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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경기도의회 신정현 의원 "기울어진 운동장··정치는 약자의 최후 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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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경기도의회 신정현 의원 "기울어진 운동장··정치는 약자의 최후 보루"

    '피플앤리더' 경기도의회 신정현 의원 인터뷰
    노동자 권익향상 위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조례 제정
    "'의회 길들이기' 도지사 특별조정교부금 집행내역 공개 추진…"
    전국 최초 '시민참여형 에너지전환 조례' 추진

    지난 2018년 6월 13일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선출된 142명의 경기도의원들은 4년간 사람중심 민생중심의 가치를 둔 '의회다운 의회'를 만들기 위해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1340만 경기도민의 대표기관인 경기도의회는 도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경기도의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뿐 아니라 지역의 현안과 민원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그만큼 도민들을 대표하는 경기도의원의 생각과 가치관, 비전 등은 지방자치시대 경기도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남들이 봤을 때 편협하다 할 정도로 약자 편을 더 들 겁니다. 그래야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이나마 비슷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의회 신정현 의원(41·더불어민주당·고양3)은 의원이 되기 전에 대리운전 기사였다. 낮에 돈벌이가 되지 않는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 밤에 대리운전을 했다.

    그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시민운동을 할 때는 그만큼 각오가 필요했다"면서도 "(시민활동은)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큰 삶의 효능감을 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회의 눈물이 고여 있는 곳을 찾아가겠다'고 마음먹고 무작정 떠났다. 그의 발걸음이 처음 도달한 곳은 제주 강정마을. 국가 안보라는 미명 아래 한 마을이 사라졌다. 1년 반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동안 그의 등 뒤에는 '평화활동가'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렇게 신정현의 시민운동은 시작됐다.

    마을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경기도 고양시로 돌아온 그는 다시 마을에서 시작했다. 공동체를 살려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을이 해체돼버린 공간에서 마을공동체 회복운동을 시작했습니다. 5년 정도 이어 왔더니 마을에 청년이 돌아왔습니다. 파편화됐던 마을에 50여 명의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민사회활동을 할 수록 갈증은 커져갔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니 사회는 잘 바뀌지 않았다. 그가 정치에 직접 뛰어든 이유다.

    신 의원은 "정치라는 공간 안으로 들어와서 조례를 바꾸고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세우는 과정의 당사자가 되면 조금 더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로 가깝게 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경기도의회 142명의 의원 중 여섯 번 째로 젊다. "기성세대의 기득권에 대항해 다음 세대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신정현 의원을 CBS노컷뉴스가 만나 그의 정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참 다양한 인생을 살았다. 20대는 육군 장교로 군복무를 했다. 30대 땐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때문에 취업 자체가 불가능한 시기에 취업을 해 직장생활을 하다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지역사회의 마을공동체 운동가, 청년운동가, 평화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시민사회운동을 했다. 생업으로 대리운전기사를 하며 돈을 벌었는데 그 수입으로 시민사회활동을 하는 생계형 활동가로 쭉 살다가 의원이 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까지 시민사회활동을 한 이유는?
    30대는 탄탄하게 재정을 만들어 결혼을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시민운동을 할 때는 그만큼 각오가 필요했다. 게다가 월급을 받는 시민단체가 아닌 개인이 평화 단체를 만들고 마을공동체 운동을 하는 조직을 만드는 조직가로서의 활동을 하다 보니 급여 자체가 없었다. 스스로가 원하는 일,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유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고 그만둘 수 있는 대리운전을 하게 됐다.

    대리운전을 하며 시민사회활동을 감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와 어깨를 마주하고 있는 주민들과 청년들이 서로 힘을 모아 세상이 바뀌는 것을 매순간 느꼈다.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큰 삶의 효능감을 줬다. 매일 6~7만 원의 돈으로 식사도 하고 동료들과 함께 활동도 하며 다음을 준비했다. 이런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대리운전이 너무 즐거웠다.

    -시민활동은 어떤 것이었나?
    2012년 제주 강정마을에서 처음 시작됐다.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청년비례대표로 출마했지만 떨어졌고, 많은 반성을 했다. 정치의 '정'자도 제대로 이해 못 하면서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다는 생각에 반성하며 우리 사회의 눈물이 고여 있는 곳을 찾아가 그분들의 마음을 공감해 보고자 여행을 떠났다. 그때 회사에 사표를 던지며 처음 갔던 곳이 바로 제주 강정마을이다. 한 일주일 머물다 돌아와 쌍용차 노동자도 만나고 밀양의 할머니를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제주도에 1년 반을 머물게 됐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투쟁들, 안보라는 이름으로 한 마을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이 너무 당연시되는 이 공간과 이것이 분단이라는 구조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관망했던 제 마음이 이제는 활동가로 마음을 전환시켰다. 스스로 말한 적은 없지만 주변에서 '평화활동가'라는 이름을 붙여줘서 제주와 세계 평화를 위한 10만 송이 청년들이라는 단체를 처음 만들게 됐다. 국회에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원점 재검토, 국정감사에 대한 청원서를 전 세계 시민들 10만 명의 서명서를 받아 제출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제 시민운동의 시작이다.

