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전 간호협회장·간호법제정특별위원장. 본인 제공흔히 쓰는 말 가운데 '임계점'이라는 게 있다. 어떤 시스템이나 현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점을 의미한다. 본래 물리학에서 물질의 상태가 변화하는 지점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때로는 '선을 넘는다'는 쉬운 말로 바꿔서 쓰이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자칫 임계점을 넘으면, 즉 선을 넘으면 문제가 생기고, 때로는 좋았던 벗이 평생 원수가 되기도 한다. 임계점의 특징은 일단 '선을 넘으면'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임계점'은 0℃가 되면 얼음이 되고 100℃가 되면 펄펄 끓어서 수증기가 되는 '물'이다. 물은 아무리 차가워도 0℃ 이하가 되기 전에는 얼지 않고, 100℃를 넘기 전에는 끓지 않는다. 즉 0℃와 100℃가 물의 임계점인 셈이다. 얼음은 녹으면 다시 물이 되지만 끓어 넘친 물은 수증기가 되어 허공에 흩어져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도 곳곳에서 '임계점'을 만난다. 지난 2024년 8월, 간호계의 숙원이었던 간호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의료법'에 묶인 채 정체성마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간호사들의 업무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법을 마침내 가지게 된 것이다. 국회에 간호법안이 상정된 지 19년, 그동안의 지루하고 힘든 싸움이 마침내 끝난 것을 축하하며 65만여 명의 대한민국 간호인 모두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정말' 끝난 것일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미국의 어느 야구 선수가 남긴 말이다. 그의 말대로 간호법을 위한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회 문턱은 넘었지만, 그에 따른 후속 작업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법령을 정리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위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놓고 또다시 여러 관련 단체와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주전자에 물을 넣고 열을 가하면 서서히 온도가 올라간다. 나중에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진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주전자 속 물이 아무리 뜨겁다 해도 100℃가 되기 전까지는 끓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단 1℃ 차이지만, 뜨거운 것과 끓어 넘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서로 다른 것이다.
비유컨대 2024년의 간호법 제정으로 주전자 속 물은 99℃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아직 1℃가 남았다. 마지막 1℃를 넘기지 못하면 끝내 끓어오르지 못한 물이 '임계점' 이전의 상태에 머물다 점차 식어가듯이 간호법 역시 하위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올바로 정리하지 못하면 제 길을 잃고 방황하다 자칫 원위치로 돌아갈 수도 있다. 간호법을 여전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단체들이 건재하고, 국회 역시 마냥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2025년 새해가 밝았다. 마지막 1℃를 향해 조금 더 열을 가하자. 물이 끓어오르는 바로 그 순간, 마침내 간호법은 임계점을 지나 '완결' 선언을 하게 될 것이다. 잊지 말자. 물은 100℃가 되어야 비로소 끓는다. 뜨겁게 달아오르다 말 것인가, 펄펄 끓어올라 임계점을 넘길 것인가, 갈림길에 서 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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