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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누가 그 해병을 물 속에 들어가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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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고]누가 그 해병을 물 속에 들어가라 했는가

    핵심요약

    故채수근 상병 순직…애초에 지급되지도 않은 구명조끼
    '물에 들어갈 계획' 없었다는 의미…무리한 수중 수색
    실적 쌓으려 '상부'에서 수중 수색 지시했을 가능성
    병사들을 사람 아닌 소모품 취급…언제까지 이 쳇바퀴 돌아야 하나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얼마 전, 안타까운 젊음이 세상을 떠났다. 경북 예천에서 수해 실종자 수색 중에 유명을 달리한 故채수근 상병이다. 해병대장으로 치러진 장례엔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폭우로 거세진 물살에 구명조끼 하나 입히지 않고 수중 수색을 내보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많은 이들이 내 일처럼 아파했다.
     
    영결식이 엄수되고 1주일이 지났다. 지난 24일, 해병대는 국방부 브리핑에서 "수변 지역에서의 실종자 수색작전 간 구명조끼 착용 등 대민지원 형태별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다"는 설명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다 구체적으로 위험 상황별 안전대책과 현장 안전조치 요령을 보완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해병대는 사건 초기부터 구명조끼 미착용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매뉴얼을 살펴보겠다'는 대답을 내놨다. 재난 대응 매뉴얼에 실종자 수색 작전 시 구명조끼 착용에 대한 지침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고 없으면 보완하겠다는 식이었다. 참 우매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물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구명조끼를 입히는 게 매뉴얼에 글로 적혀 있어야 판단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인가? 처음엔 해병대가 국민을 바보로 알고 이러는가 싶었다.
     
    해병대의 설명대로라면 사고 원인은 둘 중 하나가 된다.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을만한 이유가 있었거나, 구명조끼를 입혀야 하지만 지침을 어기고 입히지 않은 사람이 있었거나. 그러면 해병대는 수사 결과에 따라 매뉴얼을 보완하고, 책임은 안전조치에 미흡했던 현장 지휘관에게 물으면 된다.
     
    하지만 채 상병이 소속된 포병대대는 애초부터 현장에 구명조끼를 들고 가지 않았다. 대민지원을 나올 때부터 챙겨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군대는 계획에 따라 필요한 물자와 장비를 챙겨 주둔지를 옮긴다. 물에 들어갈 계획이 없으니 구명조끼도 안 들고 간 것이다. 그렇다면 사고 원인은 달라진다. '계획에 없었던 수중 수색'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수사의 방향도 매뉴얼의 유무나 현장 지휘관의 오판이 아니라 포병대대가 수중 수색에 투입된 경위와 수색 계획의 변경 과정을 파악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수사당국은 지휘계통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구명조끼가 부족해서, 지휘관이 구명조끼 입혀야 하는 걸 몰라서, 까먹어서, 부주의해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니다. 사고 당시 내성천은 폭우로 유량이 늘고 유속이 빨라져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소방당국조차 수중 수색은 못하고 수면 수색도 간신히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해병대, 경북소방본부 등 실종자 수색 관계기관 간의 회의에 따라 해병대가 맡은 임무는 수중이 아닌 하천변을 수색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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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계획에 없는 수중 수색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 지휘관이 지시했을 수도 있고, 상부에서 지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 지휘관이 지시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처음부터 수중 수색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삽과 곡괭이만 챙겨 나온 포병대대장이나 예하 포대장이 불어난 물을 보고도 안전장구도 없이 병사들을 물에 들어가게 했을 개연성은 높지 않다. 현장 지휘관들이 물이 가슴까지 차오른다며 수중 수색의 위험성을 상부에 보고했지만 그냥 수색하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급류 속에 들어가 수중 수색을 하라는 무리한 판단은 현장이 아닌 상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무슨 일이든 방점이 있는 곳에 의도가 있다. 해병대가 계속 매뉴얼과 지침을 운운하며 구명조끼에 사람들의 질문을 묶어 두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휘부로 책임이 번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실제 해병대는 지난 20일 브리핑에선 현장에서의 상황에 맞게 부대에서 판단을 했는지 현장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 방점을 찍고 자꾸만 매뉴얼을 소환한다. 이대로라면 구명조끼를 구해서 입히지 않고 입수를 지시한 현장 지휘관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될 수 있다. 확인된 사실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사의 틀이 잡혀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누군가 실종자를 더 많이 찾아 실적을 쌓고자 내린 무리한 지시의 결과로 이런 사고가 벌어졌다면 국민의 슬픔은 분노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여전히 우리 군이 병사들을 사람이 아닌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라에서 내놓는 모든 말은 석연치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고, 누구 하나 내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찾기가 어렵다. 누군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소중한 청춘을 잃었고, 누군가의 욕심을 지키기 위해 다시 소중한 청춘을 묻는다. 사람이 떠난 자리마다 원인 모를 한숨과 분노만 들어찰 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가. 함께 물어야 한다. 누가 그 해병을 물 속에 들어가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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