    하지만 결국 정치의 큰 구조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원안대로 통과됐고 지금 제주해군기지는 강정마을에 자리잡게 됐다. 여기서 무기력감을 느끼고 돌아온 곳이 고양시의 마을이었다. 마을이 해체돼버린 공간에서 마을공동체 회복운동을 시작했다. 앞서 말한 평화운동의 연장선으로 당사자 운동과 마을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약 5년 정도 이어 왔더니 마을에 청년이 저 밖에 없었을 정도로 파편화됐던 마을에 50여 명의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모여 '리듬'이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그 조직을 중심으로 고양시 8개 청년단체들이 모여 고양시 최초로 청년기본조례를 2017년 제정했다.

    또 청년들을 위한 '비밀기지'라 할 수 있는 청년공유공간을 청년들이 직접 만들어 운영했다. 청년들이 창업도 하고 결혼식도 하고 파티도 여는 마을공동체의 허브기지였다. 정치가 해주지 못하니까 결국은 민간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공간을 만들었다. 앞서 말했던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효능감을 바로 이 공간에서 느끼게 됐다.

    -직접 경험한 풀뿌리 정치, 직접 정치를 하고자 한 이유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거다. 시민사회 영역에서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구호로서 바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정치라는 공간 안으로 들어와서 조례를 바꾸고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세우는 과정의 당사자가 되면 조금 더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로 가깝게 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또 하나는 청년에 대한 희망과 갈망이었다. 기성세대의 기득권은 말도 못하게 강고하다. 20~30대 청년들이 주류층에 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만큼 기성세대의 기득권이 단단하다는 방증이다. 더 참신하고 열정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는 청년 세대들이 정치에 더 많이 진입할 수 있도록 기득권의 균열을 만들고 문을 여는 것이 바로 저의 역할이다. 그게 바로 제가 출마한 이유다.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 신정현 의원. 셔틀콕 유튜브 캡처

     

    -경기도의회에 입성하며 한계를 느꼈던 적은?
    정치는 집단이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처음 1년, 2년차는 스스로 생각하는 문제의식과 이것에 대해 일반 대중이 너무나 공감하는 어젠다를 끊임없이 던졌다. 그러나 의회라는 공간, 정치라는 공간은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고 원칙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곧바로 흡수하고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100명 중 10명, 20명, 30명 모여야 작동이 되는 것을 간과했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왜 내 옆에 사람이 없지? 왜 모이지 않지?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해 정의와 불의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확실했지만 정의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연대를 구성하는 능력은 현격히 부족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경기도지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권한 중 하나가 특별조정교부금이다. 특별조정교부금은 도지사가 일반적인 예산편성 과정과 상관없이 그때그때 본인의 어떤 정무적 판단에 따라 해당 시군에 지급해 주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의원들이 요구하는 예산들을 바로 특별조정교부금을 통해 부여한다. 사실상 시군의 자치단체장들이 요구하는 방식을 띄고 있지만 의원들의 역할도 많이 개입된다.

    지역의 주요현안들이 있을 때, 10억이라는 예산이 간절히 필요할 때 도비를 받아와야 하는 상황에서 특조금에 목을 매지 않을 의원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도지사는 중요한 도정 현안에 대해 특별조정교부금을 통해 의회를 무력화시키는 방법들을 오랜 시간 터득해 왔다.

    이래선 의회가 집행부를 견제할 수 없다. 이런 비정상적인 것들을 바로잡으려고 조례를 만들었다. 특별조정교부금의 기준을 세우고 이 내용이 어떻게 집행됐는지 당해 년도에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을 조례에 담았다. 하지만 조례를 만드는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 많은 의원들을 설득했고 동의를 했지만 정작 사인을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어떤 큰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저는 특조금에 대한 문제와 법령개정안들을 준비해왔다. 올해 아마 다시 한번 뜻을 함께하는 의원들과 바꿔내는 작업을 해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의정활동은?
    첫 번째는 의정활동을 시작하며 노동에 대한 공정성을 중요한 가치로 세웠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노동이사라는 개념 자체가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경기도가 앞장서서 2018년 노동이사를 도입했지만 사실상 허울뿐인 노동이사였다. 이사라면 당연히 있어야할 정보공개청구나 의안 제시권이 전혀 없어 활동 자체가 제약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공공기관의 노동이사들이 해당 기관의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 뿐 아니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한, 활동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한, 노동이사의 발언을 통해 근무평정에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권한까지 조례에 명시했다. 아마 경기도가 조금 진일보된 노동이사제를 만든 중요한 정책이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전국 최초로 만든 조례인 경기도 시민참여형 에너지전환 조례다. 에너지를 전환하되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하고 에너지의 주체가 한국전력이라는 중앙이 아닌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조례다. 조례가 만들어지고 고양시를 비롯해 여러 기초지자체가 벌써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주요한 유휴부지를 활용해 에너지 생산을 시작했는데 에너지전환의 중요한 상징이다.

