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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0시간' 넘게 일하는 전공의들…'의료대란' 뇌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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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주80시간' 넘게 일하는 전공의들…'의료대란' 뇌관 된 이유

    핵심요약

    전공의들은 "'의사'라고 다 같은 의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전문의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인턴·레지던트는 상급병원 의사의 약 40%에 달합니다. 이들의 집단 이탈로 '의료대란'이 빚어진 이유입니다. 보다 근본적 배경에는 병원들이 '피수련생'인 전공의를 값싸게 부려온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80시간 이상 일하면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을 격렬히 반대하게 된 데엔, 결국 정부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17일째를 맞는 7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수술실에 의료진이 출입하고 있다. 이날 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앞서 "응급·고난도 수술에 대한 수가를 전폭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더욱 구체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황진환 기자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17일째를 맞는 7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수술실에 의료진이 출입하고 있다. 이날 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앞서 "응급·고난도 수술에 대한 수가를 전폭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더욱 구체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황진환 기자
    "저는 지금 의료현장의 혼란이 역설적으로 '의사 수 부족'을 입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련과정 전공의들이 이탈했다고 해서 국민 모두가 마음을 졸여야 하고, 국가적인 비상의료체계를 가동해야 하는 이 현실이 얼마나 비정상적입니까?"
     
    의대정원 2천 명 증원을 발표한 지 딱 한 달 만인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통해 한 말이다. 전문의로 가는 과도기로 '배우는 입장'인 전공의가 빠져나가자, 거대한 구멍이 뚫린 의료시스템 자체가 "기형적"임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 수련병원을 박차고 나간 전공의는 전체 91.8%인 1만 2225명(주요 수련병원 100곳 기준)으로 집계된다.
     
    사실 의대 확대를 '의료개혁'이라 정의한 정부와 가장 먼저 반목한 의사단체는 대한의사협회(의협)다. 지난해 초부터 보건복지부와 1년간 협상테이블에서 의대정원 문제를 논의한 당사자이자,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 정부를 겨냥한 일일 정례브리핑에서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이들이다.
     
    하지만 작금의 '의(醫)-정(政) 대치'에서 '의료계'의 중심축은 의협 회원의 대부분인 개원의보다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쪽에 더 쏠리는 모양새다. 정부가 보건의료 재난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것도 전공의 대거 이탈이 현실화된 직후인 지난달 23일이다. 중대본이 코로나19 확진자 통계처럼 연일 '업데이트'해 내놓는 수치도 미복귀 전공의의 현황이다.
     
    전공의는 6년 과정(예과 2년·본과 4년)의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로 의사면허를 취득한 뒤 전문의가 되고자 대학병원 등에서 수련하는 의사를 이른다. 보통 여러 과목을 두루 돌며 배우는 인턴 1년, 특정 진료과목을 정한 레지던트로 3~4년을 보낸다.
     
    전공의 과정을 선택하지 않은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GP)는 일반 의원을 차려 개원가로 빠지거나, 기성 병원에 봉직의(페이닥터)로 취업한다. 비급여 시장의 팽창과 맞물려 고된 수련을 포기하는 GP는 전체 15~20%까지 늘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전문의 수요가 더 많다. 이른바 '바이탈(Vital)'이라 불리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도 물론 포함된다.
     
    모든 전공의가 이런 진료과(科)를 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로서 '직업적 자부심'이 유독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7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전공의 당직실에 불이 꺼친 채 텅 비어 있다. 황진환 기자지난 7일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전공의 당직실에 불이 꺼친 채 텅 비어 있다. 황진환 기자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 일했던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등 전공의 대표들은 지난달 20일 "무너지는 수련환경 속에서도 병원을 (제발로) 떠나고 싶었던 전공의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대전성모병원 전 인턴인 류옥하다씨도 지난 6일 국회 토론회에서 "젊은 의사들, 전공의들은 맑고, 죄가 없다. (주당) 100시간 일하고 (월) 200만~400만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며 "저희가 지역·필수의료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상급병원들의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2024 세계 최고의 병원' 22위에 오른 서울아산병원을 위시한 '빅5'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도권 5대 대형병원 소속 전체 의사 중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율은 38.98%(7042명 중 2745명)에 이른다.
     
    병원별로 살펴보면 △서울대병원 46.2%(1603명 중 740명) △세브란스병원 40.2%(1524명 중 612명) △삼성서울병원 38.0%(1382명 중 525명) △서울아산병원 34.5%(1676명 중 578명) △서울성모병원 33.8%(857명 중 290명) 등이다.
     
