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 로고. 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새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서반구(미주대륙)에 전략적 최우선 순위를 두는 한편, 동맹국의 기여 확대를 요구했다. 우리의 관심사인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선 '비핵화' 목표가 사라져 그 배경과 의도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5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의 트럼프 2기 전략지침서인 NSS를 공개했다. 1기 행정부였던 2017년과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2년에 이어 3년 만이다.
새 NSS는 19세기 당시 미국 먼로 대통령이 유럽의 신대륙에 대한 간섭을 반대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인 고립주의(먼로 독트린)의 부활을 공식화했다. 이와 동시에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에 대해 무역과 국방 등에서 더 많은 지출과 역할 분담을 강조했다.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국방) 장관. 연합뉴스피트 헤그세스 전쟁부(국방) 장관은 6일 한국과 이스라엘 등은 '모범 동맹'으로 혜택을 주되, 상대적으로 기여도가 낮은 동맹들엔 '무임승차'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NSS가 '문명의 소멸' 같은 거친 어조로 유럽을 비판함으로써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반면 중국에게는 균형과 상호이익을 언급함으로써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도전'이라는 기존 문서의 적대적 인식을 상당 수준 완화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에 대한 우려와 대만 방어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기조 변화는 뚜렷하다.
레베카 리스너 미국외교협회(CFR) 외교정책 선임 연구원은 협회 홈페이지에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초당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중국·러시아와의 '대국 경쟁'이라는 지향점은 사라졌다"며 "경제가 '궁극적인 이해관계'임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새 안보전략은 한미동맹에 따른 부담은 더 강화하고 한반도 문제의 우선순위는 더 낮췄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29쪽짜리 이번 NSS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북한'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이는 지난달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에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명시된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또한, 북한은 미국의 각종 안보문서에서 이란 등과 함께 매번 주요 위협으로 거론돼왔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일단 북한 및 비핵화 언급이 없는 것은 어찌 됐든 미국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는 해석이 불가피하다. 다만 향후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외교적 유연성이라는 관측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연합뉴스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감축 문제가 향후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고 "당분간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이며, 내년에 북미대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도 최근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신시대 중국의 군비통제 군축 및 비확산'이란 백서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문구를 생략했다고 지난 6일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이 미국 견제를 위해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암묵적 인정하는 것이라는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미중 전략경쟁이 일시 소강 기미를 보이긴 하지만 장기화가 불가피한 가운데, 이들의 한반도 정책에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한국의 대외전략에도 또 다른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한국과 한미동맹에는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커지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부교수는 현 동북아 정세를 "소나기가 아니라 기후 자체가 바뀌는 구조적 변화"에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