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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전담 공무원 5개월 "밀려드는 조사, 어떻게 감당하나"



사건/사고

    아동학대전담 공무원 5개월 "밀려드는 조사, 어떻게 감당하나"

    지난해 10월부터 아동학대 조사 영역 '공공화'
    대다수 지자체들, 아보전 인력 지원 받아
    전담 공무원 인력 '태부족', 전문성 미비
    "정부, 전문인력 확충 위해 과감한 투자해야"

    그래픽=고경민 기자

     

    지난해 10월부터 아동학대 조사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의 영역이 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등 민간이 맡아왔던 현장 조사를 '공공화'한다는 취지에서다. 시행 5개월차. 현장에서는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현장에 뛰어들게 됐다", "다른 업무 직원에게 SOS를 요청해 잠시나마 도움을 받고 있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온다.

    23일 CBS노컷뉴스는 현장을 뛰고 있는 서울시 지자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접수하면 현장 출동·조사, 응급 조치 및 시설 인계 등의 역할을 한다.

    ◇"사건은 밀려드는데…전담인력 돌려막기"

    "전문성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지금 교육을 시켜준다고 해도 여건상 교육을 받을 수 없어요. 사건은 계속 들어오는데 자리를 비우면 누가 처리하나요."

    서울의 ㄱ지자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A씨는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는 현장 업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고 동 주민센터에서 복지 업무를 담당한 적은 있지만, 아동학대 업무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A씨는 "'아동학대'라는 단어도 조금 생소하다"며 "갑자기 발령받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은 주 7일 24시간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한다. 사례를 판단하고 학대 행위자와 아동을 분리할지 결정하는 등 번번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A씨는 "'정인이 사건'과 같이 중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지자체 차원에서 대응하는 게 아직은 힘이 든다"며 "행위자들의 저항, 협박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은 뒤 2주 교육을 받은 게 전부라고 했다. 일주일은 이론 교육, 나머지 한 주는 아동권리보장원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실습 교육을 받았다. 업무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고 했다. 아예 교육을 받지 않고 현장에 바로 투입된 경우도 있었다.

    아동학대전담 공무원들이 사건 조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의 ㄴ지자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B씨는 "말이 '전담'이지, 실제로는 전담이 아니다"라며 "현장 업무 외에도 예방 계획, 조례 관련 업무, 정보공개협의체 관련 회의 등 행정업무에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고 지적했다.

    ㄷ지자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C씨도 "신고가 들어오면 3일 이내, 최대 2개월 이내 조사를 끝내라고 매뉴얼에 규정돼 있는데, 여러 업무를 겸임하다 보니 조사가 지연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사 팀과 행정 업무 팀을 분담하면 현장에 보다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치된 정인이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한형 기자

     

    ◇"적응기 길어지나…준비 안 된 곳이 대다수"

    '정인이 사건'(양천 아동학대 사건) 발생 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112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는 모두 107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2019년 10월~2020년 1월) 대비 50.50% 늘었다. 현장에 출동해 사건을 조사하는 지자체 전담 공무원의 '역량' 제고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대다수 지자체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보건복지부가 권고한 인력에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 아보전 인력의 지원을 받거나, 학대 조사 업무를 겸임하도록 하는 등 '돌려막기'식 인력 운영을 하고 있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행정안전부와 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국 229개 지자체 가운데 복지부의 배치 기준을 충족하는 곳은 56곳(24%)에 그쳤다. 단 한 명도 배치하지 않은 곳은 102곳(45%)에 달했다. 복지부는 연간 아동학대 의심사례 신고 접수 50건당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1명을 배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서울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앞서 복지부는 지자체 상황에 따라 '적극 지원', '지원' 등으로 구분해 일정 기간 아보전의 지원을 받도록 했다. 서울시는 자치구가 조사 업무를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해 이를 다시 4단계로 세분화했다. 1단계는 아보전 지원이 많이 필요한 경우, 4단계는 자치구가 조사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자치구-아보전 업무 조정 대상에서 제외된 노원구를 제외하고 24개 자치구 가운데 4단계는 현재 광진구뿐이다. 17개 지자체(70.8%)가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하는 1단계에 해당한다. △2단계: 구로구 △3단계: 중랑·은평·양천·강서·강남구 등이다.

    자료에 따르면 1월 기준,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복지부 권고보다 적은 인원이 배치된 곳은 강서, 관악, 구로, 양천, 영등포구 등이다.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현재 이들 지자체는 권고 기준에 맞춰 인력을 충원했다. 강서 4명, 관악 2명, 구로 4명, 양천 3명, 영등포 3명 등이다.

    하지만 현장 어려움은 여전하다. 강서구 관계자는 "복지부 권고 기준에 따르면 6명이라 아직 부족하다"며 "복지부 계획이 1명당 1년에 50건을 맡으라는 것인데, 지난해 326건이 접수됐고 올해 1인당 8~9건을 맡았다"고 했다. 다른 지자체들은 '전담' 인력 충원 전까지 팀원이 행정업무 등을 임시로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아동 학대. 연합뉴스

     

    ◇"'전문인력'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부족 현상이 곳곳에서 빚어지자, 행정안전부는 각 지자체에 인력 수요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준 인건비로 공무원 숫자가 묶여있어 행안부에서 기준인력을 늘려줘야 (확충이) 가능하다"며 "현재 서울시는 74명을 확보했고, 연말까지 76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치구 의지에 따라 다른 (업무) 인력을 아동학대 전담으로 먼저 배치하는 식으로 인력을 조정하는 상황"이라며 "3월 31일까지는 최대한 2단계 이상으로 끌어올리려 노력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이달 초 자치구에 보냈다"고 덧붙였다.

    전담 공무원들의 상황을 지켜봐 온 아보전 관계자는 "'처음이니까 도와달라'는 이유로 사례 관리를 담당하는 아보전에 현장조사 업무를 요구하면서 곳곳에서 갈등도 있다"며 "충분하지 않은 인력, 명확하지 않은 업무 구분 등을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박명숙 교수는 "5개월은 앞으로 전문인력 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부모 저항도 심하고 민감한 아동학대 사안을 경험이 없는 공무원들이 순환 보직으로 맡는 건 공무원 업무 스트레스를 야기할 뿐 아니라, 학대가정과 아동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주지 못하는 등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감히 결단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들이 필요하다"며 "아보전 경력이 있는 사람을 공무원으로 특별채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전담 공무원 교육 과정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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