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올 3월 전국 221개 수련병원에서 수련을 이어갈 레지던트 모집이 지난 19일 마감된 가운데
'사직전공의 수련특례' 카드와 모집기간 연장 등의 효과가 미미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위 '빅5'는 물론, 주요 국립대병원도 지원자가 한 자릿수인 곳이 허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5학년도 의과대학 증원은, 각 대학이 정시전형 합격자를 속속 발표함에 따라 약 1500명이 늘어난 신입생 선발이 조만간 완료된다. 정시모집 공고 직전까지 증원분(分) 감축에 올인했던 의료계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으나,
최근 2026년도 의대정원 '감원' 가능성도 언급한 정부의 손짓에도 의료계는 여전히 무반응이다.
수련·입영 특례 및 의대정원 '원점 재검토' 등은 그간 의료계가 요구해온 사항이다. 그럼에도 의·정 대치가 쉽사리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의료계에서는 지난해 12·3 내란 사태 당시 '전공의 포고령' 등 강경일변도였던 정부의 태도 변화를 일부 긍정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는 기류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장 올해 '증원 후폭풍'에 대한 수습책부터 정부가 내놓는 게 순서라는 입장이다.
'특례' 약속에 모집기간 연장에도, 전공의들 '無반응'
2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오후 마감 예정이었던 올해 상반기 레지던트(1년차 및 2~4년차) 모집기한을 전날까지 이틀 더 연장한다는 공문을 전국 수련병원에 발송했다. 이날부터 22일까지인 면접과 23일 합격자 발표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지원율이 너무 저조하자 일부 수련병원이 요청한 데 따른 조치인데, 일선에서는 '결과를 더 지켜보겠다'면서도 큰 기대는 걸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5대 대형병원인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의 지원자 수는 전날 오후 기준 1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대학병원 중에는 지원자가 단 한 명 또는 5명이 채 안 되는 상급종합병원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레지던트 모집은 앞서 정부가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발표된 '이탈전공의 처단' 포고령을 사과하며 내놓은
유화책의 실효성을 가늠할 1차 잣대로 여겨졌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일 조규홍 복지장관과 합동브리핑을 열고 "포고령 내용으로 상처를 받은 전공의 분들과 의료진 여러분께 진심어린 유감과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들의 '원대 복귀'를 강압한 해당 조항은 정부 방침과 전혀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또 사직한 전공의들이 원래 수련병원으로 돌아오면 '사직 후 1년 내 복귀'를 금지한 지침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해 2월 부로 현원 대부분이 사직한 전공의들(인턴 2967명·레지던트 9220명 등 1만 2187명)에게 과거 근무했던 병원에서 전공과목 수련을 재개해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
막판까지 의료계와 줄다리기를 벌였던 의대 증원이 일단락되자, '전공의 공백 장기화' 해소가 발등의 불이 된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재난위기 경보가 1년 가까이 '심각' 단계를 유지하며 가동되고 있는 비상진료를 마냥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 더해, 코앞의 현실이 된 '의사·전문의 배출 절벽'도 정부로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내 발로 나왔는데…'도로 오게 해줄게'가 특혜?"
김택우 신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14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다만, 적잖은 전공의들은 이번 수련특례가
지난해 정부 대책의 '재탕'이란 점, '의대 증원·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백지화' 등 사직 시 내건 대정부 요구는 거부됐다는 점에서 별달리 고려할 선택지가 못 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작년 6월에도 전공의 사직서 수리금지명령 등을 철회하며 사직전공의의 하반기 수련모집 지원을 허용한 바 있지만, 대다수는 기존 사직의사를 고수해 수련 자체를 아예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익명의 한 전공의는 "내발로 걸어 나온 곳인데 '옛 직장에 도로 오게 해주겠다'는 게 어떻게 특례인지 모르겠다"며,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의협) 부회장단에 합류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해당 대책이 발표된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당이 의·정 대화를 위해 먼저 정부 측에 수련특례를 요청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를 공유하며 "전공의들이 요구한 것은 그게 아니다. 장애물은, 내란 수괴마저 비호하고 있는 무능한 여당 아닌가"라고 국민의힘을 겨냥했다.
이어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이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지 않으면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들어 "이게 특례 아니었나"라고 비꼬았다.
같은 맥락에서, 복지부 간부가 지난 16일 "현장에서 4년차는 복귀 의사가 다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밝힌 문제 인식도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택우 신임 의협 회장은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의협이 파악한 바로는 정반대"라고 이를 일축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사직한 의무사관후보생이 수련에 복귀할 경우, 수련을 마치고 의무장교 등으로 입영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도 약속했지만, 박 위원장은
"주변에서 (입대를) 꺼리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입영 연기' 또한 특별한 유인책은 못 될 거라고 내다봤다. "내년 증원 '원점재검토'?…당장 올해 교육 대책부터"
연합뉴스향후 의정대화의 최대 현안은 2026년도 의대 정원이다. 대입일정 사전예고제를 고려하면, 내달 말 전에 윤곽이 나와야 해 남은 시간이 많진 않다.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증원 1년차인 올해 의과교육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부터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교수인력 충원과 교육·실습환경 확충이 미비한 상태에서 올해 예과 1학년 7500명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정부에 '2025년도 의대교육 정상화 마스터플랜'을 요구한 김 회장은 "(증원 시) 의학교육이 부실해진다는 지적을 의대 교수와 학생 모두 해 왔다.
교육에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한 것은 정부"라며 "그게 나와야 교수와 학생들도 순응하고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의대정원 관련 협상 절충점을 특정해 묻는 질의에도 "오히려 증원 전보다 감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큰 상황인 게 사실이지 않나. 정부의 교육에 대한 의견을 먼저 보겠다"며 선을 그었다.
박 위원장도 교육부가 올해 의대 교육여건 개선에 6062억 원 지원을 약속한 것과 관련,
"인원이 많게는 3~4배 증원된 학교도 있는데 단순히 예산만 갖고 교육 가능여부를 평가하긴 좀 어렵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한편, 의협은
향후 의대 정원 등 보건의료정책 거버넌스 자체도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현 정부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구심점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작년 '의대 2천 명 증원'을 발표 당일 '졸속 의결'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의 연장선상이라는 판단에서 보이콧하고 있다.
김 회장은 곧 국회 통과가 예상되는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 구성 관련 법안들에 대해 "공정성과 합리성을 담보로 하는 추계위라면 저희가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현재처럼 경영자 입장 등 특정 직역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경우라면 참여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내달 관련 상임위 공청회를 예고한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8일 의협이 주최한 '보건의료 정책수립 과정과 의사단체의 역할' 세미나에서
"국회 산하에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개혁)과제들을 선정하고, 열린 수평적 토론을 통해 해법이 나온다면 그를 법제화하고 정부도 따르게 하는 기구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