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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습니다" 제주 4‧3 70년 恨 풀어준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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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었습니다" 제주 4‧3 70년 恨 풀어준 사법부

    생존‧행불수형인 335명 '무죄' 선고…종일 '릴레이' 재판
    선고 때마다 박수 환호에 눈물바다…할머니 영정사진 들기도
    재판장 "덧씌워진 굴레 벗길" "이제, 마음의 평안 찾길"
    앞으로 진행될 4‧3수형인 특별재심 좋은 선례로 남아

    16일 4·3수형인 335명이 모두 무죄를 받은 직후 유족들이 법원 앞에서 만세를 하고 있다. 고상현 기자

     

    제주 4‧3 당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옥살이를 한 수형인 335명이 70여년 만에 죄를 벗었다. 4‧3 수형인 335명이 한 날에 오명을 지운 것은 사상 처음이다. 법정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생존‧행불수형인 335명 전원 오명 씻어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6일 오전 10시부터 故김순원씨 등 13명을 시작으로 오후 6시까지 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21개 재심사건 선고 공판을 열었다.

    이들은 4‧3 광풍이 몰아치던 1948년과 1949년 사이 국방경비법 위반, 내란실행 혐의 등으로 군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목포형무소 등 육지 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한국전쟁 전후로 행방불명된 탓에 유가족이 피고인을 대신해서 재심을 청구했다.

    무죄 선고 직후 한 유족이 눈물을 닦고 있다. 고상현 기자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들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 수형인 335명 중 유일하게 생존한 고태삼(92)씨‧이재훈(91)씨도 같은 이유로 죄를 벗었다.

    무죄 선고 직후 방청석에 있던 고령의 재심 청구인들은 눈물을 쏟거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4‧3 당시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렸던 아버지, 오빠, 형 등이 70여년 만에 죄를 벗는 순간이다.

    특히 이날 할머니 故강어생씨를 대신해 재심을 청구한 박용현(68)씨가 법정에서 할머니 영정 사진을 들고 있기도 했다. 한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지난해 작고한 아버지를 위해서다.

    박용현(68)씨가 들고 온 할머니 영정사진. 고상현 기자

     

    박씨는 재판장에 "4‧3으로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고아로 72년 살다가 한도 못 풀고 작년에 돌아가셨다. 한을 풀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 맺힌 삶 살아온 유가족 위로한 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무죄를 선고하며 평생 한 맺힌 삶을 살아온 유족들의 마음도 어루만졌다.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안고 방청석에 앉은 유족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재판장의 말을 경청했다.

    "피고인들은 형무소에 수감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학살당하거나 행방불명됐습니다. 이들 모두 여태껏 유해조차 수습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집에 돌아오고 싶으셨을지 상상이 안 됩니다."

    "유족들은 법에도 없던 연좌제로 한평생 말도 못할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이제 7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 재판 방청을 위해 멀리서 오셨을 텐데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고상현 기자

     

    "오늘 이 판결로 피고인들과 그 유족들에게 덧씌워진 굴레가 벗겨지고, 나아가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들은 저승에서라도 그리운 사람과 마음 편하게 둘러앉아 정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특히 인천형무소에서 아버지(故강윤식씨)를 잃은 강방자(79‧여)씨가 "6살 때 헤어진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시면 107살입니다. 한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라고 하자, 장 판사는 강씨를 위로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국가가 이제야 한을 풀어주네요. 국가 잘못도 있습니다."

    무죄 선고 직후 유족들이 눈물을 닦고 있다. 고상현 기자

     


    ◇4·3수형인 특별재심 앞두고 좋은 선례로 남아

    그동안 4‧3수형인에 대한 재심은 18명, 10명 이렇게 선고된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생존‧행불수형인 335명이 한 날에 증거조사, 검찰 구형부터 선고까지 한꺼번에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재판부는 유가족이 고령이라 더는 재판을 늦출 수 없어서 이례적으로 같은 날 선고했다. 특히 직접 선고 결과를 듣길 바라는 다수의 유가족을 배려해 '릴레이' 형태로 재판을 진행했다.

    이날 진행된 역대 최대 규모의 4‧3수형인 재심사건 재판은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안 국회 통과로 앞으로 진행될 수천 명에 달하는 4‧3수형인 특별재심에 대한 좋은 선례로 남았다.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고상현 기자

     

    행불수형인 재심을 이끈 문성윤 변호사는 "이번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수형인들은 법률에 따라서 무죄를 받았다. 앞으로 특별재심이 진행될 텐데, 판결 기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임종 4‧3희생자유족회장은 "앞으로 군사재판과 일반재판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추가 소송을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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