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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威力) 성추행' 피해자와 연대한 韓대표 여성단체들



사건/사고

    '위력(威力) 성추행' 피해자와 연대한 韓대표 여성단체들

    • 2020-07-13 17:30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 발인일 피해자 입장 전격발표
    박 시장 사망 알려진 10일, 두 단체 '서울특별시장' 반대 성명
    "사건 세상에 알린 피해자 온맘 지지…진상규명 강력히 요구"
    "피해자 안전이 가장 중요…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선 느낌"
    장례위 회견중단 호소에는 "나름대로 최대한의 예우 갖췄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진행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사진=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지속적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자가 박 시장의 발인일인 13일, 마침내 목소리를 냈다. 피해자가 선 자리에는 한국의 대표 여성단체들인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함께 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소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의 부제는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였다.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한국사회에서 가해자에 이입하기 쉬운 문화 개선을 위해 힘써온 한국여성의전화는 회견을 공동주최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피해자 A씨를 상담한 장본인이다.

    앞서 지난 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한 A씨는 지난 2017년 서울시청 비서로 근무한 이후부터 부서를 옮긴 뒤에도 4년 간 박 시장으로부터 신체접촉을 포함해 텔레그램을 이용한 음란 메시지 전송 등 성추행 및 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5월 현재 변호를 맡은 김재련 변호사와 피해사실을 상담하며 법률적 검토에 들어갔고, 경찰 고소 직후 두 단체와 면담을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983년 설립된 NGO(비정부기구) 단체로, 국내 최초의 가정폭력·성폭력 전문상담기관이다.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관련법, 스토킹범죄처벌법 발의 등 관련법률 제정에 힘쓰는 한편 올 초 '데이트 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 2호' 원종건씨의 전 연인 등 다수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피해자들을 지원해왔다.

    그 뒤를 이어 1991년 창립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상담활동과 지원활동, 성폭력 근절을 위한 사업을 통한 여성의 인권확보, 성평등 사회의 정착 기여를 목적으로 한 사단법인 단체다. 지난 1994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성폭력 상담원 교육기관으로 지정되기도 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28년간 총 8만 5200여회에 달하는 상담을 진행했다.

    두 단체는 박 시장의 사망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10일 즉각 피해자에 대한 연대를 밝히는 동시에 박 시장의 장례가 '서울특별시장(葬)' 형식의 5일장으로 치러지는 데 분명한 반대의 뜻을 표했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동정론과 추모가 주된 분위기를 이루는 가운데 A씨에 대한 비난 등 '2차 가해'가 본격화되자 피해자의 편에 적극적으로 선 것이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먼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과거 박 시장이 변호사 시절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한·일 여성법정에 남측 검사로 참여해 했던 발언을 인용해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박 시장은 과거를 기억하고, 말하기와 듣기에 동참하며, 진실에 직면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길에 무수히 참여해왔다. 그러나 본인은 그 길을 닫는 선택을 했다"며 "서울시의 5일간의 대대적인 서울특별시장, 장례위원 모집, 업적을 기리는 장, 시민조문소 설치를 만류하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시간과 사회가 이것을 들어야 하는 책임을 사라지게 하는 흐름에 반대한다"며 "서울시는 과거를 기억하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박 시장의 죽음이 비통하다면 먼저 해야 할 것은 그것"이라고 시 차원의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역시 "피해자의 신변을 궁금해하는 사람들, 진실을 밝히고자 했을 뿐인 피해자의 용기를 의심하는 사람들에 분노한다"며 "성폭력 가해에 이용된 권력이 또다시 가해자를 비호하고, 사건의 진상 규명을 막는 것에 분노한다. 피해자가 바라왔던 대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그가 안전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거들었다.

    이같은 피해자에 대한 전폭적 지지는 기자회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두 단체는 박 시장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A씨가 맞닥뜨린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증언하면서 피해자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국가 시스템과 사회 분위기를 비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피해자분께 온 마음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며 "형사사법절차상 수사, 재판을 제대로 거쳐서 가해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코자 했지만 고소 당일 피고소인에게 모종의 경로로 수사상황이 전달됐고, 그의 극단적 선택으로 피해자는 지금 온·오프라인상에서 2차 피해 등 더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수사상황이 전달됐는데,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격적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목도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고소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 또한 "피고소인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해서 사건의 실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 비난이 만연한 현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피해자 인권 회복의 첫 걸음"이라며 "경찰은 현재까지 조사내용을 토대로 입장을 밝혀달라. 서울시는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아울러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최우선순위'는 '피해자의 안전'임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 소장은 "피해자를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고소 직후지만, 저희가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했다. 피해자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라며 "청와대나 어디에서든 이 사건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았지만, 받았다 하더라도 거기에 전혀 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피해자는 (박 시장의) 엄청난 위력으로 인해 혼자 시베리아 벌판에 서 계시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라며 "수많은 사람들이 2차 가해를 하는 데 피해자가 얼마나 두려웠을지 생각하며 우리가 함께 연대해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에 대한 배려를 앞세워 이날 기자회견을 재고해달라고 호소한 박 시장 장례위원회 측에 대해서는 "장례기간 중에는 최대한 기다리고, 발인을 마친 오후에 이렇게 기자분들을 뵙게 된 것"이라며 "저희 나름대로 최대한의 예우를 했다고 이해해주시면 되겠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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