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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권력자, 취기에서 깨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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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권력자, 취기에서 깨나야"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의미
    전국 교수 1086명 설문 결과, 41%가 '도량발호' 꼽아
    추천한 정태연 교수 "계엄, 위임된 권력 사적남용 최악의 사례"
    2위 '후안무치'·3위 '석서위려' 등 모두 큰 틀에서 尹정권 겨냥
    5위 '가정맹어호' 두고 의정갈등 지적도…"국민들 무고하게 목숨 잃어"

    교수신문 제공교수신문 제공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였다. 관련 설문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전 이뤄졌지만, 결과적으로 온 나라를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게 한 국가 원수를 직격한 셈이 됐다.
     
    사자성어 선정에 참여한 교수들은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두고 "올 한 해 보여진 권력의 사적 남용의 '결정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도량발호(跳梁跋扈)가 '2024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고 9일 밝혔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추천과 예비 심사를 거쳐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진행된 본 설문을 통해 최종 선정됐다.
     
    도량발호는 단일 사자성어가 아니라 고서에 각기 널리 쓰였던 '도량'(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어 다님)과 '발호'(권력이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뜀)가 합쳐진 단어다. 국내에서는 조선 전기 문신인 서거정의 '오원자부(烏圓子賦)'(1477)에서 '요리 뛰고 저리 날쳐'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응답자의 압도적 지지(41.4%·450표)를 받은 '도량발호'가 금년을 결산하는 사자성어로 꼽힌 이유로는 "권력자는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데 권력을 선용해야 함에도,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교수들은 또 "권력을 가진 자가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밟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첨언했다.
     
    '2024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 결과. 교수신문 제공'2024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 결과. 교수신문 제공
    '도량발호'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삐뚤어진 권력자는 권력의 취기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그러면서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 말은 국가의 여러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은 본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대신 행사하는 제한된 권력을 가진 것이지, 그들 자체가 권력의 원천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자가 지켜야 할 규범의 본질은 위임된 권력을 선용(善用)해,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데 있다고도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판이하다. 위임받은 권력을 사적인 이득과 편애하는 집단의 특혜를 위해 번번이 남용하고 악용한다"고 했다. 권력자들이 '국민'만큼 입에 자주 올리는 말이 없지만 "대부분은 실상 빈말에 가깝다"며 "입법부·사법부·행정부를 막론하고 암암리에 패거리를 만들지 않은 곳이 없고 국민의 뜻을 제대로 아랑곳하는 곳이 없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이 비상계엄 사태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이 비상계엄 사태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 최악의 사례는 지난 3일 심야에 윤 대통령이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령이라고 저격했다.
     
    정 교수는 "명분은 반(反)국가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것인데, 대부분 국민의 눈에는 최상위 권력자들이 자기의 불리한 처지를 타개하고자 자행한 불법적 술수"라며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이런 무도한 발상과 야만적 행위가 아직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섬뜩하고 참담하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권력이 부당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현 정부의 기치였던 '정의'와 '공정'이 자리할 공간은 없다고 언급했다. 정 교수는 "권력을 오남용하는 사람의 전형적 특성이 이중성이다. 무치지치(無恥之恥)라는 맹자의 말씀대로다"며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숨기거나 속일 수는 없다. 진실을 보여주는 단서와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고 지적했다.
     
    계엄 직후 추가로 실시된 조사에서, 교수들은 윤 정권의 퇴진이 순리라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밝혔다. 불과 6시간 만에 해제된 초유의 계엄은 그 자체로 사태의 부당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인문 전공을 가르치는 한 60대 교수는 "비정상적 사고를 한 결과"라며 "대통령으로 머물러선 안 된다. 무슨 일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연 계열 교수는 "지식인 수천 명의 시국선언이 이어질 만큼 혼란한 시국임에도 권력자와 주변 무리들은 성찰의 기색이 없다"고 일갈했다.

    두 번째로 많은 지지를 받은 사자성어는 전체 28.3%(307표)를 득표한 '후안무치(厚顔無恥)'였다.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으로 큰 틀에서 '도량발호'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추천한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말을 교묘하게 꾸미면서도 끝내 수치를 모르는 세태를 비판한다"며 "지금 사회는 형벌로 질서를 겨우 유지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 적극적 가치를 구하기는 어렵다"며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후안무치'에 대해 공감을 표한 교수들 중에는 "저를 비롯한 기성세대가 이렇게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자괴감에 잠조차 들 수 없는 상황"(김종법 대전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이라는 고백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이밖에 3위로는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의미의 '석서위려(碩鼠危旅)'(18.5%·201표), 4위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7.1%·77표)가 각각 꼽혔다.
     
    오주리 가톨릭관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가정맹어호를 추천한 이유로 10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의·정(醫政) 갈등을 들었다. 오 교수는 "의정 갈등으로 인하여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이 있다"며 "의료개혁의 방향은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정부의 정책은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 60대 교수(의약학)는 현 정부 정책이 필수의료 및 이공계의 붕괴와 입시제도 왜곡을 야기했다고 비판했고, 다른 50대 교수(인문)는 "정치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국민 삶의 안위를 생각해야 하거늘 터무니없는 의료재앙을 가져온 이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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