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화면이 탱크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잠시 끊긴 후 탱크가 폭발한다.
소셜미디어(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크라이나군 드론 영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양측은 매달 약 1천여개의 목표물을 이런 FPV(1인칭 시점) 드론으로 공격한다.
전장에서 사용하는 FPV 드론은 크고 비싼 물건이 아니다. 야전에서 병사들이 직접 만든 급조품이다. 드론을 띄우기 위한 모터, 제어하기 위한 센서, 조종하기 위한 원격 송수신기만 있으면 쉽게 제작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런 핵심 부품을 미리 대량으로 비축해뒀다가, 야전에서 간단히 조립해 정찰하고 공격하는 데 사용한다. '1회용' 소형 FPV 드론이 야전의 필수품이 된 것이다.
'1회용 드론'에 도전장 내민 육군 5사단
우리 군에도 1회용 드론을 운용하기 위해 나선 곳이 있다. 육군 5사단의 '드론 공작소'다. 5사단은 드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지난 6월 9일 공작소를 열었다. 사단 드론 동아리 장병들은 이곳에서 드론을 직접 조립하고, 정비 및 조종 경험을 쌓는다.
1회용 드론은 사람이 핵심이다. 자폭 공격을 주로 하기 때문에 한 번 쓰고 나서 곧바로 다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조종만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조립과 정비까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드론 동아리 인원들이 드론을 만들고 있다. 육군 5사단 제공공작소를 맡고 있는 김상훈 주임원사는 "충분한 경험치를 가진 인원들을 양성하려면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며 "전쟁이 터지고 나서 키우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사전에 드론 공작소를 통해 육성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소재 실험이다. 공작소에서는 나무, 종이, 3D 프린터 등 야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드론을 만든다. 보급이 끊긴 상황에서도 드론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다.
사단 드론 동아리 회장인 조경연 상사는 "유사시 핵심 부품 수급만 원활하다면 어떤 소재로든 드론을 만들 수 있다"며 "어떤 재료로 뼈대를 만들어야 충격을 잘 버티는지 찾기 위해 다양한 전투실험을 해보고 있다"고 했다.
탄약처럼 빠르게 소모하는 '1회용 드론'
군이 1회용 드론에 주목하는 이유는 가성비다. 최전방 소부대의 전투력을 끌어올리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생산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회용 드론은 러우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접어든 2022년 8월 이후 등장했다. 전선이 고착화되며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막대한 화력을 쏟아붓게 되자, 저렴한 가격으로 정밀 타격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민수용 드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민수용 FPV 드론 부품을 구해다가 야전 '워크샵(공작소)'에서 직접 조립한 뒤, 여기에 수류탄과 같은 폭발물을 달아 공격용으로 개조했다. 이렇게 만든 FPV 드론은 전방 소부대의 눈과 주먹이 된다. 우크라이나군을 따라 러시아군도 2024년부터 FPV 드론을 사용하고 있다.
드론을 조립하는 우크라이나군. 우크라이나 국방부 X 계정 게시글 캡처사람이 직접 드론 시점을 보면서 조종하니 명중률이 크게 높아졌다. 전차와 같은 고가치 표적도 약점을 정확히 타격해 무력화할 수 있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크라이나가 400달러(약 55만원)짜리 드론으로 100만달러(약 14억원)짜리 러시아 탱크를 격파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곡예비행' 하는 FPV 드론…훈련 방식도 달라
공작소도 FPV 드론에 집중하고 있다. 실전에서 FPV 드론을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4단계 훈련 체계도 도입했다. 단계별로는 △시뮬레이터 훈련 △손바닥 크기의 1셀 미니 드론 조작 훈련 △5인치 드론을 활용한 장애물 통과 훈련 △실제 전술 비행 및 전술 운용 훈련을 받는다.
특히 4단계에서 하는 전술 비행 훈련은 민간의 드론 운용과 완전히 다르다. 민간에서 농약 살포나 안전 점검 등의 목적으로 드론을 날릴 때는 정해진 비행경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다. 드론 조종 자격을 취득할 때도 코스를 얼마나 잘 따라가는지가 핵심 평가 기준이다.
드론 공작소에 마련된 비행 코스로 FPV 드론을 날리는 모습. 육군 5사단 제공반면 군의 드론 운용은 '곡예'에 가깝다. 드론을 요격하기 위해 날아오는 물체를 회피하고,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판단하면서 표적을 공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작소에서는 이런 훈련을 위한 비행코스도 마련했다.
"드론 산업 키우고 공급망 다변화해야"
다만 한계도 있다. 드론에 필요한 핵심 부품 조달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공작소에서는 가성비에 맞는 국산 부품을 찾기 어려워 수입품을 쓰고 있다. 뼈대는 야전에서 구하더라도, 정작 드론을 움직이는 모터, 센서, 원격 송수신기 등 핵심 부품은 자체 조달이 안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공작소 설립을 도왔던 KAIST 국가미래전략기술정책연구소 조상근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국가 차원에서 200개 정도 되는 드론 스타트업을 만들었다"며 "드론 소부장 생태계를 조성하고, 중국 부품에 의존하지 않는 미국이나 유럽 기업과 네트워킹해서 공급망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 7월 10일 공개한 '미국 군용 드론 우위 확대'라는 명령서에서 "수백개의 미국 제품들을 우리 군이 구매하는 것을 승인해 걸음마 단계의 미국 드론 제조 기반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우리 전투 부대들을 다양한 저가 드론으로 무장시키겠다"고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