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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호소'로 세워진 서진학교…코로나 뚫고 '첫' 졸업생 배출



교육

    '무릎 호소'로 세워진 서진학교…코로나 뚫고 '첫' 졸업생 배출

    • 2021-03-04 05:20

    주민 반대로 지난해 6년 2개월 만 개교…총 20명 졸업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줘" "학교 설립 보며 인식 변화 느껴"
    교사들 "원격수업, 지역사회 연계활동 부족 아쉽지만…보람" 소회
    2.5단계서도 1주 2회 등교 지켜…"학년말 되니 아이들 감정 표현"
    홍용희 교장 "장애공감 문화 확산돼야"…졸업 이후 진로 개척도 과제

    <그냥, 사람="">(2020), 홍은전 中
    '특수학교 설립은 정의가 아니다. 애초 학교가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진정한 배움의 장이었다면, 그리하여 학교가 모든 학생을 차별 없이 받아들였다면 특수학교는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홉을 가진 사람이 하나를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빼앗아 열을 채우고 싶어 할 때, 선심 쓰듯 내놓는 타협이 바로 특수학교다. 그런데 그마저도 가로막힌 밤, 엄마들이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지난달 26일 방문한 서울 강서구 가양동 서진학교 전경. 이은지 기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은 모두가 공감하는 명제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배 아파 낳은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병원과 복지관, 아이의 배움터를 찾기까지 도처마다 비(非)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알 수 없는 분투가 기다린다. 이는 지난 2017년 9월 5일 서울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관련 주민토론회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지역구 의원이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은 자신의 공약이었던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을 내세웠고, 일부 주민들은 '부자동네인 인근 양천구 등엔 특수학교가 한 군데도 없는데 강서구에만 (교남학교 외) 추가로 지으려 하느냐'고 완강하게 반대했다. 이에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은 "무슨 욕을 하셔도 상관없다. 그런데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 장면이 담긴 영상의 파장은 컸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김 의원, 반대주민 등은 이듬해인 2018년 9월 '새 교육청 부지가 나오면 한방병원 건립에 우선 협조한다'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이에 지난 2013년 11월 설립이 예고됐던 학교는 6년 2개월 만인 지난해 3월에서야 옛 공진초 부지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느덧 1년이 흘러 '첫' 졸업생 20명(초등학생 12명·중학생 5명·고등학생 3명)이 서진에서 배출됐다.

    올해 초6 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이성빈군과 담임을 맡았던 전이삭 선생님이 지난달 10일 서진학교 제1회 졸업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머니 이하영씨 제공

     

    "졸업식을 봤을 때 너무 감격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사실 제한이 많은데도, 아이들이 빛날 수 있는 졸업식을 준비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다들 '우리 애가 졸업할 수 있을까' 하셨을 텐데, 그 무대를 만들어준 서진이란 곳에 너무 감사해요"

    이번에 초6 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이성빈군의 어머니, 이하영씨는 지난달 10일 졸업식을 떠올리면 아직도 감회에 젖는다. 이군은 축사를 위해 학교를 찾은 조 교육감이 선물을 건넬 때 그를 힘껏 끌어안기도 했다. 조 교육감은 "서진학교 첫 졸업식을 너무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린다. 서진학교는 강서·양천구 장애학생을 위한 선도 교육기관으로 특수교육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축하했다.

