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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송서 깨진 日 '주권면제'…법조계 "역사적 판결"



법조

    위안부 소송서 깨진 日 '주권면제'…법조계 "역사적 판결"

    法, '위안부' 피해자 측 손배소서 승소 판결
    일본 측 내세운 '주권 면제' 원칙 적용 안 해
    "국제규범 어긴 반인도적 범죄행위…우리 법원에 재판권"
    법조계서도 환영 목소리…민변 "역사적 판결"
    이어질 유사 소송에서도 같은 판단 나올지 주목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선고기일이 열렸다. 김강원 변호사가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 강점기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를 일본 정부가 배상해야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다른 국가를 상대로 재판할 수 없다는 '주권(국가) 면제' 원칙을 깨고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번 판단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서는 "역사적인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8일 오전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 1명당 각 1억원씩 지급하고 소송비용도 부담하라고 밝혔다.

    이날 선고는 정식재판이 접수된 지 5년, 조정신청 기준으로는 7년 5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이 기간동안 사건을 둘러싼 가장 큰 관심은 우리 법원의 재판권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쏠렸다.

    일본 정부는 원고 측 소송이 무효라는 입장을 내세워 그 근거로 '주권 면제' 원칙을 내세웠다. 주권 면제 원칙은 한 나라의 법원이 타국을 상대로 한 소송에 관해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이다. 이 원칙을 근거로 일본 정부는 재판 참석 자체를 거부하며 원고 측 주장을 각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주권 면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판단하며 재판권을 인정했다.

    이 사건 같은 '국제 규범을 어긴 반인도적 범죄'를 판단함에 있어 주권 면제 원칙보다 헌법에 보장된 '재판받을 권리'가 우선돼야한다는 것이 이같은 판단의 근거다.

    재판부는 헌법 제 27조 1항을 언급하며 "권리구제의 실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다"며 "재판받을 권리는 다른 실체적 기본권과 더불어 충분히 보호되고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행위는 일본제국에 의하여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다"며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주권 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본다"고도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1심 재판에서 승소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 연합뉴스

     

    이는 최근 국제인권법 학계에서 제기돼 온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국제범죄에 대해 주권면제 논리를 무조건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이같이 재판권이 인정된다고 본 이상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안부'로 동원해 가혹한 성범죄는 물론 상시적인 폭력을 저지른 것 등은 증거와 여러 사실로 인정된다며 이에 대해 배상해야한다는 원고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소송 청구권에 대해서도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 양국의 1965년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본 정부 측은 이후에 재판 과정에 참석하지 않으며 소송이 무효란 입장을 사실상 밝힌 만큼 항소 등 별도의 불복 절차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날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실제 배상금을 받는 과정은 수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소송 자체를 무효라는 입장인만큼 배상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낮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의 소송대리인 김강원 변호사는 "강제집행이 가능하냐고 많은 분들이 묻는데 그 부분은 강제집행이 가능한 재산이 있는지 별도로 검토를 해야할 사항이라 오늘 즉답은 힘들다"고 말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한편 이날 '위안부' 피해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에 법조계에서도 즉각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위안부 사건은 나치 전범과 함께 20세기 최악의 인권침해 사건임에도 양국의 무책임 속에서 오랜 기간 피해 회복에 소극적이었다"며 "이번 판결은 이러한 상황에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피해자들의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를 위한 발판이 됐다"고 높게 평가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이날 성명을 통해 "국제인권법상의 ‘피해자 중심주의’를 적극 반영함으로써 세계인권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긴 역사적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이같이 국가면제 논리를 깬 이번 판결은 향후 예정된 비슷한 소송에도 적잖이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오는 13일에는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여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의 선고가 예정돼있다. 이 재판은 중앙지법 민사합의 15부(민성철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된다.

    이밖에도 일제강점기 피해에 대해 국내에서 '재판받을 권리'가 인정된 만큼 '위안부' 피해 외에도 당시 각종 물적‧인적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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