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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좌절된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평등법'은 다를까?



사건/사고

    7번 좌절된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평등법'은 다를까?

    21대 국회의원 10명, 차별금지법 발의…인권위 '평등법' 시안 발표
    보수 기독교계 등 비판은 풀어가야 할 숙제
    "특정한 성적지향 장려하는 법률 아냐…설교·전도 등은 적용받지 않아"
    형사처벌 규정 없어…차별 시정 권고·손배책임 부과 판결 가능
    "다르게 대우하는 행위에 합리성 있는 경우, 차별로 보지 않아"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 관련 기자회견 전 미소짓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저는 입법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차별이 존재하는지, 혐오라는 게 얼마나 광범위하고 해악을 주는지.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전환됐다고 봅니다."(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 국회 이어 인권위도 '평등법' 시안 발표하며 입법 시동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달 30일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시안을 공개하며 국회에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을 주축으로 21대 국회의원 10명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지 하루 만이다.

    인권위는 14년 전인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국무총리에게 차별금지법 입법 추진을 권고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듬해 정부 발의안이 처음으로 국회 문을 두드린 이후 19대 국회까지 모두 7번의 법안 처리 '시도'가 있었다.

    네 번은 제대로 된 심의 없이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고, 심지어 두 번은 발의자 일부가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무산됐다. 지난 20대 국회 때는 발의조차 없었다. 공개적으로 발의 의사를 밝혔던 고 노회찬 전 의원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차별금지법은 공론장에 제대로 오르지도 못했다.

    차별금지법이 발의를 넘어 입법으로 나아가지 못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보수 개신교 등의 반대 움직임이 컸다. 이날 인권위 기자회견장 앞에서도 '나쁜 차별금지법 반대'라는 손 팻말을 든 시민들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반대 목소리 잠재울 수 있을까

    보수 기독교계 등에서는 평등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에 부정적 견해를 표하는 설교·거리 집회 등이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차별 사유에 '성적 지향'을 포함해 동성혼 법제화로 이어지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성적지향을 제외한 '제한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도 이를 고려해 수차례 종교인들과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부·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한 경험을 들며 "종교의 가장 근본은 사랑이라고 보고 있다. 모든 사람과 함께 어울리고 존중하는 게 모든 종교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각자 교리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설명하고 대화하고 이해를 구하려고 한다"며 교계의 동참을 호소했다.

    인권위 박찬운 상임위원은 CBS노컷뉴스에 보내온 문자메시지에서 "평등법이 입법화되면,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평등법은 종교의 본질적인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종교단체에서 일어나는 일이 종교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라면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인권위 "평등법 제정, 종교적 자유 침해하지 않는다"

    다음은 인권위 설명자료와 최 위원장의 발언을 토대로 정리한 일문일답.

    ▶ 평등법, '동성애 옹호' 법률인가?

    =아니다. 이 같은 지적은 평등법의 입법 취지와 목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등법은 사회의 주류적 경향과 다른 성적지향을 가진 개인,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동등한 주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각의 주장처럼 특정한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장려하는 법률이 아니다.

    ▶ 평등법이 제정되면, 교회에서 목사가 동성애에 부정적 견해를 표현하는 설교나 거리 전도를 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종교 단체, 자기 기관 안에서 이뤄지는 신념은 종교적 자유에 해당한다. 위원회가 제시한 평등법 시안은 고용, 재화·용역 등 일부 영역에 적용된다. 설교나 전도 그 자체는 평등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해외의 경우 '동성애는 사회적 병이므로 처단하고 없애야 한다'는 식의, 실제로 해악을 야기할 수 있는 선동적인 언동만 처벌하고 있다.

    ▶ 차별적 발언이나 행위가 형사처벌되나?

    =평등법 시안은 '차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차별이 발생하면, 위원회가 차별 시정을 권고할 수 있고 법원은 임시조치 명령이나 손해배상 책임 등을 부과하는 판결을 '할 수는' 있다. 다만, 위원회 진정 등을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하는 경우에 가중적 손해배상 부담과 함께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하도록 규정을 뒀다.

    ▶ 개인의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지 않나?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는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중요한 기본권으로, 이 권리는 충분히 향유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건 아니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도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헌법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이것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 평등법에 이 같은 침해 우려를 잠재울 장치가 있나?
    =평등법은 '다르게 대우하는 행위'에 합리성이 있는 경우 차별로 보지 않기 때문에, 종교 등을 이유로 다르게 대우하는 행위가 무조건 차별로 판단되는 건 아니다. 평등법은 차별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사회 통합을 촉진하는 법률이다.

    ▶ 가중적 손해배상 제도는 가혹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국내에서 2011년 '하도급법'에 가중적 배상책임이 처음 도입된 이후, 비정규직 관련법과 '공정거래법',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상당수 입법례가 있다.

    ◇ "우리사회 차별 현실 정확히 드러내는 데 의의"

    인권위 전원위원회가 이날 오전 회의에서 낸 평등법 시안 주요 내용을 보면, 차별 개념은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 표시·조장 광고 등 5개로 범주화했으며, 성별 등 21개를 차별 사유로 뒀다.

    차별 사유는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사회적 신분 등이다.

    인권위는 차별 사유를 명시한 이유에 대해 "우리사회의 차별 현실을 정확히 드러내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며 "국제인권규범 또한 해석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차별 사유를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특히 악의적 차별 행위가 반복될 경우 재산상 손해 이외에, 별도로 손해액의 최고 5배를 배상하는 일종의 '징벌적 손해배상'도 도입하기로 했다. 악의성에 대한 판단은 차별의 고의성, 지속성과 반복성,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피해 내용과 규모 등을 고려하도록 했다. 차별 행위를 입증할 책임은 차별을 당한 사람이 아니라 차별을 한 사람에게 주어졌다. 정당한 사유가 있어 다르게 대우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인권위의 평등법 입법 촉구 의견 표명에 시민사회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에서 선언한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본법"이라며 "국회는 차별이 한 가지 사유만을 이유로 행해지지 않고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고려해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실질적 조치를 어떻게 법률에 반영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이날 논평에서 "법 제정을 위한 지금의 움직임은 한국 사회가 더는 이전 같지 않으며 이미 평등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며 "시민들의 열망과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전면적으로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역시 이날 성명을 내고 "차별금지법 발의 움직임은 제정 과정에서 가장 공격받았던 성 소수자들이 지속해서 권리를 외친 결과"라며 "국회는 평등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어 "인권위 여론조사에서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고, 73.6%가 성소수자도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한 존재라고 답한 사실은 더 이상 차별금지법 제정이 논쟁의 영역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했다.

    군인권센터도 "실제 제정을 위한 인권위의 적극적인 행보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며 "군 내 성차별, 혐오표현에 기반한 성희롱 관련 정책 권고,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 해결을 위한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권고,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강제 전역 취소 권고 등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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