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국내 셋톱박스 제조사들에게 자사의 시스템반도체 부품만 사용하도록 요구한 브로드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 대신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브로드컴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신청한 동의의결에 대해 해당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동의의결 제도는 법 위반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피해구제, 거래 질서 개선 등 자진시정방안을 제시하고 공정위가 이를 타당하다고 인정하면 위법행위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이다.
브로드컴은 유료방송 셋톱박스(Set-Top Box)용 시스템반도체 부품(이하 'SoC')을 만드는 제조사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국내 셋톱박스 제조사들에게 유료방송사업자(셋톱박스 구매자)가 낸 입찰 공고 등에 참여할 때 자사의 SoC가 탑재된 셋톱박스만을 제안하도록 했다. 또한 기존에 경쟁사업자의 SoC를 탑재하기로 정한 사업의 경우 자사의 SoC로 변경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국내 셋톱박스 제조사들은 브로드컴의 SoC를 탑재한 셋톱박스를 유료방송사업자에 제안하고, 공급계약이 체결되면 제조·공급했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의 이같은 행위가 거래상대방으로 하여금 부당하게 경쟁사업자와 거래를 하지 못하게 했다고 판단하고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했고, 그러자 브로드컴이 심사보고서를 송부받기 전 자진시정방안을 마련해 동의의결을 신청한 것이다.
브로드컴은 시정방안에 국내 셋톱박스 제조사 등에게 자사의 SoC만을 탑재하도록 요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자사와 거래상대방 간에 체결되어 있는 기존 계약 내용을 거래상대방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변경하는 행위도 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이어 거래상대방의 SoC 수요량의 과반수를 자사로부터 구매하도록 요구하거나, 이를 조건으로 자사가 거래상대방에게 가격·비가격(기술지원 등) 혜택을 제공하는 계약도 체결하지 않기로 했다. 수요량 과반수 구매 요구를 거절하더라도, SoC의 판매·배송을 종료·중단·지연하거나 기존 혜택을 철회·수정하는 등의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자율준수제도(Compliance Program)를 운영해 임직원들에게 공정거래법 교육을 연 1회 이상 실시하고 시정방안 준수 여부를 공정위에 매년 보고한다는 내용도 시정방안에 담았다.
특히 브로드컴은 국내 팹리스 및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고, 스타트업 등 국내 중소 사업자와의 상생을 도모하겠다며 상생기금으로 130억원 상당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에, 공정위는 사건의 성격, 신청인이 제시한 시정방안의 거래질서 개선 효과, 다른 사업자 보호, 예상되는 제재 수준과의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유럽 집행위원회,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가 브로드컴의 유사 행위에 대해 각각 동의의결로 사건을 처리했다는 점도 고려했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2020년 10월 화해결정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2021년 11월 동의명령(Consent Order)으로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공정위는 이번 동의의결 개시 결정이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경쟁질서를 회복하는 한편,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글로벌 사업자가 국내 스타트업 등 중소 사업자의 성장을 지원하고,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과의 상생은 물론 해당 산업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공정위는 빠른 시일 내에 시정방안을 구체화해 잠정 동의의결안을 마련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 및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전원회의에 상정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