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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청년 광장의 청년

  • 2025-05-21 05:00

[2025 굴뚝신문]

'굴뚝신문' 발행위원회 제공'굴뚝신문' 발행위원회 제공지난해 12월 3일, 한국사회는 예고 없는 계엄 선포로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광장에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가지각색의 응원봉을 든 많은 청년들이 참여했다. 이 모습 뒤에는 어떤 현실이 자리하고 있을까? 청년세대를 단일한 집단으로 묶을 수 없음에도, 이들의 삶과 정치의식을 이해하려는 실증적 연구는 부족하다. 오늘날 청년세대의 삶의 조건은 무엇이며, 그것이 그들의 인식과 정치참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2024년 8월 기준 20대 임금근로자의 43.1%가 비정규직으로, 관련 조사 이래 최고치다. '쉬었음' 청년도 2025년 2월 기준 50만 4천여 명에 달한다. 청년들이 겪는 노동불안정성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과거에는 특정 직장에서 오랜 기간 일하며 형성된 동료의식과 직업 정체성이 안정감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제 청년들은 액화되는 노동의 모습(『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이승윤 2024, 문학동네)에서 자신을 정의해야 하는 실존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청년들의 계층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2005년에는 33.5%가 자신을 하층이라고 인식했으나, 2022년에는 약 38%로 증가했다. 더 주목할 점은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다. 계층 상승이 어렵다고 보는 비율은 2005년 41.7%에서 2022년 55.7%로 크게 늘었다. 청년세대의 절반 이상이 개인의 노력으로는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광장 이후』 신진욱, 이재정, 양승훈, 이승윤. 2025년 5월 26일 출간예정, 문학동네)

이러한 청년 불평등과 사회구조에 대한 불신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 청년층의 고용불안정성이 심화되었다. 특히 남유럽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급증했고, 많은 청년들이 단기 계약직과 무급 인턴십을 전전하는 '영구적 수습생'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의 정치적 대응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로, 투표율 하락과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과 사회운동이다.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 운동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2011년,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우리는 상품이 아니다', '진짜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성 정치권의 외면을 비판했다. 이 운동은 수평적 의사결정과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하며 '포데모스'라는 정당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 불안정성이 항상 진보적 정치 성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극우정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들은 불안정 고용을 이민자와 EU 탓으로 돌리며 민족주의적 해결책에 기울었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불안정 노동을 경험하는 청년들은 크게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다. 둘째, 기존 체제에 대한 급진적 도전이다. 셋째, 단순한 해답을 제시하는 포퓰리즘적 해결책에 대한 지지다.

한국의 청년들은 어느 방향으로 향할까? 대선 투표율을 보면,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청년층 투표율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낮았다. 20대의 투표율은 69% 내외로, 80% 이상을 웃도는 50대와 60대 이상에 비해 훨씬 낮았다. 하지만, 동시에 최근의 광장 참여와 관련 조사결과를 보면, 노동과 사회 불평등 이슈에 대한 이들의 관심도 높다.

해결책은 두 방향에서 모색해야 한다. 먼저, 청년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반영하는 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 표준적 고용관계를 벗어난 노동형태를 포괄하고,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며, 실질적 재분배효과가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청년들의 다층적인 목소리가 정치 과정을 통해 제대로 대변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구축되어야 한다. 청년층 당사자의 참여를 제도화하며, 다양한 정치적 실험과 참여 구조를 확장해야 한다.

청년들이 경험하는 불안정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해결책 역시 개인의 노력이 아닌 사회적 연대와 제도적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유럽과 미국의 경험이 보여주듯, 청년 불안정성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정치적 활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광장에 모인 청년들은 희망의 신호다. 그러나 이 희망이 지속가능한 변화로 이어지려면 불안정성의 구조적 원인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불평등한 청년과 광장의 청년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과제다.

*이 칼럼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여성노동자의 고공농성 500일, 세종호텔 고진수 98일, 한화오션 김형수 68일을 맞아 제작된 <굴뚝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굴뚝신문> 제작에는 고공농성 해결을 촉구하는 14개 언론사 현직 노동기자들과 사진작가, 교수, 노동운동가들이 참여했습니다. ☞ <굴뚝신문> 구매 https://url.kr/wlcu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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