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기자학교 폭력 사건에 휘말린 자폐성 장애인이 동급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학교폭력 피해를 신고했지만 상대 학생이 주장한 '언어 폭력'이 인정돼 쌍방 폭행 결론이 내려졌다. 장애 학생의 진술 과정에서 규정에 명시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등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폐 청소년, 폭행 피해 신고했다가 '맞폭'…쌍방 가해 결론
13일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해운대구 모 중학교에 다니는 A군은 지난해 11월 중순 동급행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교내 CCTV 영상 등으로 이를 확인한 부모는 즉각 경찰과 학교 측에 이를 알렸다.
하지만 상대 학생은 A군이 먼저 욕설을 하는 등 언어 폭력을 가했다고 반박했다. A군이 지속적으로 다가와 욕설을 하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는 주장이었다.
사안을 조사한 해운대교육지원청 학교폭력심의위원회는 최근 두 학생 모두 가해 사실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A군에게는 서면사과(1호)와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2호) 처분을, 상대 학생에게는 학교 봉사 2시간(3호) 처분을 내렸다.
A군의 학부모는 이같은 결과를 두고 학교폭력 조사 과정에서 A군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스퍼거 증후군) 학생이라는 특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A군 학부모는 "자폐성 장애 특성상 소리에 예민하고 타인으로부터 들은 말을 반복하는 반향어를 쓴다"며 "하지만 자녀가 왜 친구에게 욕설을 했으며 정말 모욕하기 위한 의도였는지, 단순히 반향어를 사용한 것 아닌지 등을 이해하려 한 이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진술부터 심의 참여까지 전문가 조력 없어…대응 '논란'
실제 A군은 당시 학교에서 부모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 홀로 진술서를 작성하는 등 조사 과정에서 적절한 조력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청의 학폭위 심의 과정에서도 A군의 진술을 조력할 전문가는 없었다. 다만 교육부 '학교 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에 따라 심의위원 중에는 특수교육 전문가가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A군 학부모는 "자녀가 자신이 겪은 일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 어려움에도 진술서를 쓸 때부터 심의까지 아무런 조력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심지어 학폭위 심의위원 일부는 진술에 도움을 주려는 부모의 말을 막고 욕설을 했는지 사실 여부만 집요하게 확인하는 등 자폐성 장애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없이 질의했다"고 말했다.
반면 학교 측은 학교폭력 신고 접수 후 적극 대응했고 평소에도 교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장애이해교육을 실시하는 등 A군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는 입장이다. A군이 진술서를 직접 작성한 데 대해서는 자기 의사표현을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학생이라며 반박했다.
학교 관계자는 "진술서를 스스로 쓸 수 있는 학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학교에서는 수차례 장애이해교육을 실시해 학생 대부분이 A군의 특성을 인지하고 배려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업시간에도 지속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고 돌발 행동을 수없이 했음에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관할 교육청 측은 학폭위 심의위원 가운데 특수교육 관련 전문가가 있었던 만큼 A군의 특성이나 입장도 종합적으로 고려됐을 거라는 입장이다. 다만 참여 위원 수나 위원의 전문 분야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해운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폭위 심의 대상이 특수교육 대상자인 학생일 경우 관련 전문가가 있는 소위원회로 배정하고 있다. 심의 과정에서 대상 학생의 장애 여부 등도 함께 검토됐을 것"이라면서도 "어떤 전문가인지나 심의위원 수, 회의 내용 등은 비공개 사안이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애 학생 자기 방어권 충분히 보장해야" 지적도
이같은 설명에도 관계기관의 형식적인 대응으로 자폐성 장애 학생의 자기 방어권이 충분히 확보됐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는 자폐성 장애가 있을 경우 타인과의 교감이나 상호작용이 어렵기 때문에 학교 폭력 조사 과정에서 충분한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기룡 중부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는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가 있을 경우 피해나 가해 사실을 학생 스스로 방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명확하게 대변해줄 사람이 함께 참여하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이라며 "특수교사 한 명이 심의위원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장애 학생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스퍼거 증후군 특성상 상대방의 태도나 표정에 적절하게 반응해주지 못하고 어색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의도치 않게 거친 표현이 하나의 반향어로 발설될 수도 있는데 학교 구성원들이 이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며 "학교 차원의 교육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 일이 많이 꼬인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