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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겔란드 조각공원 : 인생의 의미 느끼고 나와
8월 23일 오전, 푸른 하늘에 햇볕이 쨍하고 약간 후텁지근한 날씨에 비겔란드 조각공원(Vigelandsparken)을 찾았다. 오슬로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이 공원은 공원 곳곳에 조각작품이 놓여 있다.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드(1869-1943년)의 이름을 딴 이 공원은 비겐란드 한 작가의 작품으로 거의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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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의 압권은 ''''한 암석으로 된 기둥''을 의미하는 비겔란드의 작품 <모노리스(monolith)>이다. 공원 중앙 높은 곳에 설치된 이 작품은 121명의 남녀노소가 조각되어 있는 높이 17미터, 260톤 규모의 화강암 탑이다. 모노리스 주변에는 3단계로 원을 이루며 36개의 개별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모노리스>는 나서부터 죽기까지,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상을 담고 있다. 어린이의 죽음도 묘사되어 있는데, 이런 ''무상함이 인생''임을 생각게 한다. 개별 조각상에는 어린아이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노는 모습과 소외가 느껴지는 노년의 모습, 젊음이 넘치는 청춘 남녀 등 다양한 인생살이를 포착하고 있다.
<모노리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분수로 된 작품<인생은 분수>를 만날 수 있다. 6명의 사람이 분수 수반을 지탱하고 있다. 그곳을 지나면, 호수와 정문을 잇는 다리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수많은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850미터에 이르는 거리에 193개의 조각품이 늘어서 있다. 비겔란드는 13년에 걸친 필생의 역작을 완성한 뒤 7개월 후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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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 조각품을 감상하며 산책을 하다 보면, 인생의 의미를 느끼고 나오게 된다. 특히 <모노리스> 하단부에 웅크린 듯 누워 한 팔을 배위에 올린 채 불안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노인의 모습(맨 위 사진)은 나의 미래상을 보는 것 같아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다리 위에 설치된 역동적인 조각은 생명이 살아 숨쉬고, 부모와 자식 간에, 남녀 간에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고독과 소외, 절망과 공포를 극복하는 길은 ''관계의 회복에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까? 이 공원의 다리가 마치 피안의 세계로 건너는 다리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올레순: 잿더미에서 아르누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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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저녁, 게이랑에르 피오르드의 거점인 올레순에 도착했다. 올레순은 잿더미에서 예술적 건축도시로 변모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는 ''''래디슨 사스'''' 호텔에 여장을 풀고 곧바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환한 조명의 레스토랑과는 대조적으로 창밖은 어스름하게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의 저 끝 하늘에는 하루일과를 마쳐가는 해가 구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연어요리와 맛있는 맥주로 저녁을 즐긴 뒤 호텔 야외 탁자로 향했다. 의자에 편한 자세로 몸을 누인 채 노을이 지는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며 후배와 담소를 한참 나눴다. 후배가 쉬겠다며 자리를 먼저 떴다. 그 때 시각이 밤 10시 30분인데도 바다 수면위로 석양의 황금빛 잔영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이곳은 석양이 참 길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윽고 노을이 검은 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야외 의자에 누워 담요를 덮은 채 시원한 갯바람을 맞으며 1시간을 더 보낸 뒤 객실로 돌아왔다. 어둠에 싸인 밤하늘에 출렁거리는 물소리만 들리는 이국의 바닷가에서 홀로 깨어 있는 느낌은 ''충만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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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전용버스를 타고, 올레순 시내 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악슬라산 정상의 전망대로 향했다. 3개의 섬으로 이뤄진 올레순 시가지와 아루누보 양식의 우아한 건축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3개의 섬은 각각 다리와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섬 주위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항구에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죽 늘어서 있어 북유럽의 베니스로 불리운다.
올레순이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해진 것은 1904년에 발생한, 비극적인 화재 때문이다. 1월의 한 밤중에 일어난 화마는 850채의 건물을 삼키고, 1만 명의 이재민을 냈다. 단 3년 안에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노르웨이 전국 각지에서 온 고급 기술자들,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건축가들은 이 도시를 복구할 때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들을 조화롭게 배치함으로써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시켰다. 아르누보센터에는 이 때 참여했던 건축가들의 사진과 영상자료를 비치해 이들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북한에서도 전쟁의 참화를 입은 평양거리를 재건할 때 외국에서 유학하던 북한 건축학도들이 대거 귀국해 평양 도시건설에 동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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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순 건물은 문양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신경을 쓴 흔적이 드러난다. 지혜의 신 미네르바를 상징하는 부엉이 문양의 부조, 장미꽃 문양, 나무문양의 부조 등 다양하다. 건물간판이나 입간판 역시 디자인이 심플하다. 이곳에서는 집을 지을 때 목재를 써서는 안 되고, 반드시 석재를 써야 한다. 다시는 화마를 겪지 않기 위해서이리라.
이곳 사람들은 조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에 생활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기를 즐긴다. 그래서 집을 살 때 산책로가 있는지, 그리고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발코니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집 가격이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우리처럼 모두 성냥갑 아파트에다 교통여건이 좋은지를 따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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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는 우리가 느끼기에 물가가 너무 비싸다. 우리를 안내한 여성 교포 가이드는 오이김치를 담기 위해 오이 한 개에 5천원(우리 돈 환산)을 주고 사려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택시 기본요금이 1만5천원이다. 나도 오슬로 시내에서 뭉크미술관을 개별적으로 방문하기 위해 8분 거리와 20분 거리를 택시로 이동하는데 도합 11만원의 택시비가 나와 동행자와 나눠서 지불했다. 물 한 병에 25크로네, 우리 돈으로 5천원이다. 여성 가이드는 파마를 하는데 50만원이나 들어 계절에 한 번 정도 파마를 하고, 한국에 나오면 반드시 파마를 한다고 했다. 노르웨이 최저임금은 시간당 105크로네, 우리 돈으로 2만원 남짓이다. 노르웨이 간호사 연봉이 5천만 원, 교수 연봉이 8천만 원 남짓이라고 하니, 현지인들도 봉급에 비해 만만치 않은 고물가이다. 그래도 노르웨이가 좋은 이유는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깨끗한 자연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BestNocut_R]
◈아르누보: 아르누보는 1890년대와 1900년대에 유럽을 풍미한 장식예술 및 건축 스타일이다. 아르누보라는 이름은 1896년 파리에서 개관한 한 인테리어 갤러리의 이름(메종 드 라르 누보)에서 나온 것이다. 이 스타일의 주된 장식적 모티프는 휘감아 올라가는 식물의 비정형적 형태였다. 종래의 건축과 공예가 그리스. 로마 또는 고딕에서 모델을 구했다면 아르 누보는 모든 역사적인 장식을 부정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표현을 시도했다.모노리스>인생은>모노리스>모노리스>모노리스(monol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