    -이낙연 (전) 당대표 특보단에 임명됐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제가 선발됐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 그전에 전국청년위원장 후보로 출마를 하면서 두드러진 의제와 어젠다들을 던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지방의원 혹은 청년의원이 한 명 정도 들어가야 하는데 신정현 정도가 적당하다고 누군가 말해 당대표 특보가 됐다.

    특보는 조직, 정책을 조언하는 역할이다. 제가 최근에 이낙연 대표께 직보한 것은 소상공인들, 자영업자들이 공적자금으로 대출을 받고 10년 이상 갚지 못한 죽은 채권들이 있다. 그 채권들을 갚으라고 해서 갚지 않으면 신용불량자로 등재하겠다는 정책이 3년 전 시작됐다.

    코로나 위기로 황폐화된 소상공인들이 금융지원도 못 받게 되는 신불자가 돼서 회수율이 1.3%밖에 안됐다. 우리 사회에서 한번 빚진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간다는 건데 국가가 먼저 나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제안을 드렸다. 오히려 약자에게 가혹한 금융이라고 보통 말한다. 약자에게 조금 더 재도전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금융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보단으로 어떤 역할을 했나?
    메인 이슈에 담기지 못하는 정책들이 있다. 노동이라고 말하면 민주당의 메인 노동은 항상 정규직이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고 비정규직 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이런 분들은 민주당의 주요 이슈가 되지 못한다.

    특보로서 저는 메인 어젠다에 담기지 못한 사각지대, 그 울타리 바깥에서 고통받고 있는 더 많은 대중들의 목소리를 듣고 당 대표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제가 끊임없이 만나고 소통하는 집 없는 사람들의 모임,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 등 더 많은 대중과 사람들이 포함된 울타리 밖에 목소리를 당에 전달할 수 있는 채널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구 고양시의 주요 현안은?
    화정1동은 8만 명이 살고 있는 25년된 신도시다. 주민들은 모일 수 있는 공간, 배울 수 있는 공간,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커뮤니티 활동을 너무나 바란다. 공교롭게 아파트와 상가로 가득 찬 공간에 주민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해보고 싶은 것은 비어 있는 공간, 쉬고 있는 공간을 적극 찾아내 주민들이 언제든지 모이고 본인들이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마을 안에서 시민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평생 교육, 평생 학습, 평생 공동체가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학교 안 비어가고 있는 공간을 찾아내 주민과 학생들이 함께 쓰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관련 조례개정안을 준비하고 있고 학교 안 비어있는 공간의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임기 안에 꼭 만들어 보고 싶다.

    -본인의 정치철학이 있다면?
    철학은 거창하다. 철학이라는 표현보다 저는 정치는 약자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은 균형을 잡아야지 한다고 하지만 균형을 잡다 보면 약자는 항상 소외된다.

    예를 들어 경기연구원에 노동조합이 있다. 그분들이 저를 만나 이야기를 했는데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처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영진이 찾아와 노동조합의 이야기를 듣지 말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균형 있게 의정활동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처음 저와 이야기하지만 경영진은 수시로 저와 만나 이야기 한다. 정치라는 공간은 항상 기득권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약자의 입장에서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힘인 정치가 오히려 기득권에 더 가깝게 가 있다.

    저의 정치 철학은 기울어져 버린 운동장에서 남들이 봤을 때 편협할 정도로 약자 쪽에 더 많이 찾아가고 더 많이 들어 그들의 논리와 주장에 제가 힘을 실어 주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것이 기울어진 것을 수평은 못 만들어도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약자의 마지막 기댈 수 있는 보루가 되는 정치를 하고 싶다.

    -"신정현은 OOO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신정현은 신의 한 수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유권자들의 한 표, 한 표가 땅에 떨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 수 잘 두었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다가올 선거에 매몰된 사람이 아닌 다음 세대까지 품어낼 수 있는 정치인, 그래서 박수 받으며 의정활동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민들의 '신의 한 수'가 되는 정치, 이것이 신정현을 가장 잘 나타내는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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