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6일 오전 김형욱 실종사건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류승일기자/노컷뉴스)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로 베일에 싸여 있던 김형욱 실종사건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여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김형욱씨는 지난 79년 10월 7일 저녁 프랑스 파리에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중앙정보부 직원과 이들이 고용한 동유럽인들에 의해 총살당했다.
프랑스 주재 중앙정보부 이상열 공사가 범행을 지휘했고, 프랑스에 연수 중이던 중앙정보부 직원 신현진씨와 이만수씨와 동유럽인 2명이 직접 살해에 가담했다.
이들은 이상열 공사에게서 돈을 빌리려던 김형욱씨를 프랑스 파리 리도극장 부근에서 납치해 파리 교외 한전한 숲으로 끌고가 살해했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 지시로 파리 교외 숲에서 살해 김씨 살해는 김형욱씨가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폭로한 것이 원인이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69년 10월 김형욱씨를 중앙정보부장에서 전격 해임하고 73년에는 유정회 국회의원직도 박탈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김형욱씨는 73년 미국으로 망명한 뒤 언론과 미 의회 등지에서 당시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낱낱이 폭로했다.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정권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회유하고 협박했지만 여의치 않자 납치살해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씨를 살해하라고 지시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는 관련자료가 없고, 당사자들이 사망해서 쉽지 않다고 밝혔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김형욱씨의 각종 치부 폭로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 직전인 77년 6월 민병권 무임소장관을 특사로 파견해 김씨의 청문회 출석을 저지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6월 말에는 최규하 국무총리 주재의 김형욱 대책회의를 3차례 개최했고 이듬해 12월에는 반국가 행위자 처벌특별조치법까지 제정했다.
또한 78년 12월에는 중앙정보부 윤일균 전 해외담당 차장을 미국에 보내 김형욱 회고록 관련 협상을 진행하도록 지시했고, 이 때 김형욱씨는 윤일균 차장으로부터 50만달러를 받고 회고록 원고를 건네줬다.
그러나 79년 4월 일본의 한 출판사가 회고록 출간했고, 이것이 김형욱 실종사건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씨를 살해하라고 지시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자료도 없고, 당사자도 없기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를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형욱씨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에 의해 이상열 공사의 지휘-신현진, 이만수 중정 연수생-동유럽인으로 이어지는 지시계통을 통해 살해됐다.
이번 발표내용 역시 방대한 자료조사도 있었지만 당시 범행에 가담했던 신현진씨와 이만수씨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은 비교적 적극적으로 진술에 응했다.
하지만 김재규씨와 현장 요원 간의 연결고리였던 이상열 공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진술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이상열씨가 얼마나 당시 상황을 진술하느냐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도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상열 전 공사의 진술에 따라 박 전 대통령 개입 여부 밝혀질 수도
김형욱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부분도 의문이다. 국정원 진실규명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 부근이 김씨의 시신을 버린 장소다.
땅에 파묻지도 않고 낙엽으로 덮어 버렸다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주변의 주민이나 경찰이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살해과정을 비교적 소상하게 진술한 신현진씨가 사체를 버린 장소가 생각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회피하는 점도 석연치 않다.
의문으로 남은 부분들은 추가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들이다.
CBS정치부 이재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