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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에 얽힌 설명 태부족…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

장소에 얽힌 설명 태부족…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

편집자 주

70여 년 전 제주4·3 당시 수많은 사람이 군경의 총칼 앞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주 땅 곳곳이 저마다 다른 사연의 아픈 역사가 서려있습니다. 그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4·3평화기념관을 중심으로 도내 4곳에 4·3역사관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지역 기념관의 경우 부정확한 자료를 게시하거나 그 지역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제주CBS는 3차례에 걸쳐 지역 기념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을 모색합니다.

[4·3역사관, 이대로 괜찮나➀]
4·3 당시 민간인 가둔 주정공장 수용소
온갖 고문과 수장학살, 불법재판 이뤄져
전시 상당수 평화기념관 내용과 겹쳐
"다른 얘기 하느라 정작 수용소 얘기 못해"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고상현 기자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고상현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장소에 얽힌 설명 태부족…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
(계속)

지난 7일 제주시 건입동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역사관 건물 앞 광장에는 물방울 모양의 조형물 앞으로 손이 묶인 사람 형체의 동상들이 눈에 띄었다. 거대한 조형물이 무색하게 역사관은 주정공장의 역사와 상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악명 높았던 주정공장 수용소는 

지금은 건물이 허물어져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는 제주 주정공장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 지어졌다. 경제침탈 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알코올을 생산하기 위해 제주항과 인접한 이곳에 지은 것이다. 1970년대 말까지 가동됐고 제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산업시설이었다.
 
4·3 시기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민간인을 가둔 수용소로 사용됐다. 초토화 작전 이후 한라산에 피신했다가 '귀순공작'으로 내려온 사람을 끌고 와 가뒀다. 모진 고문과 열악한 환경 탓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고, 임신부도 잡아들이는 바람에 수용소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일도 있었다.
 
제대로 된 재판 절차도 없이 주정공장에 선 채로 형량을 통보받은 뒤 목포 등 육지형무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공항) 등지에서 총살당했다.
 
과거 주정공장 모습. 자료사진과거 주정공장 모습. 자료사진
특히 시신을 수습할 수조차 없어 가장 비극적인 죽음이었던 '수장 학살'의 아픔도 깃든 곳이다. 1950년 8월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범죄 저지를 개연성이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사전에 구금하는 것)으로 끌려온 제주읍·애월면·조천면 주민 500여 명이 제주항 앞바다에서 수장됐던 것이다.
 

상당수 4·3평화기념관 내용 겹쳐

4·3 시기 최대 수용소이자 수장학살부터 불법재판 희생자의 아픔이 서린 주정공장. 재작년 3월 50억 원 상당이 투입돼 문을 연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은 그 내용이 잘 반영됐을까. 수용소에 얽힌 역사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도 상당 부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기념관 내용과 겹친다.
 
취재진이 실제로 지하 1층에 마련된 전시실을 둘러본 결과 주정공장이 지어진 배경과 4·3 당시 수용소 상황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전시의 상당 부분은 평화기념관에도 전시돼 있는 4·3 개요와 초토화 작전, 육지형무소 분포, 수형인 증언 내용, 진상규명 운동이 주를 이룬다.
 
희생자 추모공간과 전시의 일관성도 떨어지고 있다. 추모공간의 시작을 수장학살 희생자의 아픔을 노래한 김수열 시인의 '물에서 온 편지' 시 구절을 인용하면서도 전시 내용 중에는 수장학살과 관련된 설명은 빈약하다. 조악한 수준의 그림과 함께 개괄적으로만 다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전시실. 고상현 기자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전시실. 고상현 기자
특히 역사자료 전시도 수형인명부 등 군사재판에 집중됐다. 4·3 당시인 1949년 5월 주정공장을 방문한 UN한국위원단 조사내용이 담긴 문서 등의 자료도 있지만, 전시내용에는 빠졌다.
 

"지역 4·3역사관, 장소성 드러내야"

전문가들은 4·3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4·3평화기념관이 운영되는 만큼, 지역 역사관에는 각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장소성과 역사성이 담긴 상세한 전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창후 4·3연구소장은 "주정공장 전시 내용을 보면 주정공장 자체 얘기만 해도 전시 공간이 좁을 텐데 다른 얘기하느라 해야 할 얘기를 못하고 있다. 불필요한 내용은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주정공장의 역사성과 장소성이 드러날 만한 내용으로 짜임새 있게 전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제주민예총 이사장을 지낸 박경훈 작가도 "주정공장 수용소는 콘텐츠가 많은 곳이다. 수용소뿐만 아니라 수장학살 사건, 군사재판 수형인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현재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 전시 내용을 보면 그 내용을 다 담지 못하고 전시 수준도 조악하다"고 비판했다.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전시실. 고상현 기자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전시실. 고상현 기자
"4·3평화기념관은 규모가 커서 개별적인 사건에 대해 조금씩 언급할 수밖에 없다. 반면 지역 역사관에서는 현장도 둘러보고 심층적으로 그 장소에 맞는 정보를 전시할 수 있다. 4·3평화기념관이 '행성'이라면 지역 역사관은 '위성' 역할을 하며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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