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은행권에 조(兆) 단위 과징금이 사전 통보된 가운데, 금융당국이 자본비율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홍콩 H지수 ELS 과징금에 이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및 국고채 입찰 담합 의혹에서도 대규모 제재가 예상되면서, 은행권의 '생산적 금융' 여력이 수십조 원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탓이다.
30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과징금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이를 위험가중자산(RWA)에 반영하지 않고 유예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는 과징금이 부과되면 RWA가 즉시 늘어나는 구조"라며 "은행들이 대규모 과징금에는 소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큰 만큼, 과징금 확정 전에는 반영을 유예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핵심 자본건전성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 비율)은 보통주 자본(분자)을 RWA(분모)로 나누어 산출한다. 즉, 분모인 RWA가 커질수록 비율이 떨어지는 구조다.
은행권은 소송을 통해 과징금이 감액되거나 취소될 여지가 있음에도, 확정되지 않은 금액을 즉시 RWA에 반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금감원이 지난 28일 홍콩H지수 ELS 판매은행인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사에 약 2조 원의 과징금·과태료를 사전 통지하면서 규제 완화 논의에 더욱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첫 조 단위 과징금이자 역대 최대 규모다.
현행 규정상 금융회사가 과징금을 부과받으면 통상 해당 금액의 600%를 운영리스크로 추가 인식하며, 이는 최대 10년간 RWA 부담으로 이어진다. 금감원의 통보대로 과징금이 2조 원으로 확정된다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약 12조 원의 RWA 증가 요인이 발생하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이 경우 금융지주 CET1 비율이 100bp(1.0%포인트)가량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기업대출이나 생산적 금융 지원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5대 금융지주는 국민성장펀드 참여 등을 포함해 총 73조~93조 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 공급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과징금에 따른 운영리스크 반영 기간을 애초 10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도 따져보고 있다. 당국은 사고 재발 우려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재량으로 반영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의 LTV 담합 의혹에 대해 조만간 결론을 낼 것으로 알려지며 대규모 과징금이 추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금감원이 사전 통지한 2조 원 규모의 제재금은 금융위 논의 단계를 거치며 줄어들 여지가 있다. 금융위는 과징금이 부당이득액의 10배를 초과하는 경우 그 범위 내에서 감액할 권한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