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택의 '겹 회화', 예화랑 제공.
'겹의 미학'
마치 투명한 필름이 겹쳐진 것처럼 20여개 색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색을 만들어낸다.
단색화 2세대 대표작가로 불리는 장승택(62) 작가가 선보인 '겹 회화(Layered Painting)' 시리즈다. 작가는 납작한 평붓 여러 개를 이어 만든 1.2m 크기의 대형 특수붓으로 레일 작업을 통해 단번에 내리긋는다. 물감이 마르면 그 위에 다른 색을 만들어 또 올린다. 이 과정을 20번 이상 반복해 '겹 회화'를 완성한다. 중심에는 하나의 색이 주를 이루지만 옆면에는 겹쳐진 수십가지 색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장승택의 '겹 회화', 옆면에는 겹쳐진 수십가지 색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곽인숙 기자
전시 기간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예화랑에서 만난 장 작가는 "인생이 찰나의 연속"이라며 "시간의 겹이 쌓여 인생의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는 것을 다양한 색채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전시된 27점의 작품 모두 각기 다른 색의 작품이다. 장 작가는 "똑같은 색이 없다"며 "색조를 만들어내는데 색은 정해져있지 않아 그때그때 판단해서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작품 모두가 세로로 세워져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작품 자체가 인격체처럼 서있는 느낌"이라며 "그래서 수직작업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장승택의 '겹 회화' 전시 전경 사진, 예화랑 제공
작가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붓과 캔버스 대신 에어스프레이, 레진, 유리 등 비전통적 매체를 사용한 실험적인 작업을 해왔던 그는 이번 겹회화 작업으로 30여 년 만에 다시 붓을 들었다.
장 작가는 "전통적이지 않은 기법을 그동안 많이 쓰다가 오랜 만에 붓으로 돌아왔다"라며 "처음엔 실크스크린 기법을 시도하려다 특수제작한 붓으로 단순하고 미니멀한 느낌을 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장승택의 '겹 회화' 전시 전경 사진, 예화랑 제공.
예술가답게 사랑할 때 한 사람한테 집중하듯 작업한다는 그는 "작업장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열정만 있는 노동에 집중한다"며 "가장 좋은 물감으로 가장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포천의 작업실이 너무 추워 겨울만 되면 따뜻한 나라에서 지내곤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가지 못 해 좋은 작업이 나왔다는 장 작가는 "뿌듯하다"면서도 "수줍고 창피한 느낌도 있다"며 환히 웃어보였다. 전시는 5일까지.
장승택 작가가 자신의 '겹 회화'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