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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생각보다 쉬웠다"…日외교관 편지 발견

국제일반

    "명성황후 시해, 생각보다 쉬웠다"…日외교관 편지 발견

    핵심요약

    주조선 영사관보, 사건 다음날 친구에게 쓴 편지
    골동품 시장서 발견…재일 역사학자가 판독
    "사건 당사자 1차 자료, 사건 전말 밝힐 열쇠"

    아사히 신문은 16일 을미사변에 직접 가담했던 일본 외교관이 명성황후 시해 다음날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서신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아사히 디지털판 트위터 캡처아사히 신문은 16일 을미사변에 직접 가담했던 일본 외교관이 명성황후 시해 다음날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서신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아사히 디지털판 트위터 캡처을미사변 '실행 그룹' 중 한 명인 일본 외교관이 명성황후 시해 다음 날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서신이 발견됐다고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
     
    1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을미사변 당시 조선에 영사관보로 머물던 호리구치 구마이치가 고향인 니가타현 나카도리무라에 있는 친구이자 한학자인 타케이시 사다마츠에게 보낸 편지 8통이 최근 새로 발견됐다.
     
    편지는 1894년 11월 17일부터 을미사변 이후인 1895년 10월 17일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발송됐는데 사건 현장에서 자신이 했던 행동을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그는 편지에서 "진입은 내가 담당하는 임무였다"며 "담을 넘어 간신히 오쿠고텐(귀족 집의 안쪽에 있는 건물) 침소에 이르러 왕비를 시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생각 보다 쉬워서 오히려 매우 놀랐다"고 적었다.
     
    이 편지는 나고야시에 거주하는 우표, 인지 연구가 스티브 하세가와씨가 골동품 시장에서 입수했으며 재일 역사학자 김문자씨가 문자를 판독했다.
     
    아사히신문은 기재된 내용과 소인, 봉인 등으로 볼 때 호리구치의 친필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126년 전 사건 당사자의 1차 자료가 공개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며 사건 전말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을미사변은 1895년 10월 8일 일본 육군 출신 미우라 고로 당시 공사의 주도 아래 군인, 외교관, 민간인 등이 경복궁을 기습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다.
     
    당시 실행그룹에 가담한 일본인들은 일본 재판에 회부됐지만,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처벌은 받지 않았다. 호리구치 역시 1년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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