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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영욕'의 할아버지 코트, '사죄'의 손자 코트[이슈시개]

    전우원씨가 3월31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행방불명자 묘비를 자신의 코트로 닦고 있다. 박종민 기자전우원씨가 3월31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행방불명자 묘비를 자신의 코트로 닦고 있다. 박종민 기자자신의 코트를 벗어 광주 5·18 희생자 묘비를 닦았던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가 "입고 있던 가장 좋은 옷이었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집권 첫 방미 때를 비롯해 할아버지는 주요 순간마다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손자는 사죄하기 위해 코트를 벗었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전씨는 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광주의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 때의 일을 전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5·18민주묘지에 잠든 희생자들의 묘비 앞에서 묵념한 뒤 입고 있던 코트로 묘비를 닦았다.
     
    전씨는 "전두환 일가의 구성원으로서 광주를 간다는 것 자체가 많은 분들께 상처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참배를 드릴 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며 "입고 있던 것 중 가장 좋은 게 코트였고, 코트를 사용해서 다 닦아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그보다 더 좋은 게 있었다면 당연히 그걸 사용해서 닦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참배 당일 JTBC에 출연해서도 "참배할 때 예법에 맞게 행동하고 싶었고, 입고 있던 제일 좋은 게 코트여서 코트를 사용했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손자가 '학살자'로 명명한 전두환도 과거 인생역정에서 코트를 입은 모습을 보도사진으로 다수 남겼다.

    1981년 1월29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방미 출국 장면(왼쪽), 1995년 12월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골목길 성명 장면(가운데), 1997년 12월2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특별사면 석방 장면(오른쪽)에서 전두환은 코트를 입고 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1981년 1월29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방미 출국 장면(왼쪽), 1995년 12월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골목길 성명 장면(가운데), 1997년 12월2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특별사면 석방 장면(오른쪽)에서 전두환은 코트를 입고 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5·18 1년 뒤인 1981년 1월 집권 첫 방미 때 출국행사장에 선 전두환은 코트를 입고 '국민을 향해' 거수경례했다. 바로 며칠 전 '내란음모' 누명을 쓴 김대중 전국연합 공동대표를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터다. 이는 '김대중 탄압' 탓에 미국과 마찰 중이던 전두환 정권이 취한 유화책이었다.
     
    그는 퇴임 뒤 군사반란 등 혐의로 사법처리되는데, 1995년 12월 체포 직전 "정치적 필요에 따른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골목길 성명'을 내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다음날 수사관들에게 체포돼 압송당한다. 이때도 코트를 입고 있었다.
     
    군사반란·내란·내란목적살인·특가법상 뇌물죄 등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2년 옥살이 뒤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던 1997년 12월의 전두환도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는 교도소에 몰린 취재진에 "기자 여러분은 교도소 가지 말라"고 농담을 던졌다.
     
    사망 1년 전인 2020년 11월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던 날도 그는 코트 차림이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 목격을 증언한 고인을 '가면을 쓴 사탄'이라는 등 비난했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판결받았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2020년 11월30일 1심 선고를 받고 경호인력에 둘러싸여 광주지방법원을 나서는 전두환. 박종민 기자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2020년 11월30일 1심 선고를 받고 경호인력에 둘러싸여 광주지방법원을 나서는 전두환. 박종민 기자손자 전씨는 5·18민주묘지 방명록에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 묻혀 계신 모든 분"이라고 적는 한편, "할아버지는 학살자다. 나라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또 KBS1TV '더 라이브'에서 "따뜻한 할아버지보다는 더 상속을 받거나 용돈을 받기 위해 강제로 애교를 떨어야 하는 두려운 존재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전씨는 또 "연희동 자택 침실 벽에 돈봉투가 가득 든 가방이 항상 많았다"며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할아버지가) 돈봉투를 주는 게 관례였다. 천만원 단위로도 주고 백만원 단위로도 줬다고 들었다"고 폭로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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