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포스터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은 시리즈 영화로서의 묘미가 살려져 있다. 지난 3편까지 등장했던 주요 인물들의 상황 및 줄거리를 이어받으면서 전작의 요소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시리즈의 명대사 ''''I will be back''''의 재등장이 무엇보다 반갑다)
21세기 초 군사방위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네트워크 ''''스카이넷''''은 자각력이 생겨 인류가 자신을 파괴할 것을 예상하고 인류에 대한 핵공격을 감행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를 ''''심판의 날''''이라 불렀으며, 처참하게 파괴된 2018년 지구에는 기계 군단과 인간 저항군 사이의 악몽 같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스카이넷''''은 인류 말살을 위해 터미네이터 군단을 만들고 인간들을 잡아다 생체 실험에 이용하고 있었다. 인간 저항군의 리더인 존 코너(크리스찬 베일)는 기계군단의 비밀을 캐기 위해 저항군 조직과 함께 ''''스카이넷''''이 만든 실험 기지에 침투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이번 4편의 초반 설정이다.
4편을 이해하기 위해 전작들을 꼭 봐야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 존 코너 및 그의 주변 인물들의 상황을 무리없이 지켜보기 위해선 역시 전작들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복습은 필요하다. 지난 3편까지 스카이넷이 지배하고 있는 ''''미래''''는 그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기보다 주로 존을 없애기 위해 과거로 보낸 터미네이터의 전투력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쪽이었다.
풍부한 캐릭터들, 차원 높아진 비주얼 하지만 이번 4편은 다르다. 스카이넷을 비롯해 T-600, 헌터킬러, T-800, 하베스터, 모터터미네이터, 하이드로봇 등 다양한 기계 군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전작들에서 주로 대사로써 ''''미래의 멋진 리더''''임을 암시했던 존의 활약상도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그 때문에 이번 4편은 등장 캐릭터들이 한층 풍부해졌고, 이를 구현하는 비주얼의 규모도 전작들보다 차원이 높아졌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인 2억불을 투입한 영화답게 전투신을 비롯한 비주얼의 완성도가 뛰어나다.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등 기계 병기가 등장하는 적잖은 할리우드 수작들과 비교했을때 결코 밀리지 않는 수준. 무엇보다 그런 작품들과 비교해 현실적인 전쟁 분위기가 발산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4편에서 새로 등장하는 몇몇 배우들의 모습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히 존을 도와주는 기계반 인간반인 마커스 역의 샘 워싱턴과 할리우드의 한국계 여배우로 국내 관객들도 주목하고 있는 블레어 역의 문 블러드굿은 자연스러운 카리스마로 영화의 재미를 북돋는다.
슈왈츠제네거의 깜짝 등장, 블러드 굿의 카리스마 돋보여 2편에서 에드워드 펄롱을 연상시키는 존의 아버지 카일 리스 역의 안톤 옐친의 풋풋한 모습도 눈길을 모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영원한 아이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디지털 합성의 형식으로나마 깜짝 등장하는 것도 잔재미.
하지만 기계 군단과 인간 군단의 전면전을 다루는 만큼 2편에서 유난히 반짝거렸고, 3편에서도 살짝 삽입됐던 유머 코드는 제외돼 조금은 뻑뻑한 느낌이다(예를 들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어떤 식으로든 선글라스 착용을 고집한다든가 인간적인 말투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보여진 재미).
이번 4편은 어두운 분위기로 보자면 전작 중에선 1편이나 3편에 흘렀던 양상을 이어받았지만 그 암울함은 비교할 수 없이 극대화됐다. 존 코너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은 그의 다른 전작들과 비교했을때 그리 차별적인 이미지나 연기력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예의 ''''우울'''' 포스를 선보이고 있다. 맥지 감독은 1, 2편을 만들었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연출력보단 감칠맛이 떨어지지만, 3편의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보단 탄탄한 내공과 확실한 자기 색깔을 내고 있다.
유머가 보강된 5편이 제작되길 철학이 부족했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아주 새롭진 않지만 인간 정체성에 대한 사유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4편은 시리즈 중 가장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진지한 태도를 선호하는 관객들은 환영할 만한 작품이 됐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은 스카이넷과 인간 저항군의 대결이 끝나지 않았음을 크리스찬 베일의 내레이션으로 제시함으로써, 다음 5편을 은근히 기대하게 만든다. 그만큼 이번 4편이 전작들을 나름의 빛깔로 성실히 계승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