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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저지선'이던 필리버스터…'요식행위'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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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정당

    '최후 저지선'이던 필리버스터…'요식행위'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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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野전당대회까지 고려한 필리버스터 일정

    '약속 대련' 비판에도 22대 국회서 6차례나
    "필리버스터는 최후 수단, 공론장 회복 절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제428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EBS법)이 상정되자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 나서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제428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EBS법)이 상정되자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 나서고 있다. 윤창원 기자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다수당의 독주를 막고, 국민에게 반대 이유를 호소하는 마지막 견제권입니다. 현실 국회에서는 24시간 발언 제한, 여야 순번 배정 등으로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EBS법'이라 불리는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시작하며 언급한 말이다.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

    최 의원이 이같이 언급한 배경으로는 '소수당 최후의 저항 수단'이라 불려왔던 필리버스터가 최근 그 취지와는 멀어지고, 일종의 '정치적 요식 행위'로 전락하고 있는 점이 꼽힌다. 취지가 살아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야, 21일·23일 쪼개기 본회의 '촌극'

    여야는 21일, 23일 국회 본회의를 '쪼개기'식으로 개최하는 데 합의했다. 여당에선 이번 임시국회 회기 안에 EBS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상법개정안을 통과시키길 원하는데, 국민의힘에서 이를 모두 반대하며 필리버스터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더라도 해당 법안들을 한 번에 상정하고 순차적으로 통과시키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 22일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하루는 뛰어넘기로 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제428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EBS법)이 상정되자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 나서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제428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EBS법)이 상정되자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 나서고 있다. 윤창원 기자
    필리버스터는 재적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이 동의하면 24시간 이후 강제 종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21일 EBS법, 23일 노란봉투법·상법개정안을 각각 나눠서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3개 법안이 모두 통과되는 시점은 25일이 될 예정이다.

    사실 소수당의 원내 전략은 다수당이 법안 처리 절차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 혼선을 주는 게 정석이다. 필리버스터 진행중에 본회의 일정이 여야 합의로 조율된다는 건 그 자체로 '코미디'다.

    이를 두고 '필리버스터를 여야가 약속 대련처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어떻게든 법안 통과를 늦추고 막아 세우려는 이른바 '비장의 카드' 같은 건데, 이를 일련의 절차에 불과한 정치적 이벤트의 하나로 만들어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엔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각 당에서 돌아가면서 본회의장을 지킬 조를 짜기도 하고, 의원의 해외 출장 일정도 토론 종결 시간에 맞춰 본회의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짜는 등 독특한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우리 국회법이 다른 나라에 비해 필리버스터 관련 조항을 더욱 정교하게 규정하고 있는 점이 오히려 본래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배경이 된다고 지적한다. 필리버스터 제도의 근본 취지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수에 대한 존중'인데, 형식적인 조항을 지키는 데만 집착하다 보면 이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극한 대치에 22대 들어서만 6번…"공론장 회복 절실"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1988년 10월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1988년 10월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리버스터가 처음부터 이렇게 무시를 받았던 건 아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야당 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4년 4월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의 구속을 막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반대 토론을 이어간 게 국내에선 최초로, 소수당의 마지막 저항권 행사 수단으로 평가됐다.

    이후 1973년 유신 정권 때 조항이 삭제됐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부활했다. 2016년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이 연계해 총 192시간 25분 동안 토론을 이어갔던 것도 크게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1회, 20·21대 국회에서 각 2회씩 밖에 열리지 않았던 필리버스터는 22대 국회 들어 1년 남짓 동안 벌써 6회 진행됐다. 여야간 극한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횟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무제한 토론 시간 동안 다수당이 찬성 토론에 나서서 소수당의 반대 토론보다 더 오랫동안 발언하는 등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달 초 진행된 'KBS법'에 대한 필리버스터에서 국민의힘은 11시간 59분을 쓴 반면, 민주당은 12시간 9분 발언했다.

    중앙대 최영진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필리버스터에서 여야가 함께 이야기하는 건 그 기능을 못하는 것 같다고 본다.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며 "필리버스터로 가기 전에 여야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필요가 있다. 공론장의 회복이 시급해보인다. 필리버스터는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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