    파견 형식으로 수련 중인 외부 전공의가 일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최대 '절반'에 가까운 엄청난 수치다. 반면 전국 전체 의사(약 13만 5천 명)로 모수(母數)를 넓혀 보면, 지난 2022년 근무 현원 기준 총 1만 2700여 명 정도인 전공의는 10%도 채 되지 않는다.
     
    지역 소아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했던 한 소청과 전문의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도제식 교육이란 점에서 비슷한 미용실을 예로 들면, '간판' 격인 헤어디자이너 옆에서 보조하며 배우는 견습생들이 없다고 매장이 돌아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인서울'이라 해도 빅5가 아닌 병원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해외 선진 병원들과 비교해도 이같은 '전공의 과(過)대표' 현상은 두드러진다.
     
    미국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의 마요클리닉(Mayo Clinic) 본원은 레지던트 비율이 10.9%, 일본 도쿄대 의학부 부속병원은 10.2% 수준이다. 근로자 이전에 '피수련생' 신분인 전공의가 의사인력의 핵심이 아니란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도 이같은 점을 들어 국내 병원의 인력구조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대형병원이 "젊은 전공의들의 희생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며 "특히, 필수의료 과목은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 인력난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짚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문의보다 '값싼' 인력이기 때문이다. 2022년 대전협의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 일하다가 만 하루도 꼬박 넘기는 이들이 한 달에 쥐는 돈은 397만 9천 원 남짓이었다.
     
    평균 근로시간은 주당 '77.7시간'에 달했다. 이마저도 과반(52.0%)은 4주 평균 주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했다고 응답했다. 전공의특별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에 따라 법정 최대 근로상한이 '80시간'(4주 평균)으로 줄었지만 그조차 지키지 않는 병원이 태반인 셈이다.
     
    거칠게 계산해도 1만 원이 조금 못 되는 최저임금의 반토막 수준이다. 이제는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주 52시간임을 상기하면, 전공의들이 왜 스스로를 '을(乙)'로 칭하는지 알 수 있다.

    가천대길병원 소청과 2년차 전공의가 당직실에서 과로로 숨진 채 발견된 것도 불과 5년 전이다. 논문 참여, 의국 내 발표 등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에 잡히지 않는 '가욋일'까지 포함하면 여전히 초과근로는 일상이라는 전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2022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 중 발췌. 대전협 제공대한전공의협의회 '2022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 중 발췌. 대전협 제공
    지난 2020년 당시 '제자'들인 전공의 파업을 지지했던 서울 소재 의대 교수 B씨는 "입원전담의 제도 등으로 전공의 의존비중을 낮춰 가고 있는 과정이긴 하다"면서도 "사람을 더 채용하고 전문의를 늘리려면 당연히 인건비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 교육시스템이 잘 돼 있는 북유럽 등은 전공의 근무시간이 (주)50시간 미만"이라며 '싸게' 부려먹으려는 한국과는 인식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B 교수는 "우리나라는 수가체계상 '박리다매'를 해야만 병원이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고 언급했다.
     
    A씨는 "대학병원 등은 교수, 아니면 전공의로 직책이 양분된 경우도 많다. 전문의를 따고 전임의(펠로)로 남고 싶다 해도, 저임금 계약직인 임상강사 외엔 TO(정원)가 없는 것"이라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자리인데, 누가 남고 싶겠나"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수련다운 수련'이 가능한 전공의 근무여건 조성을 위해서라도 의대 증원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연속근무 36시간 축소 시범사업을 먼저 연내 추진하는 한편 국립대 의대 교수 1천 명 확충 등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스텝을 한 단계씩 밟아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거대한 전환을 위해선 전문의 고용 확대에 따른 인센티브 및 '공공정책수가' 등 필수의료 보상 강화뿐 아니라, 보건의료 인력을 국가가 책임지고 길러낸다는 개념부터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대전협이 전문의 채용 및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정부에) 요구한 것은 굉장히 지지할 만한 주장이지만, 잘 알려져 있듯 그것이 파업의 실질적 이유는 아니다"라며 "처우를 개선하려면, (증원에 따라) 늘어난 의사들을 병원에 전문의로 고용할 것을 요구하며 사용자 측과 싸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면허정지 처분에 착수한 정부 또한 이들의 집단행동 자체가 '불법'이라고 비판하기보다는, 그 이유가 모순적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가 병원의 설립이나 인력 양성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으니 의사들이 의료가 공공적이라는 인식을 갖지 않게 된 것"이라며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리는 대한전공의협의회 2024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리는 대한전공의협의회 2024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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