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강화된 사각지대 발굴, '신촌 모녀 사망' 막을 수 있었나

뉴스듣기


보건/의료

    강화된 사각지대 발굴, '신촌 모녀 사망' 막을 수 있었나

    뉴스듣기

    정부, '수원 세 모녀 사건' 후속대책 내놓은 지 하루 만에 알려져
    전기세·건보료 등 연체…발굴대상 포착에도 실 거주지 달라 놓쳐
    복지부 "시스템 거주정보 현행화…전입신고 시 연락처 담게 개정"
    '인력 확충' 없이는 불가 지적도…내년 상반기 내로 운용방안 마련
    전문가 "지자체도 자체적으로 가능한 부분은 적극 조정 나서야"
    '동네 네트워크' 강조도…"집주인 등 신호 감지하면 바로 신고해야"

    연합뉴스연합뉴스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석 달 만에 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두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모녀의 죽음은 정부가 "촘촘한 위기가구 발굴로 약자 복지를 더욱 강화하겠다"며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책을 발표한 바로 이튿날 세상에 알려졌다.
     
    60대 어머니와 30대 딸, 둘뿐이었던 단출한 가구는 몇 달 간 각종 공과금을 밀리는 등 보건복지부 지침 상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행정기록 상 집주소와 실 거주지가 달라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수원 세 모녀 사건과 상당한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됐다. 발굴대상의 '연락처 현행화'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금번 대책이 적용됐을 경우, 비극의 재현을 막을 수 있었을까.
     
    2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5일 서대문구 창천동 '먹자 골목'에 위치한 모녀의 집 현관문에는 5개월치 전기료(9만 2천여 원) 납부를 독촉하는 고지서와 월세 미납을 이유로 퇴거를 요청하는 집주인의 편지가 붙어 있었다. 작년 11월 임차계약을 한 모녀는 열 달 간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도 전액 공제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 7월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는 14개월 분(약 96만 원)이 밀렸고, 통신비는 6개월, 금융채무 상환도 7개월째 연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신촌 모녀는 단전·단수·건보료 체납 등 34종의 정보로 위기가구를 걸러내던 기존 체계로도 발굴대상에 들어간다. '수원 세 모녀' 이전부터 작동했던 발굴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두 모녀가 서대문구로 이사 오기 전 살았던 광진구에서는 올 8월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통해 이같은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들의 집을 방문한 화양동 주민센터 복지담당자는 모녀를 만날 수 없었다. 해당 집에는 넉 달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앞서 이사를 마친 모녀가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주민등록상 집 주소와 실 거주지(서대문구)가 달랐던 탓이다. 연락처도 누락돼 뾰족한 후속조치는 없었다. 채권자들을 피해 숨었던 수원 세 모녀와 '판박이'다. 세 모녀 역시 이전에 살던 경기 화성시로 주소지가 등록돼 있어 지원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지자체는 생계급여 등의 수급 이력이 있는 서대문구 모녀의 또 다른 가족에게도 연락을 취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딸의 아버지는 아내와 이혼한 후 사실상 연락이 두절돼 모녀의 연락처나 거주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결국 위기가구 포착에는 성공했으나 '발굴 이후' 실제 이들의 행방이 불명일 때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였던 셈이다. 수원 세 모녀처럼 일부러 남의 집 주소를 빌려 등재한 경우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발굴대상자의 소재지 특정은 더 쉽지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 제공보건복지부 제공
    복지부는 지난 24일 발표한 수원 세 모녀 후속대책에서 대상자들의 연락처와 거주정보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행정안전부, 통신사 등 관계기관이 보유한 연락처, '고독사'가 잇따르고 있는 다가구주택 등의 동·호수를 신속히 연결 지어 소재 파악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사회보장급여법 및 시행령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현재는 세대주의 이름만 기입하도록 돼있는 전입신고서의 서식도 주민등록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세대원의 연락처를 기입하도록 변경한다. 위기가구의 전화번호가 확보됐어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사망위기 등이 의심될 때 경찰·소방의 협조를 얻어 '강제 개문'에도 착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시작돼 연말까지 이어지는 올해 주민등록 사실조사는 '빈 집', 연락이 두절된 복지 위기가구에 대한 현장조사도 병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올 3차 중앙 발굴대상 중 이같은 이유들로 연락하지 못한 1만 7429명의 소재를 파악하는 대로 시스템에 신규 연계할 예정이다.

    복지부 오진희 지역복지과장은 "(수원) 세 모녀의 경우 연락불가 가구였던 게 제일 큰 문제였다. 저희가 그 차수에 1177가구를 초기 전수 조사해봤더니 연락이 된 분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안 된 분들이 한 733명 정도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등록 사실조사는 원래 인구동태 파악을 하는 조사로 거의 행안부 사업으로만 돼있었지만, 이번에 저희 요청으로 행안부·복지부가 협력하는 전국 단위 조사를 처음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대책이 좀 더 빨리 시행됐다면 서대문구 모녀는 다른 국면을 맞을 수 있었을까.
     