    당일 강당에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졸업가운에 학사모를 착용한 졸업생들만 입장했고, 학부모들은 시청각실과 차량 안에서 유튜브로 생중계된 식을 지켜봤다. 이씨는 "우리 성빈이뿐 아니라 거기 있는 애들은 다 나의 애들인 거다"라며 "일반 학교하고 (느낌이) 다른 게, 저희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다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아닌가. 이 엄마가 느낀 것을 다른 엄마도 똑같이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성빈군은 일반학교였던 발산초등학교 통합학급에 재학했다. 이씨는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 연락 오는 횟수가 늘었다고 했다. 사회성이 좋은 성빈군이 친구들에게 친밀감을 표현하고 스킨십을 할 때면 민원 전화가 와 스트레스가 많았단다. "선생님은 다른 (일반) 학생들을 끌고 가고, 우리 애는 껴준다는 느낌이었어요. 가장 힘든 게 학년이 올라갈 때 '이번엔 어느 선생님을 만날까', '이 반에는 따뜻한 아이가 있을까'를 걱정해야 했다는 거예요." 5년 내내 마음을 졸였던 그는 서진학교 소식을 접하고, 입학기회를 놓칠세라 매일같이 학교와 교육청에 전화를 걸었다.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학교는 모자(母子)에게 웃음을 찾아줬다. 이씨는 "서진학교에선 (아이의 모습을) 사랑으로 본다면, 일반 학교에선 신고가 들어왔다. 그곳은 (성빈이가) 이방인 같았다면 여기(서진)는 아이가 주인공이라는 게 달랐다"고 지난 1년을 돌아봤다. 아침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던 성빈군도 확연히 달라졌다. 이씨는 "(학교에 간다고 하면) 성빈이가 '학교? 와, 좋아!'라고 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지난달 26일 서진학교는 입학식과 개학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로 분주했다. 가지런히 정돈된 교실 모습. 이은지 기자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다' 할 만큼 체감한 변화에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주는 교육이 컸다. "일반 학교에선 다른 애들이 배우는 걸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30가지 수(數) 알아보기'처럼 자기 수준에 맞는 걸 하잖아요." 이씨는 "(가위로) 자르기, 풀칠처럼 우리가 1초면 하는 일을 아이들은 6개월, 1년씩 걸려서 한다"며 "서진학교에선 그게 가능하도록 기다려주시고 도와주신다. 선생님들이 아이한테 '안 돼'라는 말 자체를 안 하신다"고 고마워했다.

    학교는 수도권의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원칙적으로 등교가 불가했던 기간에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최소한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씨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고 나서 엄마들이 요청을 드리자 교장 선생님께서 1주일에 2번 등교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며 "보통 학교에서 앞서 내보낸 공문(지침)을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부모들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들어주셔서 놀랐다"고 말했다. 만에 하나 확진자가 나오면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가 학교장임을 생각할 때 '일반학교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고3 졸업생으로 올해 서진학교 전공과에 진학하는 정성재군의 어머니, 손동현씨도 "학교를 위해 여러 어머님들이 많이 애써주셨다. 그 학교의 첫 졸업생이 되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손씨는 "이전에 다녔던 특수학교보다 (학생 수가) 과밀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예전 학교는 교사들이 마음은 있어도 그런 환경이 되지 않았다"며 "특수학교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거주 구(區)를 떠나 다른 구로 한 시간 이상 통학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어렵게 세워지는 학교를 지켜보며 노심초사하기도 했지만, 어렴풋한 희망도 느꼈다. 손씨는 "공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주민 분들이 민원을 넣고 반대를 많이 했다. 땅값이 떨어질 거란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다 같은 자녀고,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건데 그런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돌이켰다.

    이어 "엄마들에겐 돈 얼마를 준다고 해도 자식과 바꿀 수 없다. 나중에 학교가 설립이 되고 (아이들이) 안전히 다니는 걸 보면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학교가 세워진 것만 봐도 (인식이)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 학교에서 잘 케어해주셨고,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어 점차 마음을 더 열지 않을까 싶다"고 부연했다.

