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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65% "정체성으로 차별 경험"…'성별 정정'은 8% 불과



사건/사고

    트랜스젠더 65% "정체성으로 차별 경험"…'성별 정정'은 8% 불과

    인권위, 성인 591명 조사…92% "학창시절 교복 착용 등 어려움"
    86% "의료비용, 건강상 부담 등으로 법적 성별 정정 시도 못해"
    "가족들이 알아도 모른 척" 빈번…공중화장실·병원 이용도 불편
    연구진 "인구집단 가시화 필요…국가 차원 인식 개선 캠페인도"

    연합뉴스

     

    국내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60% 이상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막대한 의료비 등의 부담으로 실제 법적 성별 정정을 한 인원은 10%를 밑도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9일 숙명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트랜스젠더 591명을 설문조사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연구엔 '혐오표현'의 권위자로 꼽히는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를 필두로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알려진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인 고려대 보건대학원 김승섭 부교수 등 11명의 연구진이 참여했다.

    인권위는 "국가기관 최초로 트랜스젠더가 겪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그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번 실태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또 그간 성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위나 민간 연구조사는 대상인원이 200~300명대였던 데 비해 이번에는 당사자 참여규모를 대폭 늘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선행 연구들을 인용해 '트랜스젠더'의 뜻을 '출생 시 지정된 성별은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트랜스여성, 출생 시 지정된 성별은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트랜스남성, 남성과 여성 외의 성별로 정체화하는 논바이너리(Non-binery·남성과 여성을 이분화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해 5~11월 6개월 동안 △성별 정정 및 신분증 △가족생활 및 일상 △학교·교육 △고용·직장 △화장실 등 시설이용 △군대·구금시설 등 국가기관 △의료적 조치 및 의료접근성 △기타 혐오차별 △건강수준 등 9개 분야에서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혐오차별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참여자들의 구성은 트랜스여성 32%(189명), 트랜스남성 18.8%(111명), 논바이너리 지정성별 여성 37.4%(221명), 논바이너리 지정성별 남성 11.8%(70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참여자들의 85.2%(501명)는 지난 12개월 동안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 사유로는 '트랜스젠더 정체성 또는 성별표현 때문에'가 65.3%(384명)로 가장 많았고 △키와 몸무게를 포함한 외모 때문에 40%(235명) △성적 지향 때문에 38.4%(226명) 등이 꼽혔다.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이들의 46.8%(275명)는 1년간 '2~4가지'의 이유로 차별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고, '5가지 이상'의 사유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도 24.3%(143명)에 달했다. 반면 단 한 가지 이유로만 차별의 대상이 됐다는 참여자는 14.1%(83명)에 그쳐 대부분 다양한 차별과 혐오를 교차로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많은 경우 트랜스젠더들은 가족들에게도 정체성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해 고립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가족 중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참여자가 34.4%(203명)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어 △반대하거나 무시한다 25.7%(152명) △지지해준다 23.7%(140명) △지지하지도, 반대하거나 무시하지도 않는다 16.2%(96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연인, 배우자 등 가족 외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도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지난 1년간 파트너가 있었다고 응답한 311명 중 13.5%(42명)는 원치 않을 때 성관계를 강요당하거나 '원하지 않는 형태'의 성관계를 강압당한 적이 있었다고 답했다. 다만, 연인이나 배우자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지지해준다'고 응답한 이들도 77.1%(239명)로 매우 높게 나타나 가족과의 차이를 보였다.

    성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권 교육으로 인해 경험한 어려움도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중·고등학교에 재학했던 585명의 참여자 중 92.3%(539명)가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교복 착용·화장실 이용,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탈의실 부재 등으로 학창시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는 '성소수자 관련 성교육 부재'가 69.2%(404명)로 나타났다. 67%(392명)는 교사가 수업 중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것을 보고 들은 적이 있다고도 응답했다.

    이같은 어려움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최근 5년간 구직 경험이 있는 참여자 469명 중 57.1%(268명)는 본인의 정체성과 관련해 직장 지원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채용과정에서 외모, 복장, 말투, 행동 등이 '남자/여자답지 않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겪은 이들 또한 48.2%(225명)로 집계됐다.

    이들은 공중화장실 등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도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을 의식해 성별 정체성과 다른 성별의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40.9%·241명)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정성별이 남성인 트랜스여성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참여자 중 군 복무 중이거나 복무를 마친 108명 중 절반 이상(58.3%·63명) 역시 '공동 샤워시설 이용하기'를 가장 큰 애로점으로 꼽았다. 참여자 가운데 27.9%(164명)는 병원을 찾아야 하는 시기에도 '방문 필요가 있었지만 포기한 적이 있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불편에도 '법적 성별'을 정정했거나 시도를 한 적이 있는 참여자는 8%(47명)에 그쳤다. 성전환 수술 등 외과적 의료조치를 취한 인원 또한 20% 남짓인 122명에 불과했다.

    성별 정정을 시도하지 못한 이들은 절반 이상이 '성전환 관련 의료조치에 드는 비용'(58.9%·229명)을 이유로 들었다. 또 △법적 성별 정정 절차가 복잡해서 40%(203명) △성전환 관련 의료조치에 따른 건강상 부담 때문에 29.5%(150명) △직장을 구할 때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서 28.7%(146명) 등이 뒤를 이었다.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미디어를 통한 혐오·차별도 만연했다. 이들의 87.3%(515명)는 지난 1년간 방송·신문·인터넷 뉴스 등 언론과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등 커뮤니티 및 드라마·영화 같은 영상매체에서 혐오표현을 접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참여자의 무려 97.1%(573명)는 같은 기간 인터넷에서 트랜스젠더 혐오표현을 접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2000년 연예인 하리수의 출연 이후 트랜스젠더라는 용어 자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실제로 접한 사람은 드물고 아직까지도 사회 전반의 이해가 부족하다"며 "지난 2017년 국제 설문조사기관인 입소스(Ipsos)에서 실시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의 70%가 트랜스젠더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거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방지를 위해서는 트랜스젠더 인구집단의 가시화와 이를 통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정책 수립을 위한 인구집단으로서의 실태조사와 통계작성이 이뤄져야 한다"며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이 아닌 언론, 영상매체 등 미디어를 통해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를 접한다는 점에서 미디어가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개선, 국가적 차원의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들이 함께 실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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