    다소 조심스러운 가정이지만, 정부는 '그렇다'고 보는 입장이다. 연락처를 현행화하는 과정에서 신경 써야 할 '디테일'은 있다는 전제 아래서다. 일례로 행안부가 보유한 정보가 당사자 본인이 작성한 정보다 보니 휴대전화 변경 등이 모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지 못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통신사에 의뢰하면 이 간극을 많은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단말기 개통을 위해서는 본인 명의의 주민등록번호를 제출해야 한단 점에 착안한 것이다.
     
    보건복지부 제공보건복지부 제공
    다만,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외 '알뜰폰' 등의 사각지대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 시 세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보다 '정교한' 발굴을 지향하는 정부의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일선의 인력 확충 없이는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국에서 입수하는 위기정보는 이달부터 중증질환 산정특례, 요양급여 장기 미청구 등 5종을 추가해 39종이 됐고, 내년 하반기 이후엔 44종(재난적 의료비 지원대상 등 추가)까지 늘어난다. 정보 입수주기도 2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될 예정이다. 발굴모형 또한 개인 단위와 경제적 취약계층, 노인층(저소득층) 위주에서 세대 단위, 주요 변수 및 생애주기별 모형으로 고도화된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제도를 개선해도 (서대문구 모녀 사건 같은) 문제가 생길 수야 있겠지만 우선 사람을 빨리 늘리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아무리 위기징후가 떠도 결국 그걸 직접 가서 확인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전문인력, 사람이 중요한 거잖나"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복지정책이 워낙 중앙정부 중심으로 가는 경향이 있지만, 지자체장들이 수수방관해서도 안 된다"며 각 지자체가 정부 내 '예산 싸움'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지자체에서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중요하다고 본다면 사실 자체적으로도 정원 조정을 할 수 있는 문제"라며 "(중앙 정부의 관심만큼) '우리 지역'의 문제라는 걸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아져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제공보건복지부 제공
    정부는 위기가구 발굴·지원 담당자들의 업무가 지속 증가하는 상황을 감안해 이들의 업무환경·과업·인력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 내에 '합리적 인력 운용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내달까지 수행한다. 행안부 '스마트복지 안전공동체 추진단'에서도 복지·안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읍·면·동 조직·인력 등 전달체계 개선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위기가구를 일상에서 만나는 '동네 네트워크'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봤다. 민간 차원의 '신호 감지'가 더 빠를 수 있다는 취지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위기정보가 다 해결해줄 것 같지만, 사실 빅데이터로 위기가구를 발굴할 수 있는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서대문구 모녀 사례를 봐도) 사실 '집주인 네트워크'가 훨씬 더 강력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집세가 밀린다던지 등의 '시그널'이 항상 있기 때문"이라며 "집주인처럼 이해당사자이기도 한 사람이 동사무소 등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되는지를 한 번 알아봐달라'고 그냥 알려주면 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항상 외상해달라고 하는 집이 있으면 편의점에서 알려준다든지 하는 등의 '이웃 네트워크'가 가동되면 그게 훨씬 (신속한 발굴) 확률이 높을 수 있다"며 "(지원)자격이 되면 동사무소 등이 도와줄 수 있고 만약 수급자격이 안 된다 해도 민간자원이라도 연결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국도 '지역 안전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오진희 과장은 "지역의 통장·이장이나 명예사회복지 공무원, 집배원, 의료사회복지사 등이 같이 해주셔야 (위기가구) 발굴이 되더라"며 "수원 세 모녀 추도식에 갔을 때도 많은 분들이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이웃을 살피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자발적 신고를 해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제공보건복지부 제공
    정부는 집배원이 위기의심가구에 복지정보를 배달하며 파악한 위기정보를 지자체에 연계하는 '복지등기' 사업의 점진적 확대를 추진한다. 현재 서울 용산·종로, 충남 아산, 부산 영도 등에서 MOU(양해각서) 체결 및 시범사업을 수행 중이다. 향후 우정사업본부는 MOU를 늘리는 한편 위기가구 발굴 집배원의 인센티브도 마련할 예정이다.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활용도를 높이고 민간 자원봉사단인 '좋은 이웃들' 사업도 확대, 내실화한다.
     
    누구나 쉽게 본인 또는 이웃의 위기상황을 알릴 수 있도록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전 국민 복지위기 알림·신고체계'도 구축하기로 했다. 오 과장은 "앞으로 개발될 그 앱으로 신고를 하시면 위치정보를 연계해 지자체에서 확인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서대문구 모녀 사건이 보도된 이후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연락처 연계 등 관련 법률(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다른 대책들도 관계부처·기관 및 지자체와 협력해 차질없이 이행하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