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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칼잡이에서 '국민의 머슴'으로…윤석열은 누구



국회/정당

    文의 칼잡이에서 '국민의 머슴'으로…윤석열은 누구

    핵심요약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출신인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하며 정권교체를 이뤄냈습니다. 정권교체 여론은 계속해서 압도적이었지만, 승리를 향한 윤 당선인의 여정은 자신의 인생만큼이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을 찾아 꽃다발을 받은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을 찾아 꽃다발을 받은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 제1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돼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압도적이었지만, 최종 승리를 향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정은 자신의 인생만큼이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반전의 연속이었다.
     

    사시 9수 끝에 늦깎이 검사…요직 거치며 승승장구

    어린시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운데). 윤석열 당선인 인스타그램 캡처어린시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운데). 윤석열 당선인 인스타그램 캡처
    윤석열 당선인은 1960년 생으로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윤기중 교수의 1남 1녀 중 장남이다. 교수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때 경제학자의 꿈을 꾸기도 했지만,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 법과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하지만 사법고시에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9번이나 시험을 치른 끝에 검사가 됐다. 1차 시험은 4학년 때 붙었지만, 2차 시험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천성 탓이었다.
     
    윤 당선인은 1994년 연수원을 수료한 뒤, 대구에서 초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8년 뒤, 사표를 내고 대형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약 1년 만에 검사로 돌아왔다. 검찰에서 야간 수사를 하며 먹었던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SNS에 올린 자신의 과거 사진. 윤석열 당선인 인스타그램 캡처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SNS에 올린 자신의 과거 사진. 윤석열 당선인 인스타그램 캡처검사로서의 출발은 늦었지만 수사 능력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3년 불법대선자금 사건, 2006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2007년 변양균·신정아 사건, 2008년 BBK 주가조작 사건 등 굵직한 수사를 주도했다. 선배 검사들의 총애를 받아 대형 사건마다 차출됐고, 대검 중수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소신…尹의 수난과 비상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3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총장 사의를 표명하는 모습. 이한형 기자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3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총장 사의를 표명하는 모습. 이한형 기자하지만,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고난이 시작됐다. 당시 윤 당선인은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자신이 특별검사로 참여했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수사 외압이 있다고 폭로했다.
     
    윤 당선인은 당시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이미지를 얻었다. 다만, 정권의 눈 밖에 나며 지방 고등검찰청 등 한직을 전전하게 됐는데,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팀장으로 복귀하며 윤 당선인의 인생은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적폐청산 수사와 공소 유지에 성과를 드러내며 역량을 입증했다. 여권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검찰 기수를 건너뛰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고, 여권의 기대 속에 검찰총장에 직행하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그러나 일명 '조국 사태' 이후, 윤 당선인은 현 정권과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조 전 장관을 겨냥한 강도 높은 수사에 여권은 반발했고, 여당 대표 출신인 추미애 의원이 법무장관으로 기용되며 전방위 갈등을 빚었다. 결국, 윤 후보는 지난해 3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검찰총장 임기를 4달가량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압도적 정권교체 여론에도 계속된 부침…'정직한 머슴' 녹록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된 모습. 국회사진취재단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된 모습. 국회사진취재단살아있는 권력에 정면으로 맞선 윤 당선인은 정권교체의 첨병이 됐다. 3달가량 잠행에 들어갔지만, 야권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은 윤 당선인은 제1야당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것을 택했다.
     
    다만, 정권교체에 이르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각종 실언으로 지지율이 하락했고,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논란으로 당내 경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당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최종 선출됐다.
     
    경선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압도적 지지율 1위를 유지하려 했지만,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논란에 이준석 대표·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마찰이 계속되며 이재명 후보에게 지지율 1위 자리를 뺏기기도 했다. 결국, 선대위 해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끝까지 초박빙 선거 구도가 유지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1%p차이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윤석열 정부의 앞날도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음에도, 국민들은 윤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고, 새로 야당이 될 더불어민주당과의 여소야대 국면 속에 원만한 협조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직을 '국민의 머슴'에 빗대며 자신은 정직한 머슴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집권 시 펼쳐질 난관도 굳은 소신을 기반으로 돌파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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