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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기]'태종 이방원' 촬영장에 간 까미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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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보기]'태종 이방원' 촬영장에 간 까미의 비극

    KBS1 사극 '태종 이방원' 방송 화면 캡처.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KBS1 사극 '태종 이방원' 방송 화면 캡처.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그 말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까미'. 경주마 세계에서 퇴출된 까미는 KBS1 사극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 촬영을 위해 줄에 묶인 채 고꾸라진 뒤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 까미의 죽음은 생명마저 소품 취급해 온 한국 미디어 현실을 속속들이 들춰내고 있다.

    대체로 나이 많거나 경기 성적이 좋지 않은 경주마들은 말을 빌려 주는 업체를 통해 드라마 촬영 현장에 동원된다. 관행이다.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미디어 종사자 157명을 대상으로 벌인 촬영현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답변자의 8%가 촬영을 위해 고의로 동물에게 해를 가했다고 답했다. 13%는 사고로 동물이 죽거나 다친 적이 있다고 했다.

    카라 측은 "답변자들은 '촬영 중 놀란 말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 '촬영 때문에 처음 마취한 동물에게 후유증이 생겼다' 등 세세한 정황을 남겼다"고 전했다.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 동원된 까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1일 방송된 이 드라마 7회에서는 말의 몸체가 90도가량 뒤집히면서 머리가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장면이 등장했다. 이 말이 까미였다.

    동물자유연대에서 최근 공개한 해당 촬영 현장 영상을 보면 까미의 발목에는 줄이 묶여 있다. 까미가 달릴 때 이 줄이 당겨졌고, 이로 인해 고꾸라진 뒤 극심한 충격을 받은 까미의 모습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겼다.

    동물권단체들에 따르면 이 같은 방식은 1930년대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등장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철사로 말의 다리를 걸어 고의로 넘어뜨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 '경기병대의 돌격'(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1936)에서는 말의 발과 목이 부러지는 사고로 촬영 중 25마리가 죽었다고 알려졌다. 1939년에는 촬영 중 말이 절벽에서 추락사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이로 인해 동물학대를 비판하는 시민들 목소리가 빗발쳤고, 미국 인도주의협회가 1940년부터 영화·TV 동물 출연에 관여하면서 이러한 비극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할리우드에서 자행되던 이러한 폭력적인 촬영 방식, 거의 한 세기 전 일이다. 우리는 21세기 한국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이러한 일이 관행처럼 재현되는 것을 보고 있다. 안타깝고 부끄럽게도, 또다시 생명의 죽음을 통해서다.

    우리는 생명마저 소품 취급하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비극은 이러한 체제가 사람들 인식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데서 싹트고 자라는 법이다. 촬영 현장 동물의 안전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꾸준히 지적돼 왔다. 많이 늦었다. 지금이라도 방송 주체들이 더욱 세심한 관련 규정을 마련해 모든 제작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우선 KBS가 "각종 촬영 현장에서 동물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방법을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조언과 협조를 통해 찾도록 하겠다"니 주의깊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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