    왼쪽부터 지난해 성재군이 소속된 고3 반을 담임한 박찬호 선생님, 홍용희 교장, 성빈군 등 초6 학생들을 가르친 전이삭 선생님. 이은지 기자

     

    힘겹게 첫발을 내딛은 '서진'은 교사들에게도 남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성재군을 가르친 고3 담임 박찬호 선생님은 "처음에는 개설학교라 일이 많아서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평소 알고 지내던 개설위원 선생님께서 '같이 학교를 만들어보자'고 하셔서 의미 있는 일을 함께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빈군을 포함해 지난해 초6 반을 맡았던 전이삭 선생님 역시 "현장경험을 쌓고 싶은 마음 때문에 '서진학교가 언제 개교하나' 사이트를 종종 들어가봤다"며 "이후 개설위원으로 오게 됐는데, 공사 중에는 일할 장소가 없어 옆에 있는 공진중학교 미술실에서 서른 명쯤 되는 선생님들이 모여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32년간 특수교육에 헌신한 홍용희 교장은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도 개설이라 하면 (교사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통근이) 2시간 이상 걸리는 분들도 장애학생들을 잘 지도해보자는 꿈을 갖고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진의 교장으로 부임한 것이 "영광스럽다"고도 했다. 본인 스스로가 뇌성마비 장애 3급이기도 한 그가 손수 지은 학교의 교훈은 '꽃처럼 아름답게, 별처럼 빛나게'다.

    물론 코로나가 잠식한 한 해인 만큼 수업은 매일이 도전의 연속이었다. 박 선생님은 "아이들이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성재의 경우, 실시간 화상수업을 할 때 시작 직전에 '(수업을) 안하겠다'고 해서 몇 번 취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일 아쉬운 건 지역사회와 연계한 활동을 (별로) 못했다는 것"이라며 "아파트 환경미화 같은 봉사활동 등 주민들에게 학교가 생겨 가능한 일들을 보여줄 수 있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많이 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전 선생님은 '지도의 연속성'이 흔들린 점을 꼽았다. "일주일에 두 번 등교하거나, (거리두기) 단계마다 등교일정이 달라지니 이런 불확실성이 가장 힘들었어요. 특수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일상생활 기술 지도를 많이 하는데, 양치질 같은 것도 '비말이 튈 수 있어서 안 된다'고 하니 한계가 좀 있었어요. 아이들한테 얼마나 이런 지도를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었죠."

    이번에 고3을 마치고 졸업한 성재군이 지난 1년간 박찬호 선생님의 지도 아래 사진과 그림, 글을 모아 만든 책자 중 일부. 이은지 기자

     

    '비대면'이 기본값인 상황에서 교감을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와 노력도 이어졌다. 전 선생님은 교실 칠판에 '칭찬 화분'을 붙여두고, 학생들이 '칭찬 꽃잎'을 5개 모으면 보드게임 등 아이들이 원하는 공동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고3 학생들은 1년간 각자의 자화상, 사진, 시와 산문 등을 담은 책을 펴냈다. 박 선생님의 반이었던 성재군이 고른 필명은 '씨앗'이다. 경복궁으로 갔던 졸업여행에서는 한복을 차려입고 양껏 찍은 사진들로 편집영상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같은 진심은 학생들의 마음에도 가닿았다. 전 선생님은 "의사전달이 힘든 학생들인데도 학년말이 되니 감정 표현을 많이 하더라. 한 아이는 '선생님, 마음이 아파요'라는 말을 했고, 가볍게는 '선생님과 계속 연락하고 싶은데 3층으로 오면 되나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뭉클한 마음을 전했다. 박 선생님 역시 "사람이 제일 희망이구나,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올해 서진에는 '순회 학급'(장애가 심해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을 포함해 초등학교 12명·중학교 12명·고등학교 6명·전공과 11명 등 46명이 입학했다. 개학을 맞아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선 홍 교장은 학생들의 '졸업 이후'를 여러 번 입에 올렸다. 그는 "모든 사회가 손을 맞잡고 생애주기별에 따라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밑바탕에는 장애 공감문화가 형성돼야 한다"며 "학교현장에서 통합이 이뤄지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태도 때문"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특수교육의 성과 기준은 장애학생이 혼자 지역사회에서 독립적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지역주민들과 통합적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며 "최고의 복지는 직업 창출이다. 장애학생들도 소외됨이 없이 그들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진로를 개척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입학할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준비한 서진학교의 '촬영 스팟'. 창문과 통로가 넉넉하게 지어진 학교는 채광이 잘돼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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