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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트럼프는 파나마 운하, 시진핑은 두만강 뱃길

[글로벌 포커스]
중국의 '동해 출해 전략'…中 주도 두만강 개발 방치하면 안 돼

지난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러시아 승전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두 정상은 하루 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두만강' 관련 내용도 포함시켰다. <사진 출처: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 페이스북>지난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러시아 승전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두 정상은 하루 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두만강' 관련 내용도 포함시켰다. <사진 출처: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 페이스북>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주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또 만났다. 러시아의 2차 대전 승전 80주년 기념 열병식에도 참석했다.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이번이 11번째다. 횟수로는 전임 후진타오 주석의 9번을 넘어섰다. 중국의 역대 최고 지도자들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런 푸틴과 시진핑의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른바 '역키신저 외교' 혹은 '역닉슨 외교'는 잘 먹히지 않고 있다.
 
시진핑은 러시아의 열병식에 중국군 의장대도 참가시켰다. 중국 인민해방군 3군 의장대는 과거 항일전쟁 때 불리던 '유격대의 노래'를 부르며 붉은 광장을 행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립됐던 푸틴에게 시진핑은 든든한 친구가 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두 사람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대해 합창을 하듯 비난을 퍼부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두 정상은 한 목소리를 냈다. 회담 뒤 나온 정상 공동성명에서는 미국을 겨냥해 "북한에 대한 일방적 강압조치와 억압정책을 포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과 대규모 군사적 충돌의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한반도 정세 불안의 책임을 모두 미국에 떠넘긴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입장이다. 중·러가 UN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동참했던 과거와는 달라졌다.
 
지난 5월 8일 열린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 나온 정상 공동성명에는 광역두만개발계획(GTI)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양국 정상은 올해부터 러시아가 GTI 의장국을 맡는 것을 계기로 GTI의 독립적 국제기구 전환을 모색하기로 했다. 사진은 동해와 연결된 두만강 하류의 북·러 국경 구간. 노컷뉴스 자료사진지난 5월 8일 열린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 나온 정상 공동성명에는 광역두만개발계획(GTI)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양국 정상은 올해부터 러시아가 GTI 의장국을 맡는 것을 계기로 GTI의 독립적 국제기구 전환을 모색하기로 했다. 사진은 동해와 연결된 두만강 하류의 북·러 국경 구간. 노컷뉴스 자료사진
이번 중·러 정상 공동성명에는 한반도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대목이 하나 더 들어있다. '광역두만개발계획'(Greater Tumen Initiative, GTI)에 대한 언급이다.
 
양국 정상은 "러시아가 올해부터 '광역두만개발계획'의 순환 의장국 역할을 맡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동북아시아에서의 지역협력 강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북한의 불참, 남북관계 경색 등으로 지지부진했던 두만강 주변 개발 프로젝트를 다시 살려보겠다는 취지다.
 
중국이 '광역두만개발계획'(GTI)에 적극적인 이유는 동북 3성 지역의 '동해 진출 통로' 확보를 위해서다. GTI사무국은 중국 베이징에 위치해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기본 교통 인프라와 주요 교통 허브의 재건 및 건설 촉진"이 GTI의 가장 상위 목표로 명시돼 있다. 두만강 국경 지역에서 뱃길과 도로, 철도, 항만 등을 조속히 확충하자는 것이다.
 
광역두만개발계획(GTI)의 핵심 개발 대상지는 두만강 하류의 북·중·러 국경지역이다. 중국은 두만강 하류를 통한 자국 선박들의 '동해 출해'를 추진하고 있다. 지도에서 보면, 두만강 하류가 주요 물류 병목지역으로 표시돼 있다. 광역두만개발계획(GTI) 홈페이지에 게시된 '2014년 GTI 회랑 연구: 지역 요약 보고서' 캡처광역두만개발계획(GTI)의 핵심 개발 대상지는 두만강 하류의 북·중·러 국경지역이다. 중국은 두만강 하류를 통한 자국 선박들의 '동해 출해'를 추진하고 있다. 지도에서 보면, 두만강 하류가 주요 물류 병목지역으로 표시돼 있다. 광역두만개발계획(GTI) 홈페이지에 게시된 '2014년 GTI 회랑 연구: 지역 요약 보고서' 캡처
 
주목할 점은 시진핑과 푸틴이 1년 전에도 '두만강'을 공식 문서에서 언급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16일 베이징 중·러 정상회담 때 발표된 공동성명에서다. 양국 정상은 "두만강 하류를 통한 중국 선박의 바다로의 항해 문제에 대해 북한과 건설적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합의했다. 중국의 야심이 정상 공동성명의 구체적 문구로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나마 운하 환수 야욕에 비견할 만하다.
 
올해 중·러 정상 공동성명에 포함된 '광역두만개발계획을 통한 지역협력 강화'는 중국의 '두만강을 통한 동해 뱃길 뚫기' 시도의 연장선으로 짐작된다. 북한과 러시아, 한국 등에 경제적 번영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워 '동해 출해'라는 '지정학적 대전환'을 이루려는 계산인 것이다.
 
