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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박원순 성추행' 다른 재판서 언급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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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셜 법정B컷

    [법정B컷]'박원순 성추행' 다른 재판서 언급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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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모씨 선고서 언급
    정씨 측 "피해자 PTSD는 박원순 성추행 때문" 주장
    재판부 "박 전 시장 성추행으로 피해자 정신적 고통"
    다만 PTSD 직접 계기='정씨 성폭행 범행' 결론
    김재련 변호사 "피해자에게 조금이나마 위안될 것"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21.1.14 전 서울시청 공무원 정모씨 1심 선고
    재판장 "이 사건 피해자가 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피고인의 행위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 주장은 결국 이 사건 범행 이전에 발생한 피해자의 전 직장 상사인 고(故) 박원순 시장으로부터의 성추행으로 인해 PTSD가 발생한 것이지 피고인의 준강간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동료 공무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지난 14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피해자 측 변호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재판 후 발언하고 있다.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전직 서울시청 비서실 공무원 정모씨에 대한 1심 선고가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이날 피고인인 정씨보다 관심은 다른 곳에 집중됐는데요. 바로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입니다.


    아시다시피 박 전 시장은 성추행 의혹을 인지한 후 극단 선택해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피고인의 사건에서 재판부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언급하고 판단했는지 의문이 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 재판의 피고인은 우선 정씨입니다. 정씨는 지난해 4월 14일 회식 후 만취한 여성동료(피해자)를 성폭행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상해를 입게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죄명으로는 '준강간치상'인데 성폭행이 '준강간'에, PTSD를 입게 한 것 '치상'에 해당합니다.

    알려졌다시피 이 사건의 피해자가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와 동일인입니다. 하지만 두 사건은 별개라 검찰의 공소사실까지만 보면 박 전 시장이 언급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정씨 측은 피해자의 정신적 상해를 입은 원인을 정씨의 행위가 아닌 박 전 시장의 성추행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 전 시장이 이 사건에서 언급되게 된 계기죠.

    이 주장은 겉으로는 단순한 책임회피처럼 들리지만 법적으로는 '노림수'에 가깝습니다. 준강간죄는 상대방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죄 자체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그런데 '치상'이 인정되면 수위가 대폭 늘어 5년 이상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습니다. 양형기준의 권고형량 범위도 준강간은 2년 6월~5년이지만 치상이 추가되면 4~7년으로 늘어납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정씨로서는 성폭행이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상해에 대한 책임만 피한다면 훨씬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던 셈이죠. 실제로 치상이 성범죄 사건에서 잘 인정되지 않는 편이기에 정씨 입장에서는 나름 책임을 피해갈 논리를 마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그렇기에 재판부의 입장에서도 이를 배척할지 받아들일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정씨 측의 항변대로 피해자가 겪은 PTSD의 원인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라면 정씨의 행위로 피해자가 정신적 상해를 입었다는 부분은 인정이 안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정리하면 정씨가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책임을 박 전 시장에게 돌리면서 이 사건 재판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도 자연스럽게 같이 다뤄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21.1.14 전 서울시청 공무원 정모씨 1심 선고
    피해자는 5월 병원에 내원해 치료받고 5월 15일경부터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진술하기 시작한 점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박원순 전 시장 밑에서 근무한 지 1년째부터 '냄새 맡고 싶다', '사진을 보내달라'는 식의 문자를 받았다. 2019년 1월경에는 (박 전 시장이)'남자에 대해 너는 모른다', '남자를 알아야 시집을 간다'거나 남성과 여성의 성관계 과정을 얘기해줬다는 식의 진술을 했습니다. 피해자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PTSD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이 아닌 정씨의 성폭행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논란이 커진 지점이 있습니다. 재판부가 "이런 진술에 비춰보면 피해자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고도 말했기 때문인데요. 이는 상당히 단정적인 어조였던 만큼 법원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사실로 인정했다는 해석이 함께 뒤따랐습니다. 이 부분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황진환 기자
    재판부가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를 "사실로 보인다"고 판시한 지점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이 있었을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재판부는 당시 병원으로부터 제출된 진단서 및 피해자의 상담 중 진술내용 일부를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받았다는 각종 성적인 내용('몸매가 멋있다', '냄새가 맡고 싶다' 등)이 담긴 문자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 담기기도 했습니다. 신빙성이 떨어진다면 굳이 이런 구체적인 정황을 언급할 필요도 없었겠죠.

    다만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이 엄밀한 의미에서 법적사실로 인정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아까도 말했듯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은 정씨의 성폭행이 사실인지 아닌지 사실이라면 피해자의 PTSD와 인과관계가 있었는지에 한정될 뿐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씨의 주장을 판단하다보니 박 전 시장의 의혹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이는 당사자의 입장을 청취하는 과정 등을 통해 명확히 입증한 수준은 아니라는 겁니다. 한 판사는 "정씨의 행위로 이 PTSD가 생긴 것은 맞다는 맥락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써놨지만 이 사건의 직접 쟁점은 아니다"며 "형사사건에서의 사실인정 범위는 판단대상인 공소사실에 관한 것이고 공소사실이 실제로 발생해 유죄를 인정할지 말지에 대한 것이 아닌 제3자의 범행은 이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사실인정인지 여부를 놓고 해석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최소한 피해를 인정하며 성추행이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판단으로 보입니다.

    21.1.14 전 서울시청 공무원 정모씨 1심 선고
    피고인 변호인은 지난 기일 법정에서 이 사건에 있어서는 객관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피해자를 성폭행한 것은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에 있어서는 객관적 증거라는 것이 이를 본인이 스스로 촬영하거나 녹음하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것이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진술 내용 중 어느 것을 좀 더 신빙할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 없다는 점 말씀 드립니다.

    사실 박 전 시장이 의혹을 인지한 후 극단 선택하면서 피해자의 호소는 사법적으로는 판단 받을 기회조차 잃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시장 지지자나 일부 민주당 열성 지지자 등을 위주로 "피해의 증거가 없지 않냐"는 식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끊임없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한형 기자
    그래서 이날 재판의 가장 큰 의의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됐다는 그 자체에 있습니다. 재판장의 말대로 성범죄 사건이란 것은 대부분의 경우 객관적인 물적 증거라는 것 자체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어느 쪽의 진술이 더 믿을만한 것인지 여부인데 재판부는 이를 살핀 결과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에 대해 피해자를 변호한 김재련 변호사도 선고 직후 "피해자가 결국은 박원순 시장 사건으로 법적으로 호소할 기회를 잃게 됐는데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대해 일정 부분 판단을 해줬다는 게 피해자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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