하면서, 재난의 영향 역시 계층과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기후재난의 성별 영향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국제적으로 기후재난으로 발생하는 난민 가운데 여성 비율이 높고, 재난 상황에서 여성의 사망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통계가 반복해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돌봄 노동의 집중과 주거 취약성, 이동과 정보 접근의 제약 같은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아이와 노인, 아픈 가족을 돌보는 역할이 여성에게 집중된 구조에서 재난은 곧바로 성별화된 피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성별 불균형은 한국 사회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폭염과 같은 기후재난에서 고령 여성의 피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을 언급하며, 여성 1인 가구 구조와 돌봄 공백을 그 배경으로 짚었다. 이 대표는 "평생 돌봄을 담당해온 사람들이 정작 노년에는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재난에 노출된다"며 "재난 대응이 개인의 주의나 책임으로 환원될수록 사회적 보호망의 빈틈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의 영향은 농촌에서도 여성에게 더 크게 나타나는 실정이다. 기후변화로 농작업 환경은 악화되고 노동 강도는 높아졌지만, 여성 농민은 농가 경영주로 인정받지 못해 재난 지원과 정책 참여에서 배제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책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동일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사에서도 기후위기 이후 돌봄 노동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에서 남성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대표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기후정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정의로운 전환' 개념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 보호가 중요한 과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논의가 남성 중심의 산업 노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발전소나 공장이 바뀔 때 영향을 받는 것은 그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살아가고 돌보는 사람들 전체"라며 "돌봄과 지역의 삶이 빠진 전환은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여성이 단지 피해자로만 머무는 존재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비율이 여성, 특히 청년 여성에서 높게 나타난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문제의식과 해결 의지가 높은 집단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후위기를 가장 심각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정책을 만드는 자리에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대국민 공개 논의 토론회'의 13명 발제, 토론자 중 여성은 단 2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이 같은 지적은 기후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넌스 구조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이 대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을 논의하는 공식 토론회와 위원회 구성에서 여성 참여 비율이 법적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9월에 영린 2035 NDC 토론회서 발제·토론자 13명 중 여성은 단 2명에 불과했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의제가 정책의 중심이 되느냐의 문제"라며 "전력·산업·수송 같은 감축 수치 중심 논의 속에서 돌봄과 재난 취약성, 일상의 문제는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대안으로 시민 참여 기반의 기후정책 논의를 제시했다. 다만 기후시민의회와 같은 숙의 구조 역시 대표성과 성평등이 확보되지 않으면 또 다른 배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누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시민의회는 민주주의가 될 수도, 형식에 그칠 수도 있다"며 "성별과 연령, 사회적 조건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성평등한 기후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기후 거버넌스 내 여성 참여 최소 40% 보장 △노동자·농민·돌봄 당사자 등 다양한 기후당사자 참여 제도화 △성별 분리 기후통계 생산 △기후정책과 돌봄·생활 의제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기후정책은 감축 목표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지키고 어떤 사회로 전환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돌봄과 불평등을 외면한 기후대응은 결국 또 다른 위기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