이번 중·러 정상 공동성명에는 "광역두만개발계획(GTI)의 독립적 국제기구 전환을 모색한다"는 점도 명기돼 있다. GTI는 현재 UN 산하 두만강개발계획(UNDP)으로부터 행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독자적 정부간 기구로 전환되면 중국의 역할이 더 커질 전망이다. 아예 UNDP와 관계를 끊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두만강을 이용한 동해 진출' 추진에 북한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변수가 되고 있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모습. 중국은 지난해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두만강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다. 정상 공동성명에는 "두만강 하류를 통한 중국 선박의 바다로의 항해 문제에 대해 북한과 건설적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명기돼 있다. 연합뉴스중국의 '두만강을 이용한 동해 진출' 추진에 북한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변수가 되고 있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모습. 중국은 지난해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두만강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다. 정상 공동성명에는 "두만강 하류를 통한 중국 선박의 바다로의 항해 문제에 대해 북한과 건설적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명기돼 있다. 연합뉴스
 
북한도 초기에는 두만강 주변의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두만강 인근의 나진선봉 경제특구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 개발 때문에 방향이 틀어졌다. 북한은 지난 2009년 스스로 GTI를 탈퇴했다. UN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불참하면 중국의 '동해 출해' 전략은 난관에 봉착한다. 중국이 노리는 두만강 하류는 북한과 러시아의 영토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힘을 빌어 북한을 적극 회유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어떻게 나올 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GTI의 순회 의장국으로서 제 22차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했다. 총회에서는 '2025~2029 전략행동계획'이 채택됐다. 행동계획의 핵심내용은 '국경간 교통 인프라 프로젝트의 재개 및 주요 교통 허브 구축 촉진'이다. 향후 5년 동안 두만강 주변에 뱃길과 철길, 도로 등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자는 약속이다.
 
광역두만개발계획(GTI, Greater Tumen Initiative)는 지난해 12월 의장국인 한국 주최로 열린 서울 총회에서 '2025-2029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두만강 국경 주변의 뱃길, 도로, 철도, 항만 등 교통 인프라 건설 확대가 핵심 내용이다. 현재 GTI회원국은 한국, 중국, 러시아, 몽골 등 4개국이다. GTI 홈페이지 캡처광역두만개발계획(GTI, Greater Tumen Initiative)는 지난해 12월 의장국인 한국 주최로 열린 서울 총회에서 '2025-2029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두만강 국경 주변의 뱃길, 도로, 철도, 항만 등 교통 인프라 건설 확대가 핵심 내용이다. 현재 GTI회원국은 한국, 중국, 러시아, 몽골 등 4개국이다. GTI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북러 국경 지역의 교통 인프라 발전'을 행동 계획으로 채택한 것은 조금 아이러니다. 두만강 주변의 철도와 항만 등 교통 인프라는 북한제 포탄과 미사일이 러시아로 수송되는 중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달 30일 '두만강 자동차 다리' 신설 공사를 공식 개시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두만강 기차역의 확장 공사도 진행했다.
 
이런 북·러의 협력, 특히 군사적 거래는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달 5,000톤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를 진수했다. 핵 추진 잠수함까지 건조 중이라고 과시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의 보유에 이어, 다른 전략무기와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국은 '광역두만개발계획(GTI)'에 초기부터 참여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시 주석과 만나 "광역두만개발계획이 동북아 지역 발전을 선도하는 경제협력기구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의하자"고 말했다. 지난 2014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자리에서다. 남북 협력과 평화, 그리고 통일 이후까지 종합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일본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두만강 개발을 남의 일로 방치하기 어렵다. 중국이 GTI를 주도하고, 북·러의 군사 협력이 강화되는 지금도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참전과 무기 제공을 계기로 북·러 관계가 동맹으로 격상되고 모든 분야에서 협력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열린 두만강 자동차 다리 건설 착공식. 연합뉴스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참전과 무기 제공을 계기로 북·러 관계가 동맹으로 격상되고 모든 분야에서 협력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열린 두만강 자동차 다리 건설 착공식. 연합뉴스
 
러시아는 극동의 부흥을 위해 두만강 지역의 개발을 활용하려는 계산이다. 여기에는 중국과 한국 등의 참여와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환동해 지역이 중국 경제의 영향권에 편입될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선박이 두만강 하류를 거쳐 직접 동해로 나오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 된다.
 
중국 주도의 두만강 교통로 확장에 주변 각국의 셈법은 복잡하다. 국경 지역이어서 지정학적으로도 예민하다. 30여 년 전에 시작된 두만강 개발 프로젝트가 아직 큰 진전을 보지 못한 이유의 일부도 여기서 기인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나마 더 넓어질 수 있다.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 전 YTN베이징 